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 뒤에 만난 금오름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by todayeon

친구와 서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떠나기로 한 5월 초의 제주 여행.

그만큼 원했던 여행이었고, 졸업 후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휴식이 필요한 때였다.

사실 취준생인 나는 지금이 가장 여유로울 때이니 여행을 많이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제주의 5월은 내내 날씨가 맑을 줄만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무턱대고 한 달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해 버렸다. 하지만 점점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서

제주 날씨를 확인해 보니 우리가 여행하는 3박 4일 동안 호우특보가 예상된다는 것..

나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많이 좌우되기도 하고 기대가 큰 여행이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적적으로 날씨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제주로 출발했지만

역시나 내리자마자 우릴 반겨준 건 제주의 굵은 빗방울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제주 날씨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났는데, 제주 5월 역대 강수량 중 가장 많다는 기사가 날

정도로 거의 물폭탄 급이었다..!


그렇게 4일 중 3일을 비와 함께 스펙터클한 여행을 하고,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내내 듣던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창문을 열어봤는데 지겹도록 오던 비가 뚝 끊겨 있었다.

파란 하늘은 아닌 회색빛 하늘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

예전부터 정말 가보고 싶었던 금오름으로 떠났다.


금오름까지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우산이나 우비 없이 가벼운 손과 몸으로 밖을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하지만 점점 금오름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오름 전체를 자욱한 안개가 휘감고 있었다.


그래도 가까이 가보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구까지 가보았지만

입구 너머로는 길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KakaoTalk_20230519_162540076.jpg 금오름 입구

앞을 가로막은 막막함에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나 잠시 고민도 하였지만

그간 쏟아지는 폭우와 강풍도 이겨냈던 우리이기에 올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발걸음을 얼마나 옮겼을까, 잠시 뒤 처음 보는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KakaoTalk_20230520_163812585.jpg

어둡고 스산하지만 무언가 신비로움을 간직한 느낌.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막상 안쪽으로 들어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주위가 잘 보였다.

원래는 정상까지 빨리 올라가려 생각했었지만 주변 풍경을 한참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던 것 같다.




KakaoTalk_20230518_235229976.jpg
KakaoTalk_20230518_235231045.jpg
KakaoTalk_20230518_235232543.jpg
KakaoTalk_20230518_235234186.jpg
KakaoTalk_20230518_235236340.jpg
KakaoTalk_20230518_235238181.jpg
KakaoTalk_20230520_163810948.jpg

원래도 자연과 숲에서 마음의 휴식과 안정을 얻는 나는

비가 내린 뒤 촉촉함을 머금은 금오름의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는 듯했다.




KakaoTalk_20230520_165053920.jpg

드디어 도착한 금오름 정상.

정상은 안개가 더 심해서 거의 잘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정상까지 올라오면서 봤던 풍경에 만족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하행을 시작했다.




KakaoTalk_20230518_235251593.jpg

그런데 잠시 후 거짓말처럼 점점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방향을 돌려 정상을 향해갔다.




KakaoTalk_20230520_165446894.jpg

그리고 우리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의 금오름 정상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

비도 오지 않았고 금오름의 정상과 파란 제주의 하늘 볼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 생각했다.

제주를 떠나는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잘 가라는 인사였을까?





우리의 인생도 짙게 깔린 안개처럼 막막할 때가 존재할 것이다.

그 앞에 서서 저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안개를 조금 뚫고 들어가 보면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다.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혹여나 계속 걸어가도 희뿌연 안개밖에 보이지 않아 두렵고 절망적일지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언젠가 안개는 걷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