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생활기 #8] 첫 술자리에서 개고생과 흑역사를 만들었다.
중간고사가 끝났다고 술 약속을 잡았다. 정말 신났었다. 평소에 저녁을 집에서 항상 먹어야 했는데 이번만큼은 허락을 받고 저녁 약속을 잡았다. 늦지 않으려고 결심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고생과 흑역사를 남긴 채 나는 다시 저녁 약속은 못 가는 사람이 됐다.
정말 오래간만에 저녁 약속이라 무리했다.
나는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과 다르게 본가에서 등하교를 한다. 그래서 항상 가족들과 아침저녁을 먹었고, 원래 점심은 안 먹어서 학교 사람들과 식사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중간고사 끝났다고 술 약속이 잡혀서 정말 신나게 놀고 마셨다. 원래 9시면 집에 가려고 했으나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나는 일어날 시간을 계속 미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 뜨니 같이 술 먹은 동기 집이었다.
일단 내가 소리 지르고 토한 게 기억났다. 그리고 집에서 기다릴게 뻔한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렇게 정신 차리자마자 새벽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심지어 핸드폰도 고장 나서 안되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근처 편의점에서 간신히 길을 물어 집에 들어갔다. 정말 개고생 한 것 같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자고 다음날 초췌해진 어머니의 콩나물국을 먹으며 상황을 들었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나와 같은 자리에 있던 친구와 통화를 했고, 주소도 알려줬으나 그 친구는 자기 집으로 택시를 몬 것이다. 일단 술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무엇보다 택시에 내려 소리치고 토하는 나를 감당한 상황이 있었기에 일단 내가 카톡으로 사과를 했다.
택시 타고 수업에 갔으나 오후 수업은 듣지 못했다.
정말 힘들었다. 오전 수업은 어떻게 시체처럼 들었으나, 마침 오후 수업은 출석체크를 안 해서 나는 집으로 갔다. 집에서 좀 쉬다가 핸드폰을 고치러 갔으나 고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마침 또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갈아타고 싶었던 터라 폰을 새로 주문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다시 어머니께 사죄의 상황이 돌아왔다.
그날 새벽 그 친구와 통화하고 내내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셨다고 한다. 그리고 뒷골이 당기는 두통이 너무 심하다고 앓아누우셨다. 죄책감이 가슴을 후비는 것 같았고, 그 이후로도 잡혀있었던 내 모든 저녁 약속은 취소됐다. 그리고 내 새 핸드폰에는 위치추적 앱이 깔리고서야 어머니는 회복될 수 있었다.
그 한 번의 술자리로 참 많은 걸 잃었다. 좋았을 뻔한 동기와의 술자리의 기억, 나와 어머니의 건강, 핸드폰, 그날 입은 옷, 이후의 술 약속과 내 위치 프라이버시까지 이제 없다.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봐야 하나. 이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를 바라며, 답답한 마음을 추슬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