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
모두의 입을 한 곳에 모은 것처럼, 하는 얘기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과분한 관심과 뜻하지 않던 곳에서의 성장이 지금의 우리를, 나를 만들어줬다고, 그러니까 되돌려줘야 한다, 받을 걸 나눠줘야 한다던 그 말
이전의 나였다면, 그 문장을 곧이곧대로 보이는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해석했을 것이다. 모르는 곳에서 성장을 하고 보이지 않던 것을 마주하고 모른 척하던 것을 직시하게 되면 또다시 우리는 낭만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가능성을 잣대로 그곳에 들이민다.
어쩔 수 없었다는 힘 빠지는 그 말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듯이 모두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건 사람 누구나 비슷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 누군가에게 탓을 전가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며 놓인 것을 폄하한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을 좇으면서도 행복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사탕발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삶을 꿈꿔왔지만, 하지 못했다는 좌절과 욕망이 뒤섞여 우린 한 때뿐인 안도로 인도한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괜찮다는 말이 듣기 거북해진 건 달라지지 않던 내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진 걸 느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뒤로하고 누구보다도 신경을 쓰던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핑계 삼아 갖고 있는 자본의 크기로 부자를 판가름 짓는다.
우린 아직도 멀었고, 미숙하다.
여전히도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나를, 죽음 앞에 무력해지고 두려운 내가
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