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해 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노력하며 위기와 싸워가며 최선을 다해 극복했고, 도전하고 변화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소중한 해였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여 번아웃을 경험하며 잠시 멈춤을 위해 일주일간의 휴가를 보내고 나니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부터는 상황이 된다면 마스크를 벗고 첫 수업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쓴 상태로 수업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편한 부분도 있고 마스크를 벗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되었다.
마스크를 벗으면 아이들이 생각하던 선생님 얼굴이 아니라서 실망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되었다.
나 또한 마스크를 끼고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내가 생각하는 얼굴을 상상하며 그리다 보니 점심 먹고 양치 나온 아이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면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해서 평상시 보다 거울을 수차례 보고 화장을 고친 후 들어갔다. 복도에서 수업 시작 전 양치하러 나온 7세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쪼물딱 선생님"하고 인사를 한다. 누구 하나 나의 생김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간혹 한 두 명은 얼굴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이것 또한 나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내가 유아를 좋아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 "순수함"이다.
마스크로 가려진 나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코, 입, 턱선을 제외한 나머지 노출된 나의 전체 모습을 기억하고 선생님의 모습 그대로를 좋아했던 것이다.
작년 6세 반 수업 때 나만 보면 꼭 안아주고 사랑해요!라고 말하던 대건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7세가 된 대건이가 있는 반에 수업을 들어가 가장 먼저 대건이의 표정을 보았다.
다행히 작년과 똑같은 하트 눈빛을 보내준다. 다른 아이들도 나의 마스크 벗은 모습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오늘 무얼 만드는지에 대해 더 궁금해 있었다.
3월 신학기 수업은 언제나 걱정과 설렘이 있어서 늘 긴장하게 되는 꽃샘추위 같은 기분이다.
6세였던 아이들이 7살 형님반에 올라가고 7세 반에서 6세였던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6세 때에는 마냥 자유로웠던 아이들이 부쩍 자란 모습과 달라진교실 환경에서 만나니 훨씬 의젓해진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아이들도 신학기라 긴장하고 있는 모습들이
느껴진다.
3월은 기초활동과 기법 다지기 놀이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아이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규칙과 약속 지키기와 바른 자세를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교육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연령이 바뀐 지금은 기초 활동부터 다시 시작한다.
신입 원아도 있고 연령에 맞는 기본자세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바뀐 교실 환경, 새로운 친구들,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과 적응하고 있는 단계라서 점토수업만큼은 조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 전체적인 원 분위기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부담감을 낮추고 편안하고 쉽게 단계별로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첫 수업을 편안하고 재미있게 분위기로 마무리될 때쯤 밝은 미소로 늘 차분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아린이라는 여자친구가 자기 활동이 끝난 후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경우가 가끔 있어서 소중한 아이들의 말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펜을 들고 급히 출석부 뒷면에 아린이의 말을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아린아! 왜 무슨 할 말이 있어?라고 하니 나의 예상대로 "예!"라고 조용히 대답한다.
"선생님은 세상에서 반짝이고 귀해요!"라고 말한다.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아린이의 말을 들었지만 다시 확인하기 위해 "뭐라고?" 잘 못 들은 척하며 다시 말해보라 하니 똑같이 반복해서 말한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왜? 선생님이 귀해?"라고 물으니"선생님이 예뻐서요!"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특별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흔히 아이들이 선생님이 좋아서 하는 말이지 않을까?라고 하는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우리 어른들은 어떨까? 아무리 첫 수업이 재미있었다 하더라도 선생님께 나가서 앞뒤 문맥이 잘 맞지 않는 단어를 조합해서 말할 수 있을까?
20년 넘게 유아들과 점토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그 친구의 마음이 읽어지고 작은 행동 하나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어 말 한마디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끔 아이들이 전달하는 말은 천사의 음성처럼 들릴 때가 있다.
수업을 갈 때마다 가끔 맑은 영혼의 아이들의 한마디는 나의 머릿속에 한동안 잊히지 않고 맴돌 때가 있다. 그 말들은 너무 맑은 유아들의 생각이기에 한치에 덧붙임도 과장도 강요도 아닌 순수한 말이라서 오랫동안 잊지 않으려 메모를 해 둔다.
