표지를 주의깊게 살피고 따르는 법을 배우게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中-
그는 집에 돌아와 오늘 자신에게 다가온 표지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알람이 울리기도 한참 전, 5시 26분에 눈을 떠졌다. 평소엔 피곤함에 언제나 알람을 세번이나 끄고서야 일어나는 그이지만 오늘만큼은 무엇에 홀린양 저절로 눈을 떴다.
물론 다시 잠들었지만.
다시 잠에서 깨어나니 눈이 너무나 아팠다. 라섹수술을 한 이후로 종종 아침에 눈을 찌르는 듯이 아픈 날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기차역으로 향하기 위해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에서 마침 휴일이라며, 기차역까지 가는 중이니 공짜로 타라는 택시기사를 만났다. 덕분에 기차역에 일찍 도착한 그는 예매했던 기차표를 취소하고, 조금 앞당겨 기차를 탔다.
점심약속을 잡기 위해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다른 지역에서 오는 동기들에게 연락을 했으나, 시간이 맞는 동기들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현지에 있는 동기(M)와 밥을 먹게 되었다.
M의 안내로 들어간 식당에서, 뒷모습만 보고서도 첫눈에 그녀(H)가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보지 못했을거라 생각했는데, M과 대화하던 중 H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M아."
얼떨결에,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나눈다. 어색하기만 하다.
H가 먼저 밥을 먹고 나간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양이 많은 탓인지, M을 기다리며 마신 아이스티 때문인지, 그는 음식을 다 먹지 못한다.
넓은 회의실에서 빈자리를 찾다가 다른 선배를 따라 자리를 정했다. 알고 보니 H의 뒷자리다. H는 뒤돌아 먹고 있던 육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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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회의가 끝났다. 다른 동기들은 먼저 자리를 떠나고 O와 H가 남았다. O는 H와 식사를 할건데 함께 할지 물어본다. 그는 어물쩡거리며 작별인사를 했고, 둘이 화장실을 간 사이 M과 인사하기 위해 연락한다.
M과 인사하며 떠나려는 차에 둘이 다시 돌아온다. 언제 또 보겠냐며, 그들은 함께 식사하기로 했고, 그는 덤으로 딸려가게 됐다.
언제나처럼 그는 말 없이 옆을 걸어가고, 셋은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식당을 정하고 음식을 시킨다. 그제야 하루종일 그를 괴롭히던 눈의 통증이 다시 시작된다. 그는 인공눈물을 사러 약국에 다녀온다.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인공눈물을 두 방울씩, 양쪽 눈에 넣는다. 단, 두 방울.
눈이 더 아파온다. 인공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꽤나.
친한 O와 H는 마주보고 식사하며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계속 푼다. M과 그는 밥을 먹는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으면서도, 입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이 동네는 다 음식을 많이 주나보다. 그는 또 음식을 남겼다.
M이 정류장에서 배웅해주고 돌아간다. O와 H, 그는 기차역을 향해 간다.
걷는 길에는 1년 전 동기들과 함께 어울리던 추억이 묻어있다. 그는 O와 그때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H는 그게 벌써 1년 전이라며, 올해도 날을 잡자는 말을 한다.
그 1년 동안 자신은 무엇을 했을까, 변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생각한다.
H를 배웅해준 뒤 O와 함께 돌아오는 기차에서 O는 그에게 묻는다.
"이렇게라도 보니까 어때?"
그는 조금 전부터 자신에게 되물었던 질문에 답하듯 말한다.
"좋아. 딱 이정도, 내가 할 수 있는것, 내게 허락되는게 딱 이만큼인 것 같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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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이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항상 둘 사이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일방적으로 마음을 키웠고, 쌍방적으로 불편함을 남겼다.
그 1년 동안 변한 것은, 이제 더는 H가 그를 편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을 이제서야 자각하게 된 것,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마저 H에겐 아무런 감정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뿐.
그는 지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H는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미련이 조금씩,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