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유언이 될 수 있는 책 한 권
우울한 감정이 우울증인 게 아니다.
우울한 감정이 계속 지속되다 보니,
생긴 게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우울하기만 한 게 아니다.
무감응, 무기력, 무가치하다.
모든 것이 무(無) 허무다.
우린 모두 우울함을 느낀다. 하지만 우울증은 잘 모른다. 이해받지 못한 우울증 그로 인해 오는 타인과의 대립,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론만 알았다면 우울증 환자에게 하지 말았으면 할 행동 조심했다면 우린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론만 아닌 내 감정을 담아 우울증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와 친해지기 위한 한 걸음, 우울증인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타인이 조금 더 날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만들었다. 귀하와 밀착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읽었으면 한다. 이론만 알고 조심만 해도 우린 죽지 않는다.
저자소개 :
나는 우울증과 불면증 공황장애가 있다. 제주토박이로 작가로는 23년도 기준 거의 십몇 년 활동하며, 투잡 또는 쓰리잡 생활하였다. 필명 매번 바꾸고 여러 장르를 써보고 도망치고 열심히 이어 나가며 유명해지다가, 또 도망치고, 또 버티고 반복했다. 그런 내가 싫어질 때쯤, 사람들에게 치이며 투잡 생활에서 느낀 바가 우리 인간은 직업으로 하나의 영혼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에 싫증 느꼈다. 작가는 잘나가지 않으면 돈벌이가 안되는 직업 중 하나다. 그것이 초라한 나로 느껴졌다. 싫증 나면서도, 내 영혼이 무엇인지 궁극적인 이유로 궁금해졌다. 작가라는 직업과 또 다른 영혼 직업들, 그리고 페르소나, 꿈을 꾸역꾸역 포기하지 않으려 여러 직업을 하며 경험 쌓았다. 아이러니하게 살다 보니 꾸준함이 곧 내 밑천이었다. 그 경험은 곧 영혼 속 큰 바다가 되었다. 나는 매번 글로써 삶을 배우고 언어 속 물고기가 되어 깊은 심해까지 여행 중이다. 내 삶은 글이었다. 내 영혼은 글이었다. 내 밑천은 글이었다. 스트레스받으면 어렸을 때 해왔던 버릇은, 항상 글이었다. 웃긴 게 글을 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도 풀린다. 스트레스를 받는 게 글이었고 글을 쓰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건 어렸을 때 해왔던 내 유일한 도피처였기 때문이다. 유아 시절 쌓아온 스트레스 푸는 수단이 글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심리학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자아 성찰은 매일 힘들다. 매번 약을 먹고 아팠다. 어렸을 때부터 내 내면을 항상 보려 했기 때문이다. 속이 항상 허했다. 매번 노력해도 허했다. 그 공허함이 있기에 꾸준함이 있었다. 그렇다. 자아 성찰하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었다. 항상 잘 때도 자아 성찰 매번 함으로써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해야, 고로 존재함을 느낀다.
<책 속으로>저자 이해하기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나의 미래) 나의 과거가 있기에 내가 있다.
미래 같은 불확신 보단 지금 현잴 즐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그 답이 당신에게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안다. 우울한 게 우울증이 아니다.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는 게 우울증이다. 우울한 감정이 우울증이 아니다. 인간의 본연적인 쾌락이 사라진 것이 우울증이다. 난 안다. 당신이 우울해 누워서 당장 무슨 생각으로만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생각이 싫어 잠만 자도 그것도 좋다. (우울증 약이 우울함 대신 잠이 많아 진다. 일시적인 거라 약 조절하면 괜찮아진다. 원래 우울증 약은 잠이 오는 부작용은 없다. 대신 우울증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잠이 오게 처방 하는 것일 뿐 이다.) 잠이 많아진다, 어쩌다 찾아온 답이 당신을 명쾌하게 만들 것이다. 인생은 무언가를 항상 찾는 길이다. 찾다 보면 좀 더 나아질 거다. 당신이 누워 있는 것은 일어나기 위해 겪는 고통이다. 당신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지혜로울 거라는 걸 안다.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당신이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안다. 특히나 우울증인 사람들은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하다. 매일 성장하는 인간이기에 그 미랠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당신이 지금 행복해질 수 있도록 바라고 바라며 쓰는 책이다.
