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옥죄여 온다고,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해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조건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말을 건네줄 뿐, 돌아오는 건 위로도 공감도, 해결책도 아닌 자책이었다.
' 그렇구나..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네.. '
좇아가지 못할 낭만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 속에 잠들어 있던 후회였을까, 아니면 떠나가고 싶은 욕구였을까?
이제 그 무엇도 중요해지지 않은 지금,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려 한다.
어떠한 요행도 바라지 않을 거라고, 차라리 세상과 단절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인간은 무리 지어 살아가는 사회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외롭다는 감정이 모든 것에 시작이었을까
언제나 시작을 죽이고서 늦은 밤이 되면 한탄하는 시간이 어느새 루틴이 되어가는 것 같다.
혼자 남겨질수록 본인에게 더 좋은 영상을, 나에게 재미있는 영상을 자주 보려 한다. 낙관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은 한 끗 차이라고 다시 일어설 힘을 비축하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위안을 한다.
-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1)
본인의 말마따나 솔직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무례한 편이 많은 듯 싶었다. 하지 못할 말과 해야 할 말을 상황에 맞게 내뱉는 것이 미숙한 사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거짓말을 못한다고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해주던 기억이난다.
얄팍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알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인정욕구가 강한 것 같았다. 열심히 사는 본인에게, 이런 것도 아는 본인에게 심취해 있는 듯, 모두가 본인처럼 살지 않으면 무시하고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었다.
오늘은, 결핍에서 나오는 인정욕구에 대해 짧은 글을 써보려 한다. 물론 나 또한 모르는 것도 많기에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들릴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건 쫌 아닌 것 처럼 보여질 수 있다. 그렇기에 그저 이 분은 이러한 것이 인정욕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정욕구는 채워지지 못한 결핍에서 나온다. 책정하여 어느 결핍이라고 말은 해주지 못하지만 욕구라는 것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망이기때문이다.
세상 그 누구도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있는 본인 마저도 잠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됐던 4년이라는 시간에 어느 결핍이 생겨났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지금 채워 넣으려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 빈 공간은 여전히 허전하기만 하다. 마치 깨져버린 사기그릇에 물을 받는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금씩 파생되는 다른 얘기들은 차치하고 인정욕구는 자신이 이토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피력해야한다. 모든 얘기의 주제가 본인 위주로 돌아가려고 만드는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본인이 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통에 있어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면 이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