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몸이 알고 있는 날
황량했던 내 마음에 어느 봄바람에 실려온 씨앗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가꾸었다
온기가 필요하면 너를 떠올렸고
물이 필요하면 네가 바라볼 나를 떠올렸다
오직 너만을 생각하며 자라난 씨앗이 한 송이 붉은 꽃이 되어 자리하자
그 뿌리를 타고 다른 꽃들이 한 송이, 두 송이 빼곡히 자라났다
익숙치 않지만 싫지도 않은 풍경에 취한 나는,
어느 더운 날 분수대에서 뛰노는 아이마냥
흠뻑 젖어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에 혼자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언제나처럼 꽃은 금방 시들었고,
아름다움 속에 가려졌던 가시덩굴들만이 남아있다
나는,
네가 떠오를 때마다
너에 대한 기억으로 엉켜있는 가시를 태웠다
1초에 한 번씩 타오르던 가시들이 1분에 한 번,
다시 10분에 한 번, 한 시간에 한 번씩 타오르다가
눈을 감기 직전, 눈 뜬 직후에 한 번,
그렇게 입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흘러가버리는 짧은 시간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로 맞이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이젠 그 간격마저 재어볼 수 없을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황량한 벌판으로 돌아왔다
그림자의 길이도, 뺨을 스쳐가는 바람의 온도도
그 어느것 하나 변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풍경 속에서
문득, 흐릿하게 붉은 색이 보인다
요동치는 가슴의 두근거림에 맞춰 달려가보니
그때와 같이 아름다운 꽃, 한송이 피어있다
'그래, 시간이 흘렀구나'
그제서야 계절이 네번 바뀌었음을,
다시 그날이 왔음을 깨닫는다
나는 종일 꽃을 바라본다
웃어보고,
노래도 흥얼거리지만
갑자기 가슴이 저미어오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은 마냥 행복해한다
아프지만 기쁜 이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내게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날임을 알기에
그리고 미련없이 돌아선다
태우려 해도 타지 않고
뽑아도 다시 자라날 것을 알기에
그저,
세상에 단 한평
일년 중 단 하루
이렇게 찾아와 맘껏 너를 느끼고 돌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