문득 오는 행복이 진정 당신을 성장시킬 것이기에 많은 걱정 하지 마시길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지만 우린 아프기에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 이 챕터는 나의 과거 얘기다. 괜한 TMI 일 수도 있으니 읽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읽어 주면 좋을지도, 내 우울증 시발점은 분명히 어린시절부터 왔기 때문에 우울증 이해 심화 과정을 본다고 생각 하고 읽어주시길. 나는 호로몬으로 인해 우울증인지 온 건지, 유전, 가정환경, 사회생활하다 보니 얻은 건지 모른다. 어쩌다 보니 걸린 게 우울증이다. 너무 많은 이유가 있어서 원인 파악이 어렵다. 원인을 잘 모르니 내가 미친 듯이 글을 좋아하는 것이 일 수도 있다. 글 쓰다 보면 나를 찾아갈 수가 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우울증이란 대체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이 책 한 권을 쓴다. 어쩌면 이 책 한 권은 내 유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가정폭력 당했다. 이사는 매일 가서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 초등학교 때까진 왕따도 당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선 일진 들이 매일 괴롭혀 매일 싸웠다. 폭력에 익숙한 탓에 또래 애들 폭력은 어른들 폭력보단 타격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날 괴롭혀도 남 괴롭히는 건 더 보지 못해 더더욱 남을 위해선 더 싸웠다. 현재도 그렇다. 곱상한 얼굴 탓인지, 탓하고 싶진 않지만 어린시절 성폭행과 성추행도 많이 당했다. 커서도 성추행을 많이 당했다. 증거가 없으니까 신고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그런지 무감각하다. 부모님들은 관심이 없었다. 유일하게 관심 있던 사람은 언니였다. 언니가 날 괴롭힌 사람들을 어떻게든 앙갚음하는 사람이라 고마웠다. 지금도 문득, 생각한다. 부모님도 날 지켜주지 않았는데, 언니가 친구들을 다 끌어모아 자전거 타며 욕을 하며 쫓아 다녔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고통에 어려있을 때, 제일 많이 생각해준 건 언니가 아니었음을, 어떤 사람이 날 때릴 때 우리 언니는 미친 듯이 그 여자를 찾아가, 똑같이 앙갚음으로 때려 경찰서까지 갔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 고통에도 무감각하다. 죽음에도 무감각하다. 솔직히 난 내 육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어느 날 가슴 성형을 하고 싶으면 그냥 비행기 타고 갔고, 길가 다가 급히 우울해 동네 성형 병원 보이니 갑자기 코 수술을 하고 싶어서 했다. 뭘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잘 안되면, 안되는 거고, 잘 되면 되는 거였다. 내가 죽고 싶으니 지금 당장 안 죽을만한 이율 찾아야 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두 수술 잘 됐다. 난 내 육체 내 성격 내 취미 내 영혼 뭐든지 알맹이 다 보여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게 기록에 남기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그냥 뭘 해도 떳떳했다. 어차피 죽어 사라질 몸, 영혼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나는 나다. 내 죄도 나고 반성하는 나도 나다. 죽음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덕분에 그런 것이다. 인간은 항상 발전한다. 어쩌면 인간은 시간 조절할 수 없으니 기록으로 날 남기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나이를 먹어도 예전이 그립지 않다.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일까, 예전이 너무 괴로운 탓이었을까. 아니면 항상 신은 날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천주교였다.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돈(?) 무교다. 이유는 심플하게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아빠한테 맞을 때, 왕따당할 때, 지켜준 건 언니였다. 친가 쪽 친척 들이 둘째 고모 닮았다는 이유로 쌍욕하며 날 싫어할 때, 외가 쪽이 엄말 어린 우리가 엄말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우릴 싫어할 때, 매일 기도했는데 성인이 될 동안 학대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그저 믿지 않기로 했다. 배신감이 무척 커서 마음이 그땐 많이, 아팠던 걸로 기억한다. 신을 부정할 때 그 상실감은 어마어마하고 아팠다. 이것은 내가 엄마가 처음으로 싫다고 느꼈을 때 어마어마한 상실감과 동일 했다. 가장이 되어 모든 짐이 내게 얹어졌을 때 난 항상 내 마음속 나와 싸웠다. 내가 감히 하느님을 부정해? 내가 감히 엄마를 싫어해? 이것은 내게 올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매번 부정하다 결국 인정해서야 내 삶을 돌아보고 날 사랑하게 되었다. 나도 사람이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있고 신이 미울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 가장이 되어 짐이 내 어깰 누를 때 그리고 부정할 때 엄마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엄마가 왔는데 마중도 안 나오냐고 뭐라고 많이 했었다. 내 그때 심정은 타 들어가는 줄 모르고 말이다. 성인이 되니 내가 가장이 되었다. 엄마가 우릴 위해 너무 고생하는 게 보여 중학교 때도 알바했고, 고3부터 일하며 고등학교 졸업하고, 야간대학교도 다니며 일을 하며 월급을 다 줬다. 참고로 난 둘째다. 언니는 가정폭력 여파로 일을 하지 않았다. 하다가도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엄만 왈, 언니는 일 그만뒀다 말았다 해도 돈은 곧바로 보내지 않냐 너는 왜 곧바로 보내지 않냐고 엄마가 당연시여기며 많이 얘기했다. 남동생은 어렸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다. 자랑스럽다. 그래도 고등학생이 되자 스스로 용돈 벌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공부하고 용돈을 벌었다. 이젠 공무원이다. 엄청 장하다. 손재주도 좋아 웹툰으로 취미로 그린다. 애교도 많아서 웃음이 별로 없던 내게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존재다. 언니와 남동생이 스스로 자립하기 전 엄마가 나한텐 돈 제때 안 보내면 뭐라고 하던 엄마가 남동생한테는 용돈을 스스로 번다고 얘길 하며 칭찬한다. 맞아 착하다 웃던 나는 크게 상처받았다. 뭐지 왜 나한테 하는 행동이 다른 건데 다들 나한테 왜 이래? 29살이 된 현재 그 얘기를 꺼내자 엄만 그땐 너도 일하고 있었고 상황이 다르지 않냐며 얘기한다. 근데 그때도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내게 모든 짐을 얹어 놓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죽고 싶지만, 가족들 생각해서 못 죽었다는 걸 모른다. 또 언니가 집안 일 분배 할 때 제대로 안 해서 남동생이 화가 날 땐 나에게 와서 말을 했다. 나는 대신 싸웠다. 그러다가 언닌 한 번 싸우면 조금 괜찮아졌다. 현재는 열심히 일하는 언니가 보인다. 오랜만에 얼굴 볼 때마다 성숙해진 언니를 볼 때마다 놀랍다. 지금은 언니가 무척이나 존경스럽고 사랑한다. 남동생도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허나 모두가 어엿해졌지만 내 우울증은 사회활동을 할수록 악화 되어 가고 있었다. 약 때문에 지각하게 되었으며 살은 20kg 정도 계속 빠져 몸 상탠 악화 되고, 정신적으로 무리가 갔다. (엄마에게 말했으나 엄마는 내게 ‘지각하는 게 자랑이다.’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결국 내 정신병은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심각해져 직장을 그만두고 2주 동안 약 먹고 잠만 잤다. 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왜 결국 이렇게 된 걸까. 절망했다. 내가 얻은 거라곤 정신병밖에 없었다.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해서 문 앞에 심리적으로 좋은 상태가 아니니 말 걸지 말아주세요, 대충 친절하게 적어놨으나 엄마는 계속 내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20키로 빠진 딸을 바라보지 않는 엄마, 그것 때문에 생긴 마찰, 무엇이 문제 였을까. 엄마는 내게 말한다. “ 다 컸다 생각하면 이젠 네가 아프기 시작하고 내가 뭘 잘 못 했길래.” 난 숨이 막혔다. 그리고 느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무지가 얼머나 큰 파장으로 올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만약 내게 글이 없었다면 난 진작에 자살했다. 솔직히 내가 사는 원동력은 엄마와 글이다. 어렸을 때부터 쭉 그래왔다. 공책 빼곡 빼곡 소설도 쓰고 시도 썼다. 지금은 집이 불나서 내 추억들이 다 사라졌지만 몇 개 정도 상장은 남아있다. 다른 상장은 없고 글 관련 상장만 많다. 나는 항상 삶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미래와 과거 보단, 현재 삶 의미를 써내려 가려 한다. 나와 닮은 이들 생명을 살리고 싶다. 나의 원동력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공감하며 같이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여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공유하길 바란다. 나는 퇴사하자마자 생각했다. 아 나를 위한, 그리고 우리들을 위한 글을 쓰자. 우릴 모르는 사람과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 난 글을 써내려 간다. 당신이 나아지길 나는 정말 빈다. 우울증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는 나이기에.
