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노란색이 부족하네요! "라고 점토 업체에 전화를 드리니 재고가 없어서 생산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언제쯤 나올까요?라고 물어보면 "글쎄요!"라고 말을 하셔서 가슴이 답답하다.
공장이 요즘 너무 바빠서 칼라믹스 생산이 늦어지고 있다고 하셨다.
코로나 초기에는 수업을 안 나가니 재료 사용량이 급격하게 줄어서 거의 주문을 안 하다가 일부 수업이 시작되면서 재료를 주문했다.
오랜만의 주문이라 사실 공장도 매출이 급격히 줄었을 거라 생각하고 안부 인사를 드리니 업체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원격 수업으로 아이들이 가정에서 놀이할 수 있는 클레이가 급격히 판매가 늘었다고 한다.
또한 쿠팡에 입점하여 재료를 판매하니 매출이 늘어나서 주문량이 많아 공장이 무척 바쁘다고 했다.
다행이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칼라믹스 점토는 쪼물딱인 우리가 전국 유일하게 이 수업을 하고 있다며 거래처가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재료 생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중국으로 칼라믹스 점토가 많이 수출이 되었는데 거래가 끊긴 상태라고 하셨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칼라믹스 재료 중 가장 품질이 좋은 한국칼라 점토 공장은 1980년대 말부터 칼라믹스 점토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업체로 사장님의 열정도 대단하신 곳이다.
1998년부터 공방을 운영할 당시 대구에 있는 지사라는 곳에서 필요한 재료를 주문하면 도매가로 보내 주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온라인으로 정보가 오픈되어있지 않았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유통망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재료 시장은 발로 뛰면서 하나씩 알아내면서 운영하는 시절이었다.
오래전 도매 시스템은 소속이 되어 있는 강사나 사범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공급받는 단가가 소매가와 차이가 날 수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으로 여러 업체를 비교해 가면서 재료 구입을 쉽게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업체명이나 연락처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도매상과 소매상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공방을 운영하던 중 재료 공급을 받던 지사라는 곳과 문제가 생겨 거래가 차츰 끊기면서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업체를 직접 찾아 나서야만 했다.
서울 남대문 지하상가에 가면 온갖 반제품과 요즘 유행하는 공예 트렌드를 알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재료를 시중가 보다 저렴하게 도매가로 구입할 수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안동에서 서울로 발품을 팔아가며 시장조사를 했고 수없이 다녔고 여러 가지 반제품이나 재료들을 샘플로 사고 오기를 반복하며 한편에는 재고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남대문 재료 상가에서 칼라믹스 점토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을 구입한 후 책에 나와 있는 공방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확인해 직접 찾아갔다.
영등포 시장 쪽에 있던 칼라믹스 공방을 방문해 수강문의를 하는 것처럼 궁금한 것을 물었고 안내를
받던 중 공방 한편에 판매용으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던 아동용 점토를 발견했다.
여러 가지 색을 잘라 플라스틱 케이스에 포장되어 있었으며 제품 소개 뒷면에 제조업체 전화번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보물을 발견한 만큼 무척 기뻤다.
급하게 공방을 나와 흥분된 마음을 달래고 재료 공급에 대한 막혀있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희망에 설레었다. 그날이 주말이라 빨리 월요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25년이나 지난 이야기인데 글을 쓰다 보니 그날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안동에 내려와서 한국칼라 업체에 전화를 걸어 방문을 드리고 싶다고 약속을 하고 그다음 주 안동소주 한 병을 선물로 준비해서 무작정 알려주신 서울 중랑구 사장님 댁으로 방문을 했다.
댁에 방문하니 인상이 너무 좋으신 사모님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장님께서 맞이해 주셨다.
지금도 재료 주문 상담은 사모님이 아직까지 업무를 보고 계셨다.
지방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 중인 20대 아가씨가 당차게 서울에 직접 재료 업체를 찾아오게 된 사연도 이야기드리고 칼라믹스 점토 시장에 대한 사장님의 고견도 들으면서 "공예가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달하며 용기 있고 당찬 나의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 드렸다.
그때 당시 사장님도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두셨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최근 통화를 하니 큰 아들이 지금 공장 운영을 맡아서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나는 점토 강사로 교육 업체로 성장했고 점토 공장도 힘든 시간들을 겪어가면서 함께 발전하고 있었다.
11월 28일 코로나에 걸려서 집콕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했다.
"구독자 500명으로 월 100만 원 수익"이라는 글 하나만 제출했고 11월 30일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니 그동안의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고 꼭 만나고 싶은 소중한 인연들을 한분씩 만나보기로 계획하며 나의 버킷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첫 번째 만나고 싶은 분은 한국칼라 사장님이셨다.
12월 중순 점토 재료 준비를 하면서 해가 바뀌기 전에 통화를 해야겠다 싶어 여러 번 고민하다 전화를 드렸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반갑게 받아 주셨다.
