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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Sep 02. 2023

니가 있어 좋구나

  헉!헉!

어제는 종일 숨쉬기가 벅찰 정도로 뜨거운 하루였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에 ‘오늘 날씨’부터 뒤적여 본다.

역시나 오늘도 바깥 온도가 35도를 넘으며 체감 온도는 37.5도라고 한다.

사람의 체온을 넘어서는 체감온도는 자칫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날이다. 

인간의 뇌는 신기한 것이 지나버리고 나면 깜박하고 잘 잊는 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신건강상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예를들면 작년에도 분명히 역대급 폭염이라고 하며 많이 더웠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올해가 더 더운 것 같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작년은 지나간 것이고 지금 더운 것은 현실이니 실감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록을 하여 남기지 않으면 긴감민감인가 하는 일들이 생기며 나의 기억저장장치에 의문을 갖곤 한다. 그럴 때 마다 죄 없는 나이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합리화 한다. 이제는 그때그때 생기는 특별한 일들은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남편은 자기 전에 하루의 일을 다이어리에 짤막하게 기록을 한다. 그래서 이맘때 작년에는 무엇을 했는지 참고가 되고 좋은 자료가 된다. 인간의 뇌에는 저장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나의 기억만을 믿을 것이 아니라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두고두고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우리집은 지은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축건물이다. 거기다 단열로는 최고로 좋다는 목조주택이다. 그래서인지 웬만해서는 실내가 덥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애초에 에어컨을 집안에 설치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다. 작년에도 에어컨 없이 견딜만하다는 생각으로 잘 지내왔다. 그런데 올해는 더위가 다르다. 오전에는 선풍기 바람으로 웬만큼 덥다는 생각없이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며 큰 거실 창으로 햇살이 비쳐들기 시작하는 오후 3시가 되면  바깥의 훅훅거리는 뜨거운 공기가 바람을 타고 실내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운 공기로 숨을 턱 막힐 정도로 더우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선풍기바람으로도 견디기 힘들만큼 덥다. 그럴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앞 계곡으로 피난을 간다. 며칠 전, 계곡에 미리 갖다 놓은 야외 탁자, 의자가 있어 먹을거리, 읽을거리를 챙겨서 누가 잡으러 오는 것 마냥 도망가듯 달려간다. 계곡으로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시원해!” “아 시원해!”

주변 나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정글같은 계곡은 바깥 온도보다 3~4도 정도의 차이가 날정도로 시원하다. 거기다 이번 장마에 큰비가 계곡주변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은지라 벌레 하나 없이 쾌적하기만 하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오랜 세월을 깨어나와 세상에 호령이라도 하듯 매미의 울음소리가 계곡의 적막을 깨운다. 화답하듯 계곡의 물소리도 웅장하다. 무릉도원이 별건가 바로 여기가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에 신선이 된 기분이다. 

남편과 함께 한참을 계곡에 발을 담그며 이 세월 저 세월을 낚시질 한다. 뜨겁게 달구던 햇살도 어느새 서쪽 하늘로 사라지고 앞산의 그림자가 마당한 가운데로 드리울 때쯤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 다시 속세로 돌아온다. 

  어스름밤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숲속의 선선한 산바람이 뜨겁게 달군 대지를 위로해준다.      

태풍으로 계속되는 폭염이 곧 누그러질 때까지 우리들의 피난살이는 계속 되겠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밖에 없다. 지금 오롯이 계곡의 시원 맛을 즐길 수 있는 내일이 기다려진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집 앞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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