1장 : 우울증이란?
* 금전적으로 우울하면 신용정보위원회 상담 받아 봐라. 굉장히 도움된다.
예를 들어 채무 기타 등등 있을 때 신용정보위원회에서 채무 전화도 막아주고 신용관리도 해준다. 한 달 몇 년 안에 작은 채무로 갚을 수 있다. 이것 말고도 금전적으로 신용이 위험할 때 다른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좋은 정보가 되길 바라며 나는 정말로 당신의 우울증이 나아지길 빈다. 지금 당장 움직이기 힘들겠지만, 해결이 없으면 우울증은 길어지고 우울증은 길게 놔두면 만성 질환이 된다. 우울증은 무기력하기에 쉴 수 있는 한동안의 상탤 만들어야 한다. 우울증이 많이 나아지면 다 갚는 것을 당신 위해 추천한다.
우울증 이론
이 책을 쓴 계기는 우울증 관련은, 나만 공부하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른다.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를 대하기 서툴다. 이 책은 내가 경험한 것과 이론적인 것과, 함께 현실적인 글 담았다. 마지막엔 해결이 될 거다.
내 우울증을 알아줬으면 하던 사람, 귀하에게 있지 않나? 그만큼 귀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소중한 사람에게 이 책을 보여줬으면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엄마다.
엄마가 아니라, 귀하의 우울증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했다면 엄마를 다른 대상으로 보고 해결했으면 한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 사는가.
나에게 유일한 성취욕구도 요즘 사라진 상태. 삶의 욕도 없고 무기력한데, 하루하루 뭐가 그리 두려운지, 그런데 깨달았다. 일단 책을 쓰자. 쓰고나서 이 책이 성공한다면 효도하고 성공하지 않으면 죽든 말든 해보자 큰 깨달음으로 꾸역꾸역 글을 쓴다. 그래. 이렇게 절차를 처음 밟았다. 글 쓰다 보면, 내게 다시 유일하던, 글 쓰는 성취욕구도 다시 생기 않을까. 아니면 죽든지 해보자.
대체 우울증이 무엇인데,
많은 사람이 자살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조차 모르는 사람은 많다.
지금 검색 글만이라도 읽어 봐라. 이론만 알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론만 알아도 우울증 환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려주고 싶은 것은 그 이론 심화 과정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다. 그 무언가는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제대로 읽고 있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으면 한다. 일단, 지식 백과사전 읽지 않아도 된다.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 이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백과사전 검색해서 읽었다면, 읽느라 수고가 많았고 굉장히 복잡하다는 건 알겠다. 우울증이란? 그래. 이해하기 쉽게 우울증 개념 요약해보자.
우울한 감정이 우울증인 게 아니다. 우울한 감정이 계속 지속되다 보니 생긴 게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우울하기만 한 게 아니다. 무감응, 무기력, 무가치하다. 모든 것이 무(無) 허무다.
우울감과 삶에 대한 흥미 및 관심 상실이 우울증의 핵심 증상이다.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일상생활에 큰 타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속은 텅 비어 있다. 일하는 도중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목을 매달아 죽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죽음이 두렵지도 않다.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데 특히 아침까지 충분히 잠을 못 이루고 일찍 깨거나 밤사이 자주 깨는 증상을 보인다.
많은 환자가 식욕감소와 체중 저하를 보이는데 일부 환자는 식욕이 증가하고 수면이 길어지는 비전형적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불안 증상과 성욕 저하. 취미도 상실, 의욕이 없어진다. 집중력 저하와 같은 인지기능 저하 증상으로 간단한 취미생활도 어렵고 집중하기 어렵다.
인간의 욕구가 마치 사라졌다. 인간이 한순간의 쾌감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성취감조차 없이 말이다. 그럼에 꿋꿋이 하루를 견딘다. 그 와중. 우울증에 걸리면 시간은 느리게 간다. 뇌가 그리 만든 것이다.
인간은 위험한 순간을 맞닥뜨리면.
느리게 보이며 순간적으로 움직일 때가 있다.
우울증은 그것이 계속 지속되다 보니 시간개념이 느려졌다.