사장님과 짧게 그동안 힘들었던 점과 안부의 말을 나누다가 "사장님! 우리 한번 만나요! "라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나야 좋죠!"라고 하셔서 너무 감사했고 기대가 되었다.
사장님 공장은 남양주에 위치해 있어서 유치원 방학으로 수업이 비어있는 1월 6일 남편과 함께 남양주 오남리 오남저수지 맛집에서 오래되고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출발하기 전에 사모님과 함께 나오시라 말씀드렸더니 사장님 또한 나에게 부군과 함께 오라고 하셨다.
우린 그렇게 부부 동반으로 운치 있는 한정식 식당에서 너무 행복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15년 전쯤 사장님을 한번 뵈었었고 오랜만에 얼굴을 뵈니 세월의 흔적에 좀 야위시긴 했지만 그때 그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아 있으셨으며 사모님 또한 여전히 고우시고 오래 전의 좋은 인상 그대로셨다.
세월이 지난 후 오늘 만남은 오래된 추억을 소환하고 두 부부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이어 가고, 서로 이해하고 불편함 없이 소탈하게 웃으며 나누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사모님께서는 칼라믹스를 유일하게 주문하는 거래처인 우리를 위해 재고 부담을 안고 생산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직접 얼굴을 뵙고 전해 들으니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반면 칼라믹스 점토 교육을 끝까지 놓지 않고 당차게 이어가고 있는 나의 교육 열정에 대해서도 사장님은 칼라믹스 교육 쪽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사장님은 나와 성격이 비슷하고 사모님과 내 남편의 성격이 비슷했다. 고집스러움과 올바름을 강조하는 삶의 방식이 강한 성격 때문에 힘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옆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분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잘 이끌어 온 듯했다.
칼라믹스 점토가 80년대 말에 개발되고 특허되는 과정까지의 역사와 공장 생산 과정을 생생하게 말씀을 해주셨고 나 또한 이 점토를 가지고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교육하면서 겪었던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서로 위로해 주듯이 격려하며 이야기를 끌어 나갔다.
우리가 맛집 식당에서 주문한 메인 메뉴는 "점토 이야기 스페셜 정식세트"였고 맛 또한 세상에 이런 맛은 없다는 최고의 맛집이었다. 이 음식을 편안히 먹기 위해 요리하고 밥상을 차리는 데 걸린 시간이 25년이 걸렸다.
1990년 초에 칼라믹스가 지우개가 되는 신기한 재료로 소개되고 인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해서 반죽하기 힘들고 열처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단점을 보완한 칼라클레이가 생산되면서 칼라믹스 공예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쉽고 간편한 칼라클레이 수업이 진행되면서 천덕꾸러기가 된 칼라믹스 점토는 한국칼라에서 아픈 손가락이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칼라클레이가 여기저기 업체에서 많이 생산되고 보급이 되다 보니 한참 유행을 이끌었던 시기를 지난 요즘은 실상 해진 것 같다고 사장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새로운 재료를 또 개발하려 한다고 하셨다.
나는 칼라믹스 점토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측면이 크고 그 어떤 점토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점토인데 수많은 강사들이 준비하고 후작업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갈아타기를 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내가 칼라믹스 교육을 계속 이어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점토 교육을 알리겠노라고 절대로 칼라믹스 점토 생산만큼은 멈추지 말아 달라 부탁드렸다.
요즘 유행의 트렌드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돌고 돌아서 예전에 유행이 트렌드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시대에 점토 교육 또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교육은 유행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아이들에게 기본 교육틀 안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어가야 한다. 점토 교육은 놀이와 기술을 알려주는 조형 활동으로 아이들에게 어릴 적 경험한 솜씨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기억이 남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 또한 어릴 적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이했던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딱지 치기를 중년이 된 지금도 기억이 나고 고무줄 놀이할 때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재료 생산을 위해 몇 톤씩 재료를 한꺼번에 구입해서 소량으로 판매되는 제품은 사실 공장 입장에서는
이익이 되지 않지만 오늘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 더 잘 만들어 보겠다고 소중하고 감사한 답을 주셨다.
나 또한 포기하지 않고 나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으며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헤어지기 전에 서로 두 부부의 모습을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억하겠노라 말씀하신 사장님이 건강하시길 바랄 뿐이면 25년 전 사장님 댁에 방문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사모님에게도 감사했다.
나도 헤어지기 전에 사모님 아직도 면목동 **빌라에 사세요?라고 하니 깜짝 놀라시며 그걸 아직 기억하냐고 대답하시는 사모님과 우린 지나온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며 열심히 잘 살아오고 있었다.
두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 북부 간선도로 위에서는 오랜 기다림의 만남을 축하라도 하듯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렸고, 남편과 나는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온 오늘에 감사했다.
세상은 함께 공생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하며, 그 두 분처럼 우리도 아름답게 늙어가자라고 남편과 나는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