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고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습도만 높아서
미풍 선풍기, 파워 냉방 에어컨, 오색 부채, 가지런히 접힌 손수건, 짱짱한 머리끈, 투명 집게핀, 사각거리는 나일론 가방, 얇은 소재의 옷감, 땡땡이 무늬가 콕콕 박힌 망사 신발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는 무더위를 나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이겨내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데이식스 영케이 님의 <let it be summer>, 하이키의 <여름이었다> 등과 같은 노래에 열기를 맡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 앞에 와있습니다.
오늘은 소나기가 쏟아질까, 불볕에 갇힐까 날씨 고민 외에 걱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픈 한편, 맑은 날이 아니어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즐기길 바라곤 합니다. 잠깐 비 온다고 하루 종일 축축하지 않으며, 쨍하게 마르기 마련이니까요.
업무상 필요하여 회사에서 권하는 8월 자격증 시험부터 7월 말과 8월 중순 두 차례의 거래처 회의까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날들이 지나가고 몰려오는 과로통을 안고 제주도로 여름휴가까지 다녀왔습니다.
보고, 회의, 점검, 취합의 기술은 직장인의 필수 덕목입니다. 일을 하기 위한 일이라는 점과 타이밍이 중요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더구나 재직 중인 회사는 '늘 하던 대로', '있는 그대로', '그냥'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임계점은 일을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순간, 곧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천운처럼 제 선임은 소나기가 쏟아지면 우산을 나누어 씌워주는 해결사와 같은 분인지라 실무뿐만 아니라 태도에서도 배우고 있습니다. (향운님이 선임님을 수호자 유미카엘이라고 칭할 정도입니다.)
울음이 눈물샘 끝까지 차오르듯 압도되는 상황에 잠겨 이 악물고 마무리하다 보면 안 보이고 안 들리던 게 나타납니다. 의도를 모르고 한 일을 지나치지 않고 담아두다 보면 상황이 나서서 해답을 주기도 하더군요.
그러니 당장 해내지 못했다고 부족하다고 스스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황 때문에 눈앞이 흐릿해지기만 해도 저희 파트원 분들이 서로 부메랑처럼 각티슈를 책상 위로 건네며 보태주는 힘을 받는 순간의 다정함은 여전히 강합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공부의 경우, 이제는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으면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셀프 보상이라도 우선 공급합니다. 어떤 날의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새콤한 복숭아 아이스티는 당근으로 쓰입니다.
다행히 저는 여름 + 주말 조합의 도서관을 무척 좋아합니다. (쏘 있어빌리티) 일요일 7시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중의 열람실에 있는 투박하고 오래된 PC로 어김없이 구글 드라이브에 접속해 신용평가회사 보고서를 읽고 코랩 환경에서 코드도 짜고 교보 전자책의 첫 장을 딸깍 누릅니다.
자격증 시험공부 역시 태블릿을 이용하고 달큰한 맥심 모카골드 믹스커피를 드시는 옆자리 어르신의 엑셀창도 기웃거리며 엿보았습니다. 모두에 의해서 종이의 쓸모가 덜어져 가는 도서관의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평일엔 또 어디에 있다가 주말만 되면 모이는 건지 반갑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넘어서, 어쩌면 더 재미있게 일할 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일도 삶의 일부니까요. 물론 잘하면 쉽게 즐거워지겠지만요. (여러분도 출퇴근 메이트 정서불안 김햄찌와 함께 하는 건 어떠신가요?)
여담으로 여름에는 헤어 스타일을 휙휙 바꾸는 맛이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은 앞머리 있는 컬이 있는 긴 머리여서 어느 날은 한 꼬집 반묶음 머리를 하고, 머리띠를 쓰거나 집게핀으로 포니테일을 하기도 하며 조금이라도 시원한 방식을 찾아다녔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위도 막을 내리고 최애의 계절이 끝나기 전에 꼭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끈질겼던 여름을 음료 한잔, 마음 한상, 글 한줄, 빵 한입과 함께 난 듯합니다. 잠시의 일교차에도 건강과 웃음 모두 잘 챙기고 계시길 바라며, 저는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사람 상처에는 냄새가 있어요."
얼마나 많은 이별이 이 여름에 깃들어있는 것일까
여름을 완주하고 이제 잎색을 바꾼 나무가 그런 열매 위로 밤공기를 사뿐히 내려놓았다.
"당신들에게 맞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
- 김금희 작가님 x 출판사 무제, 첫여름, 완주 中 -
"저분은 나를 좋아하시거든.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귀에 들리는 소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전해지는 마음이 중요할 뿐이지."
어두운 생각, 수치, 원한을 웃음으로 맞으십시오. 누가 오더라도 감사하십시오. 그들 모두는 저 너머로 당신을 안내하고자 찾아왔습니다.
- 박태현 작가님, 회사를 다닐 수도 떠날 수도 없을 때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