몸과 말투도 느려졌다.
그 와중에 무기력감, 삶에 대한 에너지 상실을 호소하는데 대부분의 일을 끝까지 마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학업 및 직장에서 정상적인 업무에 장애를 느끼고 새로운 과업을 실행할 동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항상성이라고 아는가,
원래로 돌아가려는 인간 몸 습성으로.
우울증은 한 마디로 고질병이다.
거의 고질병으로 산다.
나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울증은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다르며 개인적인 약함의 표현이거나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고통이라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내가 우울증을 이겨냈다고 너도 이렇게 저렇게 해봐.
오만이다.
당신이 겪었다고 상대방이 똑같은 것을,
겪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환자는 우울증 환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가끔 우울증 환자였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많다. 스스로가 이겨냈다고, 함부로 제단한다. 함부로 판단해선. 안되는 걸 알고 그전에도. 상처를 받았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단지 이론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이다.
묻고 싶다. 당신이 우울증 앓았을 때 또는 우울할 때 “괜찮아질 거야.” 이 얘길 듣고 희망을 얻었는가? 아니었던 걸 알면서 함부로 제단 하지 마라. 우울증은 우울해서 우울증인 게 아니다. 그걸 모르는, 그 행동이, 마치 베지테리언이 가죽잠바 입은 거와 같다는 거다. 우울증은 겪어보지 못했다면 절대 모른다. 알 수 없다. 미지의 것이다. 각자 다른 우울증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우울증 환자끼리도 서로를 모른다. 일단 그걸 인정해라. 그 감정이 무엇인지 공감 능력이 아무리 좋아 봐도 겪어 보질 않으니 모른다. 우울증 환자도 서로가 잘 모를 때가 많은 것은 다양한 우울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론이라도 알고 있어야 우울증 환자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시 본론 사람들은 우울증 왜 가벼이 생각할까?
겪어봤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걸까.
나는 둘 다라고 본다.
쉽게 우울한 하루가 많이 생긴다.
그리고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우울한 하루는 며칠씩 늘어난다.
그리고 극복하는 사람은 대다수다.
우울증 환자 중에서도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도 있어 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는 우울하고 하루는 우울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우울증을 겪어봤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우울한 하루 겪어보고 그다음 대수롭지 않게 되어 우울증을 그냥 그 하루로 생각하기도 한다. 다시 위로 올라가 이론 검색했는가? 아니면 이미 읽었는가. 그렇다면, 우울증 환자에게 한 걸음 걸어간 것이다.
우울증은 2주 연속으로 지속되며 이전의 기능 상태와 비교할 때 변화를 보이는 경우다.
내가 말하는 증상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우울한 기분이거나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이어야 한다. 주의점은 명백한 다른 의학적 상태로 인한 증상은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하루 중 대부분 그리고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 기분에 대해 주관적으로 보고 슬픔, 공허함 또는 절망감 같이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우울증 주 증상 중 하나가 눈물을 이유 없이 흘린다. (주의점은 아동, 청소년의 경우는 과민한 기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또는 모든 일상 활동과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되거나 체중 조절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큰 체중 감소나 큰 체중의 증가, 거의 매일 나타나는 식욕의 감소나 증가가 있다. 며칠은 식욕이 많고, 며칠은 식욕이 너무 없는, 경우도 있다. 거의 매일 나타나는 불면이나 과다수면이 있고, 또는 어쩔 땐 잘자다가 어쩔 땐 아예 못 자거나 예를 들어 이틀 이상 못 자거나 24시간 내내 잠만 자는, 왔다 갔다 하는 형식이 있다. 거의 매일 나타나는 정신운동 초조나 지연이 계속된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하고, 그만큼 다양하다. 좌불안석 혹은 처지는 느낌뿐만이 아니다. 거의 매일 나타나는 피로나 활력의 상실과 거의 매일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망상적일 수도 있는)을 느낀다.(단순히 병이 있는 것 관련한 자책이나 죄책감이 아님) 거의 매일 나타나는 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주관적인 호소나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함) 반복적인 자살, 죽음 생각(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님),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사고, 또는 자살시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증상이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물질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니다. 주의점은 중요한 상실(예: 사별, 재정적 파탄, 자연재해로 인한 상실,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반응으로 진단기준 극도의 슬픔, 상실에 대한 반추, 불면, 식욕 저하, 그리고 체중의 감소가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우울 증상과 유사하다. 비록 그러한 증상이 이해될 만하고 상실에 대해 적절하다고 판단 된다고 할지라도 정상적인 상실 반응 동안 주요 우울 증상이 존재한다면 이는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과거력과 상실의 고통을 표현하는 각 문화적 특징을 근거로 한 임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주요 우울증은, 기분부전장애, 조현정동장애, 조현병, 조형양상장애, 망상장애, 달리 명시된 또는 명시되지 않은 조현병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병적 장애, 기타 등등이 있다. 주의점은 조증 유사 혹은 경조증 유사 물질로 인한 것이나 다른 의학적 상태의 직접적인 생리적 효과로 인한 경우라면 이 제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우울증, 즉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우울장애는 감정, 생각, 신체 상태, 그리고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환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영향을 준다.
우울증 분명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다른 정신 질환과 같이 다양한 생화학적, 유전적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우울증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물 치료에 있어서는 항우울제 개발에 뚜렷한 진전이 있어 과거에 주로 사용하던 약물에 비해 부작용은 적으며 충분한 효과를 보이는 약물들이 개발되었으며 지속적인 개선과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상당한 호전을 기대할 수 있고 이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항우울제는 일반적으로 효능이 수일에서 수주에 걸쳐 나타나므로 최소 4~6주 정도는 복용을 해보아야 약물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약물 용량을 늘리거나 약물 교체 등으로 인하여 호전 시까지의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우울증은 정신 질환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경험하며 자살하는 반면에. 우울증은 매우 복잡한 상태이며,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선, 우울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학습하고 검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울증은 이론만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적인 상태이기도 한다. 우울증은 개인의 삶과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그 이론을 이해한다고 해서 우울증 환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예 무지보단 이론을 알고 있다면 우울증 환자 상태 양호와 우울증 환자와 관계 개선 우울증 환자에게 상처를 덜 줄 수 있다는 건 장담한다.
