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쉽지 않은 마음〉

마음이 굳어지기까지의 오래된 이야기

by 캔디는외로워

가끔 누군가가 “나는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걸 들을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고, 금방 친해지고, 금방 웃고 스며드는 사람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멈칫하게 된다.
사람이 좋다는 게 대체 어떤 마음일까?
나에게는 쉽지 않은 감정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 못한다.
잘 믿지도 못한다.
그 마음의 바닥에는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말하지 않아도 스며 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 이유를 떠올리면 언제나 같은 장면으로 돌아간다.


1. S국민학교 3학년의 기억

수업 시간이었다.
뒤에서 반장이 내 연필을 훔쳤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억울함에 고개를 돌려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뺨에 따끔한 충격이 와닿았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떠드는 아이는 뺨을 때려도 된다고 했어.”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선생님은 반장을 향해 말했다.

“잘했다. 너희들도 조심해라.”

그 말 한마디로 상황은 완전히 뒤틀렸다.
나는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울면 더 약해지는 것 같아서.

쉬는 시간.
반장과 아이들이 내 자리로 와 필통에서 연필을 집어 들었다.

“이거 네가 A꺼 훔친 거지?”

아니라고, 내 거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들은 내 연필을 A에게 넘겨주고 떠났다.
그걸 지켜보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나를 도와주는 아이는 없었다.

초등학생에게 세계는 아주 좁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조차
나는 혼자였다.

다음날 반장이 친한 척하며 나를 뒷뜰로 오라고 했다.
그 시선과 웃음이 이상해서 바로 집으로 달아났다.
다음날, 친한 친구가 말해주었다.
“너랑 A한테 눈가리개 씌워서, 둘이 뽀뽀하게 만들려고 했대.”

그 말을 듣고, 어린 나는 알았다.
어떤 애들은 이유 없이 누군가를 장난감처럼 다룬다는 것을.

그 시절엔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흔했고, 선생님들은 부모가 챙겨오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와 같은 아이들, 가난하고 부모가 바빴던 아이들은 자주 함부로 다뤄졌다.

엄마는 내가 학교 가기 싫어하는 걸 이상하게 여겼고, 내 이야기를 들은 뒤 친구들까지 불러 사실을 확인했다.
녹음기를 들고, 어른의 품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나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 날, 엄마가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환하게 웃어줬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게, 어린 내가 느낀 작은 ‘승리’였다.

2. H국민학교의 기억

새 학교 첫날, 교탁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남자아이와 짝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전학 전의 기억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선생님이 달래준 뒤에야 가까스로 앉을 수 있었다.
그 어린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쌓여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가슴이 저리다.

몇 년은 괜찮았다.
하지만 6학년이 되자 다시 두 명의 남자아이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침을 뱉고, 의자를 숨기고,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었다.

“선생님한테 말하면 되잖아.”
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선생님이란 도움이 아니라 방관과 조장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또 울면서 버텼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3. S여중 1학년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시원시원하고 자신감 있는 친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바라던 모습, 가지고 싶었던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 친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나는 이것저것 사주기 시작했다.
밥을 사주고, 예쁘다고 한 문구들을 사주고...그렇게 친구가 생긴 줄 알았다.

시험 기간.
그 친구는 자습서를 반씩 나눠서 사자고 했다.
나는 이미 전과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하면 친구가 불편할 것 같아 그냥 넘어갔다.

그 친구는 내가 사기로 한 과목들을 며칠 먼저 공부하겠다며 가져갔다.
그러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 돌려달라고 화를 내자 친구는 갑자기 자신의 엄마에게 나를 데려갔다.

“너 왜 우리 애를 괴롭히는데?”

그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화가났고 억울했다.

친구 엄마의 닦달에 울면서 사실을 설명했고, 집에 와서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중에 엄마와 함께 다시 찾아가 사과도 받고 문제는 정리되었지만, 다음날 친구의 행동이 더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 친구는 말했다.

“너 왜 우리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행동했어?”

사과를 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다시는 나한테 말 걸지 마.”

그렇게 끝났다.
내가 마음을 열었던 첫 친구는 그렇게 사라졌다.

4. 그래서 나는...

나는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 못한다.

믿지도 못한다.

사람은 따뜻할수도 있지만, 언제든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아주 어린 시절에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오해는 쉽게 붙고, 힘을 가진 쪽이 늘 유리하며, 약한 사람에게 잔혹해지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라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사람을 경계하게 만드는 마음도 결국 나를 지키려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사람을 “좋다”고 말하는 데 서툴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마음의 내막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믿는 것이 어렵다는 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상처가 깊었던 사람이라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내 마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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