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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이 Jun 27. 2023

 귀여운 깜빡쟁이 선생님

" 실수를 인정하고 재미있게 연극하며 재치 있게 행동하라! "

오늘도 양손 가득 보따리 가방을  들고 유치원에 도착했다. 수요일은 용산에 있는 유치원 5세 수업이 있는 날이다. 1시 50분에 수업이 시작이라 15분 전에 도착해서 각 교실 앞에서  반별 가방을 나누고 교무실에서 출석부를 챙겨 나오며 무선 마이크까지 준비를 한다.


강사라는 직업은 아무리 오래 해도 수업 시작 전 긴장감은 어김없이 조용히 몸에 스며든다.

수업에 들어가기 5분 전 갑자기 사무실에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사무실 온장고에 황토색 점토가 2 봉지 들어있는데 두고 가신 듯하네요!"라는 문자다. 어머나! 그제야 오늘 꽃이 폈어요 라는 주제로 5세 친구들과 꽃밭 이야기를

꾸며보는 활동인데 꽃밭 흙놀이를 표현하는 황토색이 딱딱해서 온장고에 넣어두고 챙긴다는 것을 깜빡하고 그냥 왔다.


오늘 교육내용에서 주인공은 동그라미 꽃잎 놀이지만 조연으로 꼭 필요한 흙을 덮어주는 표현 놀이가 빠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수습하기에는 시간이 5분 정도밖에 없었고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우선 오늘 수업할 진행과정을 빠르게 스켄하고 수업 내용의 순서와 스토리를 편집해야  하는 상황이다.


챙기지 못한 황토색 흙이라는 조연을 다른 조연으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흰색 구름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양의 흰색과 꽃밭에 물을 꾸미기 위해 파란색 아주 작은 조각을 합쳐서 대본에 없던 아기 비구름 이야기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각색하기로 결론이 내렸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오랜 경력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수업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위기는 모면할 수 있지만  그동안 해오던  프로그램의 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우선 양심 고백은 어떤 상황에도 선의를 베풀 수 있기에 담임선생님께 조용히 먼저 말씀을 드렸고 활동 후 흙 표현 부분은 내가 마무리를 가볍게  해 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도입 설명 때  재 구성한 프로그램 진행방식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5세 친구들에게는 이상할 것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솔직함을 선택했다.  


꽃 이야기를 설명한 후 아이들에게  " 그런데 이렇게 예쁜 꽃이 하룻밤 이틀밤이 지나면 들어 버릴지 몰라서 선생님이 황토색 흙을 준비했는데 글쎄..." 하고 잠시 이야기를 멈추니 이들은 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한다.


" 미안해! 흙을 선생님이 깜빡하고 안 가지고 왔어"라고 말하며 표정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진심 어린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 순간도 교육의 일환으로 실수를 용서해 주는 배려심을 울 수 있기에  당당하게 연극을 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으나 맨 뒷자리에 있던 평상시에 밝은  여자 친구가 큰소리로 " 괜찮아요~ 다음에 가지고 오면 되지요"라고 말한다. 어쩜 그날 나를 지켜준 그 친구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나의 수호천사 였다.


친구의 대답을 시작으로  다른 친구들도 나를 더욱 불쌍히 여겨주는 눈빛을 보여주며 동정의 말로 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 표정으로  "괜찮아요!"라고 말을 한다.


그렇게  꽃이 폈어요! 수업을 잘 마무리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반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반 가서도 똑같이 한번 더 재방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같은 연령을 수업해도 각 반들마다 아이들의 성향과 분위기가 달라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똑같이 다른 반에 가서 미리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고 처음 반에서 리허설 연극을 했던 터라 더 자신 있게 대본을 틀리지 않고 진지하게 연극을 다.


그런데 두 번째 반에서는 남자 친구 한 명이 아주 밝게 큰소리로  "그럼 지금 가서 가지고 와요!"라고 하는 예상치 못한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그리고 그 친구의 말 때문인지 다른 아이들은 가지고 오라는 분위기로 나를 몰아갔다.

앞반의 친구들과는 다른 분위기이기에 나는 현실적으로 바로 대응을 했다.


" 선생님이 흙 점토를 가지러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안돼! 너희들이 예쁜 꽃을 만들어 주면 선생님이 얼른 시들기 전에  흙을 덮어서 가지고 올게! "라고 하니 아무렇지 않게 "네!" 하며 쿨하게 대답을 한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활동한 작품을 가지고 오면서 동료 강사님들 단톡방에 나의 실수담을 올려주니 흙이 없어도 너무 잘 표현이 되었다고 나를 위로해 준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표현한 꽃밑에 황토색 흙을 얇게 깔아주는 뒷일을 하면서 또다시 마음을 추슬렀고 아이들의 행동이 생각나서 웃음도 나왔다.


사실 나는 1년에 한두  정도 이런 실수를 하는 듯하다. 이런 사고는 보통  신학기에는 잘 일어나지 않고 긴장감이 완화되고 학기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6~7월이나 10월~11월쯤 일어난다.


특별활동 강사들은 주 1회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요일별로 찾아가는 교육 기관이 정해져 있는데 가끔은

운전하다가도 지나가는 경로가 비슷한  다른 요일에 가는  원의 방향으로 가게 되어 급히 유턴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가끔 겪는다.


또한 일하면서 가장 긴장하고 집중하는 타이밍은 수업  재료를 챙기는 흔히 보따리 싸는 시간이다. 우린 이때 다른 동료 강사들과 대화를 서로 줄이고 혼잣말을 흥얼거리며 반복하듯 하나씩 재료를 확인하며 챙긴다.

그리고 아무리 보따리가 많고 무거워도 내가 직접 챙겨가고 짐가방을 차에 싣고 출발해야 안심이 된다.


주일 후 그 유치원에 수업을 갔고  도입 설명을 하려는데 아이들 중 한 명이 "오늘은 가지고 왔어요?"라고 엉뚱하게 묻는다.  귀여운 5살 친구의 말을 어른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오늘은 수업 재료를 깜빡하지 않고 잘 챙겨 왔어요?"라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했다.


"그럼~ 지난주에는  선생님이 깜빡쟁이가 되었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잘 챙겨 왔지요!" 라며  나는 스스로  아이들에게 귀여운 깜빡쟁이 선생님이라고 인정을 해야 했다.


강사의 경력이 쌓여가는 만큼 나이도 들고 생각도 더 많다 보니 일상 속에서 깜빡깜빡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에 우울해하지 말고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긴장하지 말고 지혜롭게  인정하며 재치 있게 행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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