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보따리장수
" 아이들에게 재능의 씨앗을 팔고 다니는 나는 보따리장수"
설 명절 연휴 전날 수업이라 평상시보다 일찍 출발했지만 예상대로 차가 막혀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어린이집으로 전화를 드리니 영양사님이 전화를 받으셨고 친절하게 받아 주셨다.
도착은 가능했지만 무거운 가방을 들고 교실로 올라가는 이동 시간이 부족할 듯해서 미리 양해를 구했다.
서둘러 도착해서 어린이집에 주차를 하고 보니 평소와 달리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내 차가
주차장 입구를 막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명절 행사가 있어 어린이집 앞마당에는 시끌벅적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현관 앞 떡볶이와 꼬치어묵 수십 개가 꽂혀있는 코너에 계신 선생님이 급히 인사하고 지나가는데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 어묵하고 떡볶이 드시고 가세요!"
늘 평소에도 친절하신 선생님이 음식 코너를 진행하고 계셨다.
수업이 늦어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따뜻하게 꽂혀있는 어묵들을 보는 순간 망설여졌고 내 대답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벌써 선생님은 떡볶이와 어묵 한 꼬치를 내어주셨다.
늘 수업 시간에 쫓겨 다니느라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경우가 많아서 수업 전에는 뭐라도 챙겨 먹으면 아이들과 수업을 위한 에너지 충전에 도움이 된다.
떡볶이는 거절하고 어묵 하나만 급히 먹는데 선생님께서 어묵 국물을 내어주셨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내가 평상시 가끔 그리워했던 어릴 적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어묵을 비스듬히 반으로 잘라 대나무에 꽂아 팔던 푹 고아진 어묵과 국물 맛이었다.
이렇게 초를 다투는 급박한 시간에 발견한 맛을 감탄하고 즐길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오랫동안 수업을 다니지만,
여기 어린이집 원장님은 아이들을 위한 행사의 스케일이 아주 진취적이신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코로나로 다들 웅크리고 위축되어 있을 시기에도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앞마당에 미니 놀이공원을 만들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원장님의 남다른 용기에 감동을 받기도 했었다.
또한 다양한 행사를 넓지 않은 앞마당에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진심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신다.
허겁지겁 현관 안으로 들어가니 좀 전에 전화받으셨던 영양사님이 다양한 모양의 찐빵을 쪄서 밖으로 급히 가지고 나가시는 모습에도 즐거움이 가득하다.
설명절 전이라 마음도 몸도 바빠 지쳐있었는데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들떴다.
10분 늦어 도착한 교실 앞에 들어서니
"까치 까치설날은 오늘이고요~ " 노래가 크게 들려오고
아이들은 쪼물딱 선생님 하고 큰소리로 반겨준다.
수업에 늦었음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좋겠다! 라며 넉스레도 떨어보고 분위기를 함께 즐겨 본다.
" 나도 어린이집 다니고 싶다!"라고 말하니 "그럼! 선생님도 다녀요!"
라며 밝고 맑은 아이들의 미소가 나를 웃게 한다.
학기말이 되어 가고 수업 중 아이들이 집중하는 시간에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이 잘 성장했고 그동안 가르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칭찬 말씀 드리면"쪼물딱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목요일만 기다리거든요!"라고 말씀하신다.
서로 기분 좋은 칭찬을 아이들이 집중하는 시간에 조용히 화답하듯 인사를 나눈다.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생각 보따리 물건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선생님들과 원장님들을 만나면서 초보였을 때에는 눈치 보느라 하고픈 말도 부끄러워
못했는데 오랜 시간을 강사로 수업을 다니고 나이가 들다 보니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이 생겼다.
강사는 흔히 보따리장수다.
말보따리, 재료 보따리, 칭찬보따리, 교육보따리 등을 양쪽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 사계절의 변화를
느껴가며 열심히 다닌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봄의 길에는 설렘으로 가르쳤고
더운 여름에는 흥미 있는 수업 주제로 재미가 쏠쏠한 맛에 짧은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열심히 만들었다.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가 풍부한 가을에는 아이들의 솜씨가 무르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칭찬과 감동으로
가을을 보냈다.
추운 겨울은 아이들의 생각, 말, 행동이 성장하고 의젓해진 모습을 보며 기특하다 말해주고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기에 멋진 작품보다 규칙과 자세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예쁜 모습을 기억하기 위한 수업으로 마무리 수업을 한다.
공예로 시작했던 내가 유아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교육시장이 넓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유아들과 수업하며 공부하다 보니 유아기가 창의력의 최고의 절정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소중한 시기에 점토라는 재료로 아이들에게 재능의 씨앗을 팔고 다니는 나는 보따리장수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