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

아침이 버거운 이들이 햇빛에 아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by 늘여름

한 번도 마주 본 적 없지만, 웃는 모습의 여러분을 뵌다면 그 눈부심에 저는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편의점, 식당, 카페와 같이 일상의 공간에서 고된 현실 속에 감추어두었던 미소라는 이름의 햇살을 주변에 비춰주면, 어쩌다 우리는 서로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 분들의 책과 영상을 접하면서 냉장고에 큼지막하게 붙여둔 가족의 연락처가 무색하게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서늘한 곳에서 외롭게 소중한 사람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일상에서 작은 약속을 꼭 지키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60대가 넘어가면 네가 기억할 약속이 있어.

엄마가 일주일 넘게 연락이 없으면 저녁쯤 전화를 걸어.

그런데도 받지 않고 회신이 없으면 다음날 아침에 또 연락해야 돼. 그래도 안 받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거니까 명심해. 알았지? 잘 기억해 우리 딸"

주변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 따스한 관심, 올라가는 입가에 밀고 들어오는 고마움이 생길 겁니다. 향후 있을 감동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통계청에서 낸 대한민국 사망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22년 25.2명, 23년 27.3명, 24년 28.3명(잠정치)이 스스로 죽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0대와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사고가 아닌 자발적인 죽음이라는 재난과 같은 사실에 우리는 위기의식과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참견하고 싶지 않다는 명목상 이유로 외면하면 더 깊은 상실로 돌아온다는 걸 지금에서야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가족, 친구, 동료, 지인이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중고등학교/N수 입시 준비, 대학교 학업 성취, 취업/이직 준비, 직장 생활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쟁으로 인해 병들어있는지 절실하게 느껴왔습니다.

삶이라는 문항에 정답이라는 선택지는 없는데 자꾸 틀리는 걸 피하고 뭐든 맞추려고 하다 보니, 실체가 없는 일에 우리는 아픈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잘하지 않아도 하면 되는 습관을 겹겹이 쌓아 세상에서 하나뿐인 여러분을 스스로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청소는 자주 한다던가 이웃들에게 아침 인사 하나는 꼬박꼬박 건넨다는 자신감이 어느 날의 여러분을 구하러 올지도 모릅니다. 매일 햇살 같은 인사를 반기는 사람들의 얼굴이 기다려지기 마련이니까요.

요즘 저로 말할 것같으면 지독한 운세 콜렉터입니다. 오늘의 행운을 붙잡고 싶어서 커피를 주문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누군가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산다는 건 본인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실례인 일입니다.

멈춘다고 잘못되는 건 없습니다. 이미 수십 번, 수백 번을 참아왔을 텐데 또 참고 버티고 견디라는 말은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프면 쉬어야 하고 슬프면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다소 주어나 목적어 없는 문장이 많습니다.)

학교, 직장과 같은 환경은 인생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배우는 곳으로 수단일 뿐입니다. 본격적인 건 어쩌면 방과 후, 귀가 후, 퇴근 후에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시대 속 취업 또는 이직 준비로 자신을 의심하는 나날이 이어지는 분이 보고 계시다면 여러분의 꿈을 부양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일터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목표를 이루는 걸 꿈꾸기에는 운의 개입이 너무나도 큽니다. 다만, 일을 마감하고 장소를 옮기면서 할 수 있는 행동반경은 생각보다 더 넓습니다.


특히, 한참 회사에서 고민이 많았던 작년은 브런치 소재가 풍년이었습니다. 덕분에 가끔 올리는 글에 자주 놀러 와주시는 소중한 직장 동료 중에도 글쓰기로 삶을 비추는 분들이 계신 걸 알게 되곤 합니다.

그렇게 소비를 통해 취향을 발견하고 독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작문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습니다.

자주 가던 공간이 문을 닫고 이전한 것이 어쩐지 섭섭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듯합니다. 이직이 확정되고 인수인계를 진행중인 제 상황과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늦게 불꺼진 독서실 스탠드 아래에서 내일을 꿈꾸는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죽음만큼은 선택지가 될 수 없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집을 다녔던 보육교사의 쓰레기 집, 종일 집에서 게임만 하던 청년의 쓰레기집, 대기업에 다니던 직장인의 쓰레기 집. 모두가 그들의 아픈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다.
더 이상 고독사의 흔적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뭐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 내가 가는 현장에 더 이상 청년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독사는 누구에게나, 심지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런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김새별 & 전애원 작가님, 남겨진 것들의 기록 中 -

그러나 수년 동안 죽음과 근접한 현장에서 일하며 알게 된 것은, 어릴 적 어른들이 해주었던 말처럼 죽음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추한 것도 아니다. 죽음은 그저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다.
우리는 지고 가지 못하고 남기지도 못한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 김새별 & 전애원 작가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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