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사라지던 날

by 정지원

행복은, 소중한 사람들과 낭비한 시간들 그리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과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창한 게 아닌 때로는 일상과 소소하게 맞닿아 있는 게 누군가에게는 행복이었다.


누군가 사랑은, 상대방이 잘 잤으면 하는 마음이 더랬다.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은 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복합적인 감정들의 결합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저 특별하고 이끌리는 대로 흘러가는 물결처럼 빛나는 게 사랑이고 헷갈리게 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말이다.


불행은, 어떠할 때 찾아오는 걸까 생각해 보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우울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 속으로 스스로 몰아붙이고 가둬놓는다.


본인은 요즘, 무기력하거나 무엇인가를 진행할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최대한 일찍 잠을 자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거나 듣는 걸 반복한다.


우리는 서로서로 불안과 다투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단정 지을 순 없는 얘기지만 직업의 귀천은 없고 세상 어디에나 힘든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서로가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배려는 스스로 받고 싶어 하는 배려는 지인이나 타인에게 먼저 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연락에 치어 때론 힘이 들 때, 보고를 빙자한 연락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집착은, 멘헤라는 사랑에 있어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루를 버티고 살아내면서 내가 맞다고 알고 있던 것들도 틀린 것일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행위는 타인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연락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었다.


더 파고 들어갔을 때 그게 공자의 가르침이었더라.


낭만을 품은 채로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달라져도, 바뀌고 변해도 그저 나는 나인 채로,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바라보던 낭만은 단편적으로 굳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냥 하는 것이었다. 예로, 늦은 밤바다를 보러 간다거나, 같이 실없이 하루를 보낸다거나 하는 아무 의미도 이득도 그렇다고 손해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맥락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오면서, 시간을 맞추어 어디를 떠난다는 것은 추억이 될 순 있지만 낭만은 될 수 없었다. 그랬다.


그저 더 기억에 남아 있는 건 학창 시절에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에 매점에 뛰어가 빵을 허겁지겁 사 먹고 돌아가는 것과 화장실에서 같이 봉지라면을 부숴 먹은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빠지로 놀러 가 늦은 밤 펜션에서 보드게임을 하던 것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같이 보낸 지난밤이 네겐 더 기억에 남았었다.


그게 내가 바라보는 낭만과 이상의 경계이다.


낭만이 없어진 건, 사라졌던 건 우리가 변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이 더욱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살아갈 세상이 점차 서로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사회가 그저 서서히 회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다고 외쳐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