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시험에 든다는 것. 아 이건 뭐랄까 평생에 걸쳐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달콤한 하나의 유희다. 초반 서너 번은 상대도 적당히 발맞춰 기쁘게 응해줄 것이다. 응당 연인 사이에서 할법한 애정 어린 투정 정도로 치부될 수 있기에. 그러나 이제 정도는 심하게 그리고 빈도는 더 잦게 걷잡을 수 없이 계속된다. 거의 대부분 상대가 먼저 지쳐 떨어질 것이며 그럴 수밖에 없게끔 지리멸렬하게 괴롭힌다. 마치 어떻게 하면 네가 애정하는 나라는 존재가 어딘가 얽히고설켜 단단히 꼬여있거나 혹은 텅 비어 평생에 거쳐 네 마음을 증명해 보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만족시키는데 실패하겠구나 하고 깨닫게끔 유도하는 일련의 과정이 될 것이다
결국 당신을 함정에 빠트리는 문제나 질문은 그저 명목상 존재할 뿐이며 끝끝내 명쾌한 해답이 없다는 확신과함께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네 마음을 제멋대로 이리저리 마음껏 주무르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거나 피가 서서히 마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그 후 평가하고 재단하고 정성껏 난도질까지 한 뒤 가차 없이 뒤돌아 서기까지 네가 눈치챌 수도 없거니와 모든 단계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기와 순서에 맞게 이루어질 것이다.
내 사랑은 늘 이런 식이었다. 늘 성에차지 않았다. 늘 충분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만족하는 법을 모르거니와 있는 힘껏 밀어내기 바빴으며 그 과정에서 조금의 생채기도 남기고 싶지 않아 갖은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효과는 결코 장담할 수 없었다. 내게 애정을 보이는 누구라도 끊임없이 곤경에 빠뜨려 상대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늘 애정에 목말라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에 너무나 오래전부터 푹 절여져 익숙함을 넘어 편안함을 느꼈다. 결국 매 순간 승리를 거머쥐는 쪽은 사랑이 아닌 불안이었고 이것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내가 불안이었고 불안이 나였다. 결국 누군가 내게 아낌없는 지지와 관심을 선사함에도 나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끝마친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당신에게 있는 힘껏 나를 내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한껏 처박아 몸을 둥글게 말곤 제발 나를 좀 봐달라고 짐승같이 울부짖는 내가 보이지도 않느냐고 우리 사이에 검증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 내느라 매번 주먹을 꽉 쥔 손바닥은 손톱자국이 옅어질 틈이 없었다. 하지만 불안과 가까이 지낸 탓일까 혹은 늘 반복되는 패턴을 연기하는 것에 익숙해진 탓일까 어딘가 묘하게 어긋난 모습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일말의 애정은커녕 동정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인물로 거듭나고야 말았다. 이따금 흘러 넘치게 마음을 주다 지레 겁을 먹고한 달음에 불안에 뛰어들어 관계를 파괴시켜 버리거나 반대로 사랑을 구걸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느라 진을 다 빼앗기는 상황이 늘 상 지루하게 반복됐다.
즉, 나는 누군가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이가 아니라 적당한 온도로 사랑하는 법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었다.
결국 그렇게 사랑에 대해서는 적당히를 모르는사람으로 성장하고야 말았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의 저주아닌저주였고 늘 목이 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