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과 잠시 절연하는 훈련하기

너무 바쁜 회사원이 반드시 해야 할 일.

by 김태경

나는 진짜로 일이 많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이 많다는 건 몇 가지 의미가 있다.

1. 조직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중요한 신생 부서이든가,

2. 아무도 제대로 일하지 않는 엉망진창 부서이든가..


나는 내 조직을 애정하고 아끼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속한 부서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못되거나 게으르거나 싸가지 없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도 아니다. 착하기만 한 채 아랫사람들 눈치 보며 정무적 감각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부서장 탓이 가장 크고, 부서 내에서 본인 팀만 잘 챙기는 팀장들 탓이 그다음일 것이다. 자고로 1개의 부서에는 여러 팀이 있고, 팀들이 협력해야 부서의 미션과 성과가 달성되는 건데 본인 팀만 잘 챙기며 타 팀을 비난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존재는 없다. 책임감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 덩어리이다. 이 못지않은 것이 이 시끄럽게 잘난 척하는 옆 팀장 탓을 하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 바운더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팀장이다. 다 알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충은 짐작하면서도 입 꾹 다물고 싸움 구경하는 팀장 역시 조직이 긁어내야 할 구성원 중에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부서에 발령받은 지 4개월이 다 되어 간다.

"이 부서가 말도 못 알아듣고 이상한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으니 네가 가서 정리를 좀 해라"가 내 미션이었다. 전무했고 후무할 꿈같은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고작 9개월 쉬고 복직명령이 떨어졌다. 이 부서로..

나는 인생의 어느 시기이든 때때로 주어지는 삶의 자리는 분명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조직이든 가정이든 건강하고 상식적인 성인이라면 좋은 방향으로 자신이 속한 곳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게다가 직장 18년 차이면 말해 뭘 하겠나.

실상을 드러내고,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문제를 정리하고, 내 일을 훌쩍 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선배님, 후배님 하며 일을 파악하고 나름 해결했다.

9개월간 휴직이라는 호사를 누리다 복직했던 지난 4개월은, 차라리 9개월 일하는 게 나을 뻔했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내가 이 부서에 와서 이걸 하려고 그때 휴직을 결정하고 9개월을 쉬었나 보다 할 정도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쉬운 문제부터 해결한 거고 이제 남은 과제는 더 크고 어려운 것들 투성이다.

지난 4개월 동안 나는 9시부터 6시까지 농축된 일을 했다.

저녁이면 아이들 밥 해 주러 정시 퇴근해서 집안일하고, 애들 숙제 다 하고 잠자고 놀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재택근무를 시작한다. 12시, 1시 넘기는 건 기본이고 월, 화, 수까지 이런 생활을 하다 목요일이며 체력 저하로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주말이야 말로 재택근무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애들 텔레비전 보는 시간에 나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일한다.

왜 이러나 싶을 수 거다.. 일중독자라고 여길 수도 있고. 근데 나는 일이 제시간에,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하고 그렇게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다 몇 주 전에 이런 생각 들었다.

"이런 생활 그만하자. 결국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을 거야.."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도 이렇게 일했고 그러다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일상의 균형을 위해 9-6시까지 업무 농축도를 높이는 대신, 집에는 의도적으로 일을 가져가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일을 하고 있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새벽에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탓에 새벽에 깨기도 했지만 말이다.


주말에는 무조건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갔다. 아이들과 남편과 멀지 않은 곳으로 1박 2일 가서 너른 호수와 눈 덮인 들판을 멍 때리며 앉아 있었다. 하늘도 쳐다보고, 아무 소리 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 다들 자는 아침에 혼자 조깅을 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잃었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머릿속을 떠 도는 수많은 생각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꺼져. 지금은 내 시간이야"


그러니 좀 나아진 것 같다. 머릿속을 다시 정돈할 줄 알게 된 듯하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직면하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분주함과 잠시 절연해 보는 것 역시 인생이 주는 좋은 경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래야 회사에 좋은 기여를 하는, 필요한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내 자긍심이 균형 잡히고 바른 생각을 밑거름으로 이렇게 저렇게 더 귀하게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관리자로 직책을 받은 건 업무 관리는 물론 업무가 잘 되기 위해 관리자 스스로를 잘 매니징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물론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역할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해내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분주함과 잠시 절연해 보련다. 그리고 매일 퇴근 시간 이후도 마찬가지.

몇 주 해 보니까 오히려 좋다. 머릿속 생각 방들이 정리 정돈되며 생각의 여유가 생겼고 이게 오히려 업무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계속 연습해야 한다. 내 상태를 살피며 과한 분주함과 일시적으로 절연하는 것을.

이번 설 연휴 역시 그런 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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