우울증은 정신과 전문의와의 치료적 신뢰 관계 하에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좋아진 후 약물 유지 요법이 재발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유지 요법이 권장된다. 입증된 예방법은 없으나 스트레스 조절, 위기의 시간에 교우 관계, 사회적 지지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악화 전 초기 증상 때 치료를 받는 것이다. 재발 예방 있어서도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울증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정신 건강 상태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 및 신체적 안녕에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울증은 단일 원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생물학적 요인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과 같은 특정 뇌 화학 물질의 불균형은 우울증 발병한다. 또한 뇌의 구조와 기능의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전학으론 우울증이 유전적 요소를 시사하는 가족력을 가질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우울증이 있는 가까운 가족이 있으면 개인의 위험이 더욱 증가한다.
환경적 요인으론 학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또는 중요한 삶의 변화(이혼 또는 실직 등)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만성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지원 시스템 부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성격 특성으론 낮은 자존감, 비관주의 또는 반추하거나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향과 같은 특정 성격 특성은 개인을 우울증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자형. 의학적 상태는 만성 통증, 호르몬 불균형 또는 기타 정신 건강 장애의 병력과 같은 특정 의학적 상태는 우울증 발병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주의해야 할 몇 가지 행동과 징후는 다음과 같다.
주요 우울 장애(MDD):
1. 지속적인 슬픔이나 공허감.
2. 한때 즐겼던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3. 식욕이나 체중의 현저한 변화.
4. 불면증 또는 과도한 수면.
5. 피로 또는 에너지 손실.
6.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
7. 집중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8.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지속적 우울 장애(PDD) 또는 기분 부전증:
1. 적어도 2년 동안 지속되는 만성 우울한 기분.
2. 과민성.
3. 식욕의 변화(과식 또는 과식).
4. 수면 장애(불면증 또는 과다수면).
5. 피로 또는 낮은 에너지.
6. 낮은 자존감.
7.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8. 절망감.
양극성 장애(양극성 우울증):
1. 우울증과 조증(고조된 기분)의 기간이 번갈아 가며 나타납니다.
2. 우울증의 증상(주요 우울 장애에서 언급한 대로) 조증의 증상에는 행복감, 에너지 증가, 빠른 생각, 위험한 행동, 수면 필요성 감소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계절성 정서 장애(SAD):
1. 일반적으로 가을과 겨울에 계절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우울증입니다.
2. 증상은 주요우울장애와 유사하다.
3. 졸음 증가 및 체중 증가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정신병적 우울증:
1. 환각, 망상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심한 우울증.
2. 망상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이며 죄책감이나 무가치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후 우울증:
1. 출산 후 발생하는 우울증의 일종.
2. 극도의 슬픔, 불안, 피로감.
3. 아기와의 유대감이 어렵습니다.
4. 식욕과 수면 패턴의 변화.
1. 지속적인 슬픔: 장기간의 슬픔, 빈번한 눈물 또는 전반적인 절망감이 보인다. 우울한 개인은 종종 우울해 보이거나 공허감을 표현할 수 있다.
2. 사회적 위축: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사회 활동을 피하거나 가족, 친구 및 기타 사회적 상호작용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지 알 수 있다. 초대를 거절하거나 모임을 피하기 위해 변명을 할 수 있다.
3.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그 사람이 즐기던 활동이나 취미에 흥미를 잃는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때 의미 있다고 생각한 활동에 대해서도 동기 부여와 열정이 부족할 수 있는 현상은 우울증 증상 중 하나다.
4. 식욕과 체중의 변화: 식욕이 현저하게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등 식습관의 현저한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이것은 의도적인 식단 변화와 관련 없는 체중 감소 또는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5. 수면 장애: 수면 패턴에 변화가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잠을 유지하거나 지나치게 졸려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워 한다.
6. 피로와 에너지 부족: 일상적인 기능을 방해하는 지속적인 에너지 부족이나 피로에 주목해야한다. 우울한 개인은 지속적인 피로를 나타낼 수 있으며 간단한 작업을 완료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7. 부정적인 생각과 낮은 자존감: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하는 자기 비판적 또는 부정적인 진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무가치함, 죄책감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능력과 성취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8. 집중 및 의사결정의 어려움: 환자가 집중력, 기억력 및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작업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생산성이 저하되거나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9. 과민성 또는 초조 증가: 그 사람이 사소한 일에도 과민성, 안절부절 또는 동요를 보이는지 확인해야한다. 그들은 쉽게 좌절하거나 성질이 급하거나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내성이 낮을 수 있다.
10. 자살 생각의 표현: 자살이나 자해에 대한 언급이나 암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본다. 누군가 절망감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경우 즉각적인 도움을 구하고 정신 건강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 모든 사람의 경험은 독특할 수 있으며 모든 개인이 동일한 징후를 나타내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행동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일상 생활에 심각한 고통이나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 정신 건강 서비스 제공자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권장하는 것이 좋다.
