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연말부터 1월 초까지 한국 방송통신 대학교 편입생 모집에 관심을 갖고 몇 번을 고민하고 도전을 해볼까?
아님 사이버대학교에 입학을 할까? 하며 여기저기 대학교 편입학에 대해 알아보고 나에게 맞는 과는 교육학과, 유아교육과, 미술치료학과의 입학전형 안내를 검토하는 시기가 또 어김없이 찾아오곤 한다.
나의 전공은 교육도 아니고 미술 쪽도 아닌 전문대학교 행정학과를 나왔다.
나는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직장을 1년 정도 다닌 후에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 야간으로 다니며 다시 공부를 했다.
나의 첫 직장은 건설회사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분양 업무를 담당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말에 취직이 되어 나와 다른 동창 친구와 함께 2명이 합격해서 그 친구는 현장사무실로 발령이 나고 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근무를 했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단어는 평생을 기억하게 한다.
첫 직장에서 그 어린 나이에 분양 업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파트에 대한 안내 설명을 하고
한 명 한 명 상담하며 아파트 계약, 중도금 수납, 입주까지 일을 너무 잘해서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만큼 능력을 인정을 받았다.
그렇게 회사에서 1차로 분양한 아파트는 성공리에 완료되었다.
회사에서는 1차에 힘입어 또 다른 지역에 2차로 신규 아파트를 분양 계획하였고 1차 분양업무를 너무 잘해서 그때 당시 홍보팀에서는 분양 담당자인 나를 홍보지 모델로 넣어보자고 하셔서 광고지에 내 모습이 실렸었다. 그런데 1차와 달리 미분양이 무더기로 나오고 계약률이 25%밖에 안되었다.
그런 아파트를 공사 기간 2년 6개월 만에 나는 90%까지 계약을 완료했고 입주를 시켰었다.
시간이 지나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그때 그 통통했던 20대 초반의 당찼던 나의 모습이 담긴 홍보지 한 장을 보관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고 내가 모델로 나가서 초기 분양이 안되었다는 가족들과의 농담도 시간이 훌쩍 지나 보니 소중한 추억의 이야기가 되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때 분양했던 아파트 입주자의 동호수와 이름이 몇몇 기억이 날 정도다.
그때 그 어린 나이의 나의 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고객의 목소리와 성함, 동호수를 기억하려 노력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모델하우스 중앙 홀에 배치되어 있었던 동호수 조감도 앞에서 101동 101호 이름
김**부터 102호 한** ~ 1513호 이 ** 까지 1층에서 15층까지 동 호수별로 반복적으로 소리 내어
외우기를 거의 매일 연습했었다.
분양 상담 전화가 올 때마다 고객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했고 방문객이 오시면 그분의 특징을 메모하거나 그분들의 분위기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 덕분에 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스쳐 지나간 듯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습관이 길러졌다.
그리고 사무실에 문의 전화가 오면 " 안녕하세요!라는 첫인사말만 들어도 몇 동 몇 호 김** 씨지요? "
라고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면 고객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무척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땐 참 기억력이 무척 좋았다. 내가 공부를 아주 잘했거나 암기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주변에 관심이 무척 많았고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호기심이 지금은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오랜 습관이 되었다.
어린이집 어떤 친구는 큰언니, 작은언니, 막내까지 3명의 딸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고 나와 수업을 했는데 첫째, 둘째, 지금의 셋째까지 성향을 모두 파악하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다른 집의 형제자매 들도 그렇게 연결하여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수업 도중 동생에게 언니나 형의 이름을 대신 부를 때도 종종 있다.
쉼 없이 열심히 살아온 나의 인생에서 50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니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졌고
편안함과 당당함이 남아있었다.
얼마 전에 유치원 수업 후 복도에서 원장님을 만나 내가 그린 계묘년 토끼 그림엽서를 선물로 드리니 너무
좋아하시고 칭찬하시면서 "선생님 미술 전공하셨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니에요! 원장님 저는 행정학과를 나왔어요! "라고 바로 말씀을 드렸더니 의아해하시는 눈빛으로 바로 보셨다.
