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치 약봉지를 움켜쥐고 버스를 올라탔던 날, 다짐했던 살고자 하던 의지는 그때뿐이었을까?
여전한 의문을 내게 던져 보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이후 나는 어떠한 형태로든
달라졌다는 것이다.
차갑게 식은 밥을 욱여넣고 씁쓸한 미소를 띠며 자리를 떠나도, 공허를 허기로 달래 보아도
한때뿐인 만족은 그저 나를 더욱 낯선 곳으로 이끌었다.
비슷한 노랫말이 지겨워지는 것도, 익숙하다고 착각하는 것도, 여느 그 무엇도 하나도 내 거라고 말할 수 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에는 혼자라고 몇 번을 되뇌어도 외로운 감정을 느끼는 건 단지 우리가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완벽을 꿈꾸지만,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서
성숙한 사람이 끌리는 것도, 미숙한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도 그 속에서 내가 선망하던 모습과 무의식 속에 있는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처해져있는 상황을 바꾸면 나 또한 어느 모습으로도 바뀌어가지 않을까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닮고자 하는 사람들을 닮아가는 법이니까
사람은 바뀌지는 않지만, 달라질 수는 있다. 이게 내가 지금껏 생각하던 것들에 대한 결론이다.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이해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아니고
그저 이러한 사람이니까라는 식의 단순 명료한 자기 방어, 기피 형식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끝맺음을 위한 말장난이 아니고 운을 운운하며 노력하라는 김 빠지는 소리도 아니다
단지 무엇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들도 싫어할 수 있다는 걸 진정으로 깨달은 지 7여 년쯤 지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남들에게 권하는 것 또한 어떠한 형태로의 강요가 될 수 있기에 인간관계가 힘든 것이다.
혼자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의 예로 모든 가치 기준의 잣대가 비슷하다면 그중에서 한 가지는 덜 보는 무언가가 있을 터이다. 그 기준치가 상황 순간순간마다 적용될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다. 변했다고 믿었는데, 달라지지도 않은 채로
떨어진 입맛과 차갑게 식은 밥이, 한때뿐인 만족과 굳게 부여잡은 손이 내게 말을 해준다.
내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