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회사에서 만난다

행복의 비결을 찾아서

by 늘여름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버려야 살 수 있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이라는 열쇠로 브런치 서랍 속에 담긴 소재를 꺼내 들었습니다.


휴가 여행지에 내려서 제멋대로 울리는 통화음과 연이어 사내 메신저에 남긴 내용을 다시 묻는 당당한 카카오톡 알림은 제 안에 잠들어있던 이야기를 깨우는 신호로 들렸습니다.


사무실 한 구석에서 화장실 빈자리에서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속에서 그토록 꾸역꾸역 집어삼켰던 응어리를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먹고사는 길 앞에서야말로 예의를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는 게 이기는 순간이 있다는 걸 경험한 두 달간의 에피소드가 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정서불안 김햄찌님의 영상을 구독한 분(해씨)이 계신가요? 햄찌의 실수 후 주변 도움을 받아 수습하거나 뜻밖의 야근에 전투력을 올리는 모습에 우리가 보이기도 합니다.


파동으로 만든 나침반

7~8월, 마음속 파도가 일렁였고 잔잔히 부서지는 순간도 있었으며 일상은 그 여운으로 흔들렸습니다. 다만, 덕분에 같이 일하기 좋은 동료의 기준이자 제가 되고 싶은 회사원상을 찾았습니다.


제1조(격조) 사소한 감사와 최소한의 사과의 언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

기본적인 말들을 쉽게 건너뛰곤 했던 지나간 이에 대한 감정기록입니다. 나갈 계획을 실현하며 다음 걸음을 향했지만, 서두르느라 당장의 자리를 정리할 겨를조차 없이 남은 건 흩어진 흔적뿐이었습니다.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동료들에게 무기 삼아 내세우는 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제2조(구조화)
① 모든 일을 본분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 포지셔닝이 되어야 한다.
② 일의 우선순위를 나눌 수 있고, 기한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영업시간에 해야 할 일과 임박한 기한을 동시에 마주하며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달빛이 해를 덮은 깊은 밤까지 남은 일을 이어가며 인계 업무에 대한 매뉴얼과 방식을 보완하는 일, 그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건넨 배려는, 맡겨진 일을 느슨하게 흘려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청유(淸流)님과 함께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거래처와 유관 부서의 협업 과정에서 마주한 문제들은 대체로 풀리지 못한 채 남겨졌고, 그 틈에 방어적인 미소만이 공허하게 떠돌았습니다.

향운(響韻)님의 표현에 따르면 누군가의 정중한 무례에 마음이 어려웠던, 저를 지키기 위해 그때의 저는 당사자에게 원하는 바와 불편한 점을 솔직히 전하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습니다.


마음의 방패가 된 시간

제3조(태도) 일의 방법뿐만 아니라 의도에도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오피스 빌런이 있다면 그 옆에는 든든한 코워커도 있습니다. 출근은 정해져 있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계를 잃어버린 청유님은 필기장인입니다.

차곡차곡 적어온 전교 1등의 비법 노트를 흔쾌히 공유해 주시곤 합니다. 물론 종이 위 기록의 디지털화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학업이든 생업, 직업이든 정해진 방식으로만 임한다고 끝이 아니더군요. 결과가 의도대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방법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물음표 하나 없는 태도로는 느낌표를 찍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온 힘으로 진심을 다하는 건 그 자체로 멋있습니다.


책임감이 만들어낸 질문이 가득한 청유님과 의외로 조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점은 스스로 답을 잘 찾아가고 계신다는 겁니다. (여담으로 다음 주 점심에 파트원들에게 감동 복수를 예고하셔서 사뭇 기대 중입니다.)

저희 팀 긍정의 아이콘인 클로버님은 크게 웃고 잘게 고민거리들을 들어주십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행복의 비결을 전수하는 사람이 되기위해 현생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조조 코믹스)


이번 글은 완성하고 올리기까지 한 달하고도 꼬박 일주일이 더 걸렸으며 수십 번의 수정이 거듭되었습니다. 제가 고른 글감을 붙들고 미친 듯이 후회하며 힘들었던 날들을 곱씹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생각보다 더 강했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제 에너지가 저를 위한 길로 흐르도록 선택하는 것이 최선임을 압니다. 편치 않았던 만남조차 제 글 인생에 적당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괴로웠던 경험이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나요?

일단 나는 내가 ‘아무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게 문제지만 하여튼 그렇다.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그 일에 몰두한다.
전반적으로 나는 이십 대의 내가 만났다면 재수 없어했을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왜 그렇게 많이 변했냐고 누가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들이 답을 몰라서 화가 났던 것 같다. 어른이라고 모두 답을 아는 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때였다.

- 김영하 작가님, 단 한 번의 삶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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