우울증 감정
우울증은 고질병이다 계속 멘탈케어 해야한다. 내가 우울증 걸리기 이 전에 내 친구가 우울증에 걸렸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랐다. 난 그냥 모른 채로 지냈을까? 그냥. 내 어찌할 바 몰라 공부했다. 그 앨 이해하기 위해 내 최선으로 알아야 했다. 수업 가기 전 그 아이 생각이 나 자기 전 우울증을 검색해보고 동영상도 보고 책도 읽었다. 그 아이가 하는 행동과 감정 이해하지 못하면 이론이라도 알아서 내 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증 환자 제외로 당신들은 그러한가? 이 책을 자발적으로 읽고 있다면 당신은 그러한 사람이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이, 친구가, 애인이 이 책을 당신에게 보여줬다는 것은 당신 무지로 인해 큰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상처, 받았다. 어쩌면 가장 이해할 거 같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말은 그저 외계어로 드릴 때의 그 박탈감을 알까? 어떤 사람은 날 이해하며 울어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감수성은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널 위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공부하는 것이 진정한 감수성이었다. 우울증이 진짜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이 감수성이었다. 내가 감수성이 많다고 함부로 판단하려 들지 말라는 말이다. 그 사람에게 공감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충분히, 아는가? 그 사람이 되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는가. 그렇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해야 하는 행동을 알아야 했음이 분명했다. 공부하여 알지 못하는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웠어야 했다. 하지만 눈물만 보았을 뿐 상처와 무지가 날 더 갉아먹었다. 난 어쩌면 모두가 나와 같은 거라는 큰 착각을 했기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상처받았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만이라도 조금 모두가 할 것이라는 큰 착각을 했다. 사람들은 바쁘다. 다양하다. 그리고 타인에게 무심하다. 어쩌면 친한 관계일수록 더 무심하다. 나는 엄마 눈물을 보았고, 우울증 관련 책 샀다고 했을 때 다 읽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남동생과 언니가 내 자살 시도와 자해 장면을 봤을 때 유튜브라도 봤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왜 저러는지, 내가 왜 아픈지, 내 행동이 무슨 이유인지, 티를 내지 않으니 괜찮아진 줄 알았으며 다들 의미를 찾지 못했다. 아아, 그래서 난 마음을 먹었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이 어쩌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겠구나. 이 책은 어쩌면 내 유언이다. 나는 지금 살아갈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찾아가고 있다. 모든 것 무가치한 나에게 유일한 쾌락은 글이니, 이 책 다 완성하기 전까진 난 살아있을 것이다. 일단 본론에서 벗어난 사족은 빼고 당신이 만약 우울증인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공부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게 인간의 목숨 줄이다. 사람은 영생을 살지 못 한다. 먼 미래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렇다. 우울증 환자에게 뭘 해보라고 하거나 지시하거나 미랠 얘기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울증 환자는 지금 당장 목숨 끊어도 이상하지 않다. 지시는 우울증 환자에게 죄책감밖에 주지 못한다. 지시보단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야 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환자 위한 길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답답해하지 마라, 생각해봐라. 아 죽어도 상관없는데 그냥 죽을까? 생각하고 있는 사람 코앞에 와서 “나아지기 위해 산책이라도 해봐” 미랠 얘기하고 있으면 반발과 자격지심 죄책감 난 지금 무얼 하고 있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 그냥 죽어버릴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온다. 매일 죽고 싶다 또는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죽음을 숭배하고 죽음만이 휴식이며 죽음만이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사람에게 지시와 미랠 얘기하고, 반복적인 일 하다가 주말 내내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쉬는 날 모든 게 시시해 잠만 자고 싶어 자는 사람에게 무언가 하라고 하면 잠깐 배터릴 충전하면서도 죄책감 갖다가 내 나태함을 탓한다. 내가 예민해져 그만하라고 얘기했다면 참고 참았다가 폭발한 것이다. 항상 주말에 잠만 자는 내 나태함을 탓하다가 유일하게 쉬는 시간조차 방해받는다. 인간의 끝없는 나태함은 자살이다. 자살함으로써 비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편안함이 온다고 착각한다. 그러니 “죽자” 결론이 나온다. 애초에 인간은 쉬는 날을 주지 않으면 탈진한다. 그런 이치를 잘 아는 주제에, 우울증인 환자에겐 더 뭐 하라고 강요한다. 탈진한 사람에게 뭘 하라니, 정말 어리석다. 웃긴건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기력이 없어 평일엔 일하고 겨우 기를 끌어내는 자에게 주말엔 방전인 상태로 지내는 자에게 그게 더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여겨 잔소리 한다. 애초에 우울증 환자를 구원할 수는 없다. 구원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라. 당신도 우울증 걸린다. 그냥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부터 숙지해라. 우울증 환자에게 잔소리는 독이다. 성격과 마찰은 맞지 않는 게 아니라 상황이다. 상황 조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안 맞는다. 우울증 환자에겐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니 그것을 인지하고 대해라. 다행히도 나에겐 글이 있었다. 일기를 쓰며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독은 고통스럽지만 내 안식이다. 고독과 함께 일기를 쓰며 엄마에게 얘기했다. 우리는 성격이 안 맞는 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다. 우울한 사람은 애초에 기력이 없다. 그런데 산책해보라, 공부해보라 얘기하면 유일하게 쉬는 내 주말을 앗아는 것밖에 되지 않아 평일엔 더 힘들다. 애초에 난 우울증 낫기 위해 1년 동안 산책을 3시간 동안 했다. 그럼에도 재발하는 게 우울증이다. 인간 몸은 우습게도 다시 원상 복귀 하려 하기 때문에 감정도 익숙한 우울감으로 가버린다. 나는 겨우 이겨냈는데 또 다시 찾아온 것에 허탈감과 함께 모든 것이 소용없어졌다. 우울증은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버리면 무감증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엄마에게 물었다. “애초에 엄마는 공부한 게 맞아?” 