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소재로, 소설 구상 중
“가장 잘 감출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뭘 감추려고?”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옷장 가장 깊숙한 그곳’이라고 했거든. 끝내 자살했다는 그 피의자 말이야.”
내가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둔 다소 멍한 눈빛으로 느릿느릿 말하자, 상황을 눈치챈 이 주임이 속사포 공격을 시작한다.
“김형사 설마 너 아직도? 죽기 전 진술과 정황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고, 증거 몇 가지 확인해서 보강되면 살인으로 기소 충분하다던데, 뭔 미련이야? 같은 보육원 출신이라고 맘이 더 쓰이는 거야? 그리고 그치 집에는 옷장 같은 거 없다면서?”
이주임의 유능한 분석적 질문 공세에, 반쯤은 현실 이면의 어딘가를 헤매던 나는, 급히 현실로 돌아온다. 그의 말이, 며칠째 유난히 지속되는 이 꺼림칙함과 허탈감에 대한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인 가설임을 알지만,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닌 것도 명확하다. 물론 ‘보육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평생의 무게 - 어떤 상황에서든 설움으로 목이 꽉 막힌 10살짜리로 나를 순식간에 돌려놓곤 하는 - 는 분명하지만, 그가 눈빛으로 내게 전해 온 건 그런 동질감만이 아니었다. 담담하고 초연한 그의 눈 속에서, 강하게 타오르던 허기와 외로움을 몇 번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었으나, 그건 끝내 사람과의 연결을 포기할 수 없는 정서적 소통과 의존에의 욕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는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었고, 보육원에서의 학대 경험에도, 자신의 껍질을 두껍게 만들어 차마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상처가 걱정되어 늘 몸을 사리고 거절을 염두에 두고 소극적 태도로 먼저 방어하곤 했어도, 그는 끝내 소망과 기대를 버릴 순 없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범죄 맥락을 완전히 은폐하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김형사, 왜 욕하면서 닮는다고들 하잖아! 차은철이 그렇게 모델로 성공했어도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거야. 그러니까 자신을 거두어주고 크게 은혜를 베푼 대표를 그런 식으로 살해했지. 마음 아프지만, 사람이란 건 어려서 보고 배운 게 그래서 너무 중요한 거야.”
“그래, 정황도 중요하지.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직접 전한 말과 행동이잖아. 그는 분명 ‘옷장 안에 진실을 남겨두었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나는, 그가 ‘자신의 본질을 알아본 나를 눈치 채고 만족했음’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10년 차 프로파일러의 전문성 때문만은 아니다. 때로 한두 번의 눈빛으로도 많은 것을 공유하기 쉬운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모델인 그는 몇 개나 되는 큰 옷 방을 소유했지만, ‘옷장’을 갖고 있진 않았다. 그의 어두운 비밀, 결코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은 과연 어느 옷장에 은폐되어 있을까? ‘옷장’으로부터 연상된 ‘비밀’과 ‘은폐’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기억 속의 그의 눈빛과 함께 에드가 엘런 포의 단편 소설인 <도둑맞은 편지>를 나도 모르게 동시에 떠올리던 참에 번뜩 어떤 이미지가 스쳐간다. 철저한 은폐를 위해 그는 오히려 가장 개방된 옷장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인스터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