원장님께서도 내가 그린 그림이 맘에 들어서 편하게 나온 질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른 오해도 나에 대한 부끄럼움도 없이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25년 동안 유아 점토교육을 하면서 나의 열정과 노력을 믿고 있었고 나는 온전한 나의 편이기에 당당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동안 코로나로 잠시 멈춤을 하는 시간에 마냥 멈춤이 풀리기만 기다릴 수만 없어서 새로운 배움의 도전을 시작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도예를 배웠고, 훌륭하신 미술 선생님을 만나 취미 미술로 그림도 배웠다.
도예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너무 해 주고 싶었던 흙놀이 수업을 진행했고, 그림을 배우고 난 후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점토그림 작업을 유튜브에 올렸고 내가 발행하는 브런치 글 위에 그림을 삽화로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더욱 감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시간이며 누구에게나 기회의 때가 있다.
그때가 왔을 때 겸허히 받아들이고 소중한 시간과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 간다면 나는 또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훌륭한 발판이 된다.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논문을 발견했다.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으로 "점토놀이의 교육적 활용 사례 연구"라는 2004년 작성된 논문집을 나는 제본을 해서 사무실 책장 한편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15년 전쯤 미국에서 생활을 하시고 교육 전도사라고 하시는 분이 한국에 잠시 나오셨다가 칼라믹스 점토를 배우려고 알아보던 중 나에게 연락이 와서 자격증 반에 수강신청을 하셨다.
나는 그때 30대였고 그분은 40대 후반으로 기억을 한다.
어느 곳이든 수강생을 가르치다 보면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개인 사생활이나 나의 생각을 서로 소통하면서 교육을 했다. 그분께서는 어머님이 경북에 있는 **대학교 총장까지 하셨고 그분 또한 인품이 훌륭하시고 여러 학문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셨다.
미국에 있는 지인들께 칼라믹스로 만든 수공예품을 선물로 주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때 나는 가볍게 드릴 수 있는 과일 모양 위에 믿음, 사랑, 소망 단어를 점토 영어글씨로 써서 오븐에 구워 냉장고 자석 선물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고 열심히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정을 계획해서 배웠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당겨져서 자격증 취득은 결국 하지 못하고 교육을 급히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마지막 수업을 하기로 한날 전도사님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큰 서류 봉투를 나에게 주셨다.
그 서류 속에는 대학원 논문집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점토 교육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고 했고 나의 열정이 안타까웠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주고 싶다고 해서 직접 자료를 찾아 프린트를 해 오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선생님 꼭 공부해 보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미국으로 돌아가셨다.
그분이 처음 왔을 때 교육 전도사라고 하셔서 무슨 일을 하시는 건지 잘 몰랐는데 논문을 받고 나니 그분의 소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를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 많은 점토 공방 중에서 나와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오셨구나 라는 감사의 생각이 들면서 깨달았다.
그 이후 나는 사이버대학교 미술 치료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30대 중반이었고 아이들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시간이라 쉽지 않아 결국 학업을 중단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주 소중한 인연을 만났지만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고
열정은 있었지만 열정만 믿고 올인할 수 있는 나의 능력도 부족했다.
나는 유아교육, 미술, 공예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개척하듯 일궈온 배움이라서 매 해마다 경험하고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스스로의 문제점을 차곡차곡 정리했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참고서를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다니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과에 입학을 한다고 해도 들어야 할 교양과목도 이수해야 하고 학위를 받기 위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듯했다.
내가 직업이 없다면 학위를 따기 위해 온전히 노력을 해야겠지만 나는 직업이 있기에 나의 직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온전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짐을 했다.
유아 점토 교육을 위한 창작 조형활동, 유아미술, 조형활동의 이론과 실제 등 내가 필요한 책을 공부를 하기로 했다. 교재 내용을 먼저 이해하고 그 문항에 그동안의 경험한 실무 점토 교육과 연관시켜서 글을 써보았더니 놀랍게도 전혀 다른 새로운 참고서가 나왔다.
그동안 매년 원서접수 기간만 되면 뭔가 가슴을 압박해 오던 나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는 방법을 찾았다.
유아교육 조형활동에 관한 여러 책들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눈으로 공부하는 것으로는 오래전 20대의 기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나의 기억 창고가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를 하며 이해한 내용을 새롭게 정리하여 나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바꾼 나만의 참고서를 만들고 있다.
나의 사라지지 않는 목표가 정해졌다.
'나만을 위한 미래 상상 공간에 대학교를 세우고 유아점토 교육과를 만들고 나는 교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아점토 교육 강사라는 직업에 관심 있는 분들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하고 교육해서 많은 아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