맞다면 우울증환자에게 이럴 수 없다며 울면서 엄마에게 말을 토해냈다. 하지만 난 마치 외계인이 된거처럼 엄마에게 내 말이 와닿지 않았다. 지금은 끝없이 얘기한 탓에 (이때 난 진짜 죽을 생각밖에 안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왜 이런 설명을 굳이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엄마는 우울증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게 되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더더욱 써야했다. 타인과의 마찰은 우울증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는 스스로 이겨내야 할 때가 있고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우울증환자 스스로가 도움을 뻗을 때 잡아라. 그때가 언제냐면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할 때다. 말도 없고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신난 사람처럼 말을 많이 한다. 그때 대화 해주면 된다. 그때가 우울증 환자가 유일하게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난 날이다. 그리고 우울해서 도와달라 요청할 때 잡아줘라. 우울증 약은 졸음을 몰려오게 한다. 졸음으로 우울함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약을 먹고 많이 잔다. 그러나 우울증이 점차 괜찮아지면 우울증 약은 졸리지 않는다. 의사와 상담을 통해 약을 조절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도 아닌 주제에 약을 줄이라 뭐라 얘기할 권리는 없다. 우울증은 여러 상태가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우울증 걸린 사람은 매일 우울하고 우는 줄 알더라. 그런 게 아니다. 우울증을 몇년 째 겪다 보면 무망증에 걸린다. 그래서 우울감에 익숙하다, 그렇다고 우울증은 매일 우울한 상태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조증도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웃길 땐 웃는다. 물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다 웃겨서 웃는 거다. 어느 정도 우울증을 겪다 보면 내가 우울하다고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싫다. 초반에만 많이 나 우울하다고 많이 표현하지 나중 되면 귀찮다. 그리고 내 우울함을 옮기는 것도 싫다. 티를 냈지만 적당히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 조심해야 할 행동 말만 인지하고 안 하면 되는 거야. 전염하기 싫어서 티 내기 싫어한단 말이냐. 계속 우울한 상태로 지속하고 방치, 결국 절망 하고 결국 사람들의 무지에 터져버리고, 다시 죄책감, 난 쓸모 없어. 그리고 겪은 심연 속 우울과 끝없는 무망감, 무기력 무가치를 말해. 내가 죽어도 상관없는 느낌이야. 그냥 죽거나 자거나 두개 하고 싶어. 나 같은 경우는 그냥 생존본능이 사라져서 식욕도 없어져서 3일은 안 먹거나, 잠을 3일간 못 자거나, 아니면 이틀 내내 자거나 둘 중 왔다갔다하고 몸이 붕떠 있어서 시간개념이 느려지고 우울증인 사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항상 곁에 두어야한다. 무감응까지 가면 직업도 마찬가지다. 우린 벗어날 줄 알아야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지지를 받을려면 어떻게해야할지 지지를 빋으려면 내 마음이 어떤지 부터 파악하고 가족에게 말해야한다. 우울증은 그냥 우울감이랑 다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정신병이다. 인정하자.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몰랐기에 소리 지르며 싸웠다. 마치 내가 외계인이 된 느낌이다. 난 분명 한국말을 하는데 엄만 못 알아 듣는다. 아무래도 체력 없는 사람 기빨려고 작정했다.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썰 하나 풀 게 있으니까. 이런 거 보면 난 참 글을 좋아한다, 그냥 죽고싶다........... 앉아있는 이 순간 바로 자살하고 싶다......... 피곤해 잠만 잘래 아니면 죽고싶어....... 죽으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으니까 죽을래..... 숨막혀 가슴 답답해 나른해 귀찮아 그럼에도 살아가는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죽어'와 비슷한 말은 하지말아라 아직 사리분별 가능한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은 전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 전염이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어 주변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어 죽는 게 곧 자살이다. 내 죽음을 주변 사람 슬픔으로 돌아온 다는 것을 잊지않도록 상처주는 말은 하지 말아라. 그들이 유일하게 붙자고 있는 끈이 보인다면 최대한 놓지말게해라. 이 책은 어쩌면 내 유언일지도 모를 책이다. 내 존재 의의를 생각했다. 난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남을 돌보는 것과 글 쓰는 것, 이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난 날 위해서 이 책을 쓴다. 우리들이 왜 아픈지 모르는 당신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웃고있을 때도 치즈가 아니라 웃고 있을 때 주우고싶다아다. 인간은 원래대로 다시 돌아가는 습성이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은 우을함 감정이 계속 되다보면 우울증이된다 뭘해도 갑자기 우울해지고 치료해도 우울해진다 뭘 해도 우울하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이 있지 않으면 일어나 있지 않으려 한다. 일찍 잠들어서 내 우울감을 조금 덜 느끼려 노력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나른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복합적인 기분이다. 당신과 당신의 친구가 우울증을 앓았다니 유감입니다. 우울증은 기분의 장애를 주요 특징으로 나타내는 기분 장애의 한 유형으로, 조증, 혼재성 또는 경조증 삽화의 과거력이 없다는 점에서 양극성 장애와 구별된다. DSM-IV-TR에서는 우울 장애를 주요 우울 장애, 기분 부전 장애, 그리고 달리 분류되지 않는 우울 장애로 나누고 있다. 우울증의 유형은 아주 다양하다. 우울증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형태다.
주요 우울 장애(MDD): 이것은 우울증의 가장 흔한 형태로, 최소 2주 이상 지속되는 슬픔, 흥미 상실, 기능 장애를 특징으로 한다.
기분 부전 장애: 우울장애의 일종으로, 성인의 경우 최소 2년, 아동 및 청소년의 경우 최소 1년 이상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며 식욕감소 또는 증가, 무기력감, 자존감 저하 등의 증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속성 우울 장애(PDD): PDD는 2년 이상 지속되는 만성 우울 증상을 수반합니다. 증상은 MDD에 비해 덜 심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일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절성 정서 장애(SAD): SAD는 일반적으로 햇빛이 적은 겨울철에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의 하위 유형이다. 봄과 여름에 해결되는 경향이 있다.
