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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나는 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는 걸까?

by 서광

출국하기 3일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극한 배신감으로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지내셨다. 어차피 떠날 아이 마음이라도 편하게 보내주자던 엄마의 무던한 설득 끝에 아버지는 절대로 막내딸에게 놓고 싶지 않던 마음을 극적으로 내려놓으셨다.

99년 4월 첫째 주 어느 날 드디어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그날이 왔다. 공부하러 떠나는 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던 엄마와는 집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아빠, 엄마 대신 외할머니, 언니와 함께 내 발걸음만 가볍고 설렘으로 4월의 따뜻한 봄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가족들의 속상함과 허전함 따윈 볼 겨를도 없이 수속 절차를 신속하고 경쾌하게 마치고 마음속으로 ‘자유’를 외쳤다. 공항 내의 묵직한 공기 속에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철부지 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없이 출국장을 바라봤을 가족들만 애틋한 마음이었다. ‘빠이빠이’ 혼자만 환한 미소를 가득 담고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마음껏 날갯짓했다.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떨림 때문인지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나리타 공항이 상공 아래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할 무렵 착륙을 시도하지도 못한 채 상공을 1시간 가냥 빙빙 돌기만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나리타 공항에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두렵고 무서웠다. 꿈에 부풀어 희망을 한가득 담아 떠나던 그 길에 비바람과 먹구름이라니.

가까스로 착륙해 공항을 빠져나오니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보다 먹구름과 비바람이 내 유학 생활의 고될 것을 예언한 것 같아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을 나와서 도심에 있는 ちんちん都電 (친친 전차)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나리타 공항에도 경전철 한 칸 남짓의 장난감 같은 도심 전차에도 일본 특유의 달콤 쌉쌀한 간장 냄새가 일본에 도착했음을 몸소 느끼게 했다. 한국이라면 드라마 촬영지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심 속 귀여운 지상 전차야말로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8평 정도의 복층 방 여섯 칸 정도 있는 작은 집이 나의 첫 시작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부엌이라고 할 것도 없는 1구짜리 가스레인지와 한 뼘 싱크대 그리고 온기 하나 없는 차디찬 마룻바닥과 복층 구조의 침대. 4월인데도 집안 공기는 냉기가 돌았다. 캐리어를 정리하다 보니 아무것도 넣지 말라던 당부와는 무색하게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넣어주신 마른반찬과 흰 봉투. 아침에 만난 엄마가 벌써 그리워졌다. 엄마의 흔적이 캐리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정리하는 동안 뭐 하나 엄마의 그림자가 안 닿은 곳이 없었다.

밤이 되어서야 정리를 끝내고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새벽반 일본어 학원에서 1년간 공부를 했으니 당당하게 편의점 안의 냉장고 속 도시락 중에 제일 맛있어 보이는 걸로 골라 카운터 직원 앞에 섰다. ‘温めますか?(아타타메마스까/데워 드릴까요?)’‘お箸要りますか?(오하시이리마스까/젓가락 필요하세요?) 긴장한 탓인지 빠른 일본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황하며 아는 단어 ‘いいえ(이이에/아니요)’ 라며 부끄럽고 황당해서 서둘러 나왔다.

밤 9시가 되어서 바깥보다 차가운 집 안으로 들어와 차디찬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도시락을 꺼내보니 딱딱한 밥알과 두 번 먹으면 없을 만큼의 반찬. 젓가락도 없었다. 하루 종일 긴장감으로 동동거리다가 첫 끼였는데,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처량한 내 모습이 너무 서러워 괜히 눈물이 나왔다. 나무젓가락을 찾아서 딱딱한 도시락을 먹으려니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끼가 왜 그리 그립던지. 더 이상 차가운 도시락을 먹지 못했다. 누가 등 떠밀어서 홀로서기를 한 것도 아닌데, 유학 생활 1일 차는 고됨과 설움으로 밤새 꼬박 뜬 눈으로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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