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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Sep 02. 2023

단풍도 떨어질 때 떨어진다

“오늘은 무엇으로 아침 밥상을 즐겁게 할까?”

봄에 뿌렸던 씨앗들이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텃밭은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굳이 마트에 장보러 가지 않아도 식탁이 풍성해 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아침마다 소쿠리를 들고 텃밭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마당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텃밭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야채가 자라고 있다. 씨앗을 뿌린 후 싹이 올라오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채소마다 다양하다. 특히 상추는 씨를 뿌리고 난 뒤 3일 정도가 되면 어린 싹이 돋아난다. 하지만 시금치나 양상추는 싹이 올라오는 기간이 유독 길어 가끔은 애를 태우기도 한다. 조급함이 금물인 텃밭에서는 기다림만이 답이다. 

아침 식사 전, 먼저 텃밭에서 수확한 치커리, 상추, 양상치, 토마토와 직접 만든 소스를 얹어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물론 재료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모두 텃밭에서 수확한 것이다. 싱싱한 야채로 만든 샐러드를 한 접시 비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식사를 한다. 식사 방식을 바꾸고 난 후부터 화장실 가는 일이 즐거워졌다. 장이 좋지 않아 고생을 했던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여름 25일동안이나 장맛비가 내렸다. 계속 내리는 비에 연하디 연한 텃밭 샐러드용 채소들의 잎이 녹고 벌레도 많이 먹어 먹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조금이라도 건져볼 마음에 이리저리 텃밭을 훑어보지만 한숨만 나온다. 자연이 하는 일인 것을 어쩌겠나 해보지만 빈 소쿠리가 무겁기만 하다. 그나마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 고추, 가지에 위안을 받는다. 견뎌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며칠 후 장마가 끝난 것 같아 채소들을 뽑고 밭을 호미로 대충 정리했다. 이제는 괜찮겠지하는 맘으로 씨를 뿌렸는데 아뿔사 성급한 마음이 결국은 화를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씨가 흙속에서 자리 잡기 전에 비가 내려버리면 쓸려가 버리고 흔적도 없어져 버린다. 이상 기후현상으로 들쑥날쑥하는 이 비현실적인 사실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할지 고민도 잠시 곧 다가 올 가을에 모든 것을 내맡기기로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다. 가을이 우리집 문턱까지 왔다.

절기만은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이 묻어 있다. 청명하고 날 것 같이 가벼운 새털 가을바람이 말이다. 며칠 전 남편이 텃밭을 모두 갈아엎고 밑거름을 뿌려 놓았다. 여름 장마로 인한 아쉬움을 가을 텃밭농사에 풀어볼 심사다. 먼저 가을 텃밭에 겨울에 쟁여두고 먹을 작물들을 심는다. 가을 감자, 배추, 무, 시금치, 샐러드용 야채를 심는다. 또 내년 봄을 기약하며 미리 씨를 뿌려놓는 월동시금치, 월동상추다. 텃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비장함이 가득하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손길과 발걸음으로 정성을 다하지만 나의 몫은 여기까지 다음은 자연이 할 몫이다.      


  이해인의 ‘익어가는 가을’이라는 시이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가을이 깊을수록 우리도 익어가네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한 기도/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사랑이 되네     


  시인의 말처럼 가을은 모든 것이 익어간다. 

  한여름 무성한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한껏 솟아오르던 푸르름의 에너지를 내려놓고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떨군다. 봄을 위한 생명의 물줄기를 뿌리로 내려 보내며 나무도 익어간다. 꽃들이 지고 간 자리에는 튼실튼실한 열매가 익어간다. 여름 땡볕에도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키 작은 화초들도 꽃망울을 터트린다. 무겁고 들뜨기만 하던 여름날의 뜨거움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봄의 충만한 생명력으로 달뜬 여름은 지나가고 훨훨 날아갈 것같이 가벼운 가을을 맞이한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로 가을은 내게로 온다.

  단풍도 떨어질 때 떨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때가 있음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이 가을날에

                                                             가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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