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생활기 #9]
로스쿨에 입학하고 일기처럼 써보려고 했었는데, 8번째 글 뒤에 긴 공백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글 만큼이나 나도 나의 2학년 생활이 마무리되는게 당황스럽다. 오늘로 로스쿨 2학년의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시험기간이 무려 5주나 됐다. 시험 과목은 5과목이었지만, 형사실무, 검찰실무와 같이 아주 무거운 전국시험이 11월 말과 12월 초에 있었기에 시험 스트레스는 길어졌다.
그리고 진짜 기말고사기간에 남은 과목들 시험을 치고 오늘 끝이 났다.
그리고 섭섭하게 친 시험보다 더 서운한 내 형사실무, 검찰실무 성적이 내가 바라던 바와 같은 결과 됐다. 나는 두 시험을 애매하게 잘 보지만 않기를 바랬다. 왜냐면 아주 잘 치면 공직을 준비할 수 있고, 못치면 변호사시험만 바라보면 되지만 애매하게 잘 보면 공직이 될 것 같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변호사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사는 고통스러운 3학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미래의 좋은 직업은 불명확하지만 당장 내 3학년의 고통은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이기에 애매한 결과만 피하고 싶었다.
내 성적은 정확히 공직을 준비하지 않을 정도가 나왔다.
두 과목 다 전국 20% 대로 학점만 큰 손실 없이 가져갈 수준이 되었다. 바라던 바 대로 되었지만 참 섭섭하다. 그래도 많이 고생한 것 같았는데, 나의 고생이 이 정도 가치밖에 안됐구나 하는 생각에 참 속상하다. 로스쿨에 와서 내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내 고통이 그렇게 가치 있지 않다는 걸 많이 알아간다.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어렸을 때는 나도 머리로는 어디서 지지 않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는 수시로 패배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내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보자면 내가 높은 수준의 집단에 속해있다는 것, 그나마 젊은 나이에 좌절에 익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래도 성장의 과정은 참 고통스럽다. 솔직히 온힘을 다해 노력했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만큼도 꽤 고통스러웠고, 만약에 내가 더 인내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보장되면 나는 더 노력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다. A-가 A0가 되고 A+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할 자신도 없지만, 노력한다고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된다고 해도 내 인생이 고생한 만큼 변화할까 모르겠다.
이제 내 로스쿨 2학년 생활이 마무리되었고 내게 공직 없는 변시준비라는 깔끔한 로3의 진로가 결정되었다.
나는 로스쿨이라는 선택에는 후회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게 맞나 의심이 많이 든다.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말하는대로'라는 노래에 '나 스무살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가슴은 아프도록 답답할 때 난 왜 안되지 왜 난 안되지 되뇌었지'라는 가사가 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만 해도 마냥 어렸는데, 어느순간 이 노래 가사가 가슴을 파고 든다. 대단한 걸 욕심내면서도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불안한 내 마지막 2학년의 날이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