작년 유치원 5세 3반을 수업을 하는데 전체 아이들 중 유독 첫 수업 때부터 눈에서 빛이 나고 손끝 활동과 소근육이 무척 발달하고 감각이 뛰어난 다영이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수업 때마다 늘 그 친구의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던 어느 날 다영이가 도입 설명을 다 듣더니 큰소리로 말을 한다. "오늘도 누워서 떡먹기네요!"라고 했다.
다영이에게 그 말뜻이 무슨 뜻인 줄 아냐고 물었더니 "네! 그만큼 쉽다는 뜻이죠!"라고 한다.
어른처럼 다 안다는 듯 말하는 모습이 놀라워서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가 평소 돌봄을 해주셔서 말을 잘한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학기가 무르익어 가는 10월에 열심히 아이들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 만든 친구들은 작품을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어김없이 가장 먼저 다영이가 활동 작품을 보여준다.
그런데 바쁜 와중에서 자기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뭔가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어?"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특별하게 태어나신 거 같아요!"라고 한다.
"선생님이 뭐가 특별해? "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점토를 잘하시니깐요!"라고 말한다.
애매한 질문을 단순하고 정직하게 대답해 준다.
다영이의 이 말 한 구절이 올 한 해 너무 힘들게 최선을 다하고 버텨온 나에게 은혜스러운 말이었다.
나도 가끔 내가 왜 태어났을까에 대한 생각을 막연하게 들 때가 있고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시 찾아보려 할 때가 있는데 5세 다영이가 해준 말은 나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맑은 영혼의 천사의 메시지로 들렸다.
어쩌다가 점토를 배우지도 않고 우연찮게 인수한 공방에서 수강생보다 일주일 먼저 배워가며 습득했고 맨땅에 헤딩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찾아가고 깨닫고 만들었던 25년 전 작은 공방에서 성인 자격증반 수강료와 수강료보다 더비 싼 재료비로 유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방 앞에 늘 꼬마 아이들이 문 앞에 매달려 구경을 하길래 어느 날 아동반을 수업해야겠다고 시작하며 모집된 수강생들이 어느 시점이 되니 아동반을 전문으로 하게 되었고, 자격증을 딴 선생님들을 지방에서 동네 별로 교실을 오픈하고 성인보다 유아와 아동 교육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예도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깨달았고 앞으로의 진로 방향을 결정했다.
물론 내가 하고 있는 공예는 전통공예가 아닌 생활공예라서 더욱 공예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아 교육을 선택했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우연찮게 수강하게 된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따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전문대 유아교육과 특강으로 시작하게 되어 시간 강사지만 교수님 소리를 들어보는 기회도 있었다.
결혼을 하며 서울로 왔지만 대학 강사의 이력이 좋아서 큰아들이 100일도 안되었을 때 그 아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과 안동을 일주일에 한 번씩 오가기를 한 학기 동안 한 적도 있었다.
차에서 울면 젖도 먹이고 포대기에 업지도 잘 못하는데 버스에 내리기 전 뒷자리에 앉으신 분이 아이를 올려주면 포대기를 묶어서 짐을 챙겨 다녔던 그렇게 힘들게 하면서도 이 일이 좋아서 버텼었다.
돌이켜봐도 내가 이일을 하면서 힘겨웠던 이야기가 휘리릭 스쳐 지나가면서 다영이가 한 말에 나의 인생 이야기를 퍼즐처럼 끼어 맞추었다.
"그래 난 점토 선생님이 되려고 특별하게 태어난 거야! "
특별해서 힘든 어려움도 더 많이 겪었고 특별해서 내가 스스로 하나하나 내손으로 이뤄내고 있었다.
"특별하니깐 특별하게 살 거야"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힘내볼 거라 다짐을 했던 계기가 되었다.
나의 문제를 내가 풀어가지 못할 때 주변 누군가에게 상담도 하고 친한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고민을 상담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주변 상황을 살피고 적당히 나의 입장과 이야기하는 본인의 입장을 잘 조율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유아들은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지금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천사들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