산후 우울증(PPD): PPD는 출산 후 일부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며 다른 요인과 함께 호르몬 변화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울증은 다음을 포함하여 개인의 삶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윗 증상 중 아래와 비슷한 증상이 있다면 병원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울증 증상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으며 일부 개인은 여러 유형의 우울증에서 혼합된 증상을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귀하 또는 귀하가 아는 사람이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는 경우 적절한 평가 및 치료를 위해 의료 전문가 또는 정신 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정서적 웰빙으로 우울증이 있는 개인은 종종 강렬한 슬픔, 절망감, 짜증, 정서적 무감각을 경험한다. 그들은 또한 자주 울거나 공허함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인지 기능으론 우울증은 집중력, 기억력, 의사 결정 능력 및 전반적인 인지 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으며 한때 즐거웠던 활동에 집중하거나 즐거움을 찾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관계에선 우울증은 가족, 친구 및 연인과의 관계를 긴장시킬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위축, 감정 표현의 어려움 또는 갈등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신체 건강으론 우울증은 피로, 식욕 및 체중 변화, 수면 장애, 두통, 복통 및 만성 통증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또한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다른 건강 상태에 기여할 수 있다. 우울증을 겪고 있을 수 있는 개인과 상호 작용할 때 관찰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울증 감정 속으로
당신이 우울증 앓았을 때 괜찮아질 거라는, 얘길 듣고 희망 얻었는가? 아니었던 걸 알면서 함부로 제단 하지 마라. 우울증은 우울해서 우울증인게 아니다. 그걸 모르는, 그 행동이, 마치 베지테리언이 가죽잠바 입은 거 같다. 모두가 자살을 생각해본다. 상대가 죽고 싶다고 한다면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저 감정을 수용하고 옆에 있어 주면 된다. 죽음 이야길 하는 걸 무서워하지 말아라 죽음은 철학이다. 생각해보며 오랫동안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이 두렵지 않으며 죽음을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삶 깊은 곳, 죽음은 우리 곁 속 있다. 항상 회피하지 말아라. 그 회피 부채는 곧 오게 될 것이고 후회로 남는다. 죽음을 보지 않으려 하지 말아라. 무엇이든 얘길 해보아라. 감정이란 파도 같다. 사람 물병 최대 한도 크기가 있는데 꾹꾹 떨어지는 바닷물 계속 담다 보면 터져 버리는 날이 올 거다. 그럴 때 주워 담지 말고 흘러 보내야 한다. 주워 담아도 담을 수 없으니깐. 흘러내리다 넘쳐 받는 것이 인생이겠지. 되풀이가 되어도 우린 모든 걸 흘러 일어날 사람이라는 걸 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 그것이 곧 자존감 큰 발판이 될 거다. 그러니까 마음껏 울어
너무 이상 쫒아서 숨이 차다. 그런데도 쉴 수는 있어도 멈출 수가 없다. 내 이상이 날 망쳐도 멈추는 순간 난 몸이 붕떠 저절로 날아갈 기이한 기분을 느낀다. 엄청난 성취감을 겪고 나에게 보상을 주자. 그러면 절대 포기 할 수 없을 걸. 보상은 성취감과 연결된 걸 줘. 그럼 그 성취감은 몇 배가 될 거야. 사랑을 한다면 엔드로핀보다 세로토닌이 풍부한 사랑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도망갈 구석 쯤 인간에겐 모두 있다. 난 글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과 시 써왔다. 수업시간에도 글만 썼다. 공부 머리가 없기도 했고 관심 없었다. 관심 없으면 노력하는 것도 싫은 나였기에 동창 애들은 어렸을 때 뭘 그리 썼었냐고 매일 뭔가 쓰고 있던 기억 밖에 안 난다고 한다. 그러게 항상 안다. 내 유일한 안식처 내 오랜 친구는 글이었던거지, 안식처도 없던 친구도 없던 나에게 유일한 세로토닌 내 도망처 글은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내 노력이 어디까지인지 볼 수 있는 수단이다. 우울증 환자는 종종 일상, 생활에 큰 타격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내면은 텅 빈 채로 무기력하게 지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정도로 상실감과 무감정 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이유로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마찰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것을 수용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듯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 나는 눈을 떴다. 그 어둠의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많은 고통과 삶의 의미를 잃은 상태에서 내내 전장에서 싸우는 듯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날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겪어온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정폭력, 사회적인 괴롭힘이 내 안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경험한 폭력과 괴롭힘은 나를 깊이 상처받게 했고, 성장하면서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폭행 성추행의 희생자로서의 경험도 내 안에 존재하며, 그로 인한 무감각함과 배신감은 내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그동안 가족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소외감은 나를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고 남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노력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내 엄마와 언니, 남동생은 모두 어려운 시련과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노력과 성공은 나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나는 엄마와 언니의 동생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힘을 얻었다. 나는 글을 통해 자신 내면을 표현하고 우울증과의 싸움을 기록해왔다. 글쓰기는 내게 치유 도구이자 소중한 친구였다. 나는 이제까지 경험했던 상처와 고통을 글로 써내려. 감으로서 그 감정들을 탐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 자신과의 대화처럼 솔직하고 정직한 시간이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내가 겪은 어려움들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지침서가 되었다. 나의 글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결의 다리가 되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종종 고립과 외로움을 느끼는데, 나의 글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우리는 함께 우울증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글을 통해 나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나는 글을 통해 자아의 재구성을 경험했다. 글을 쓰며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탐구하고, 그것을 긍정적인 자아로 바꾸어 나갔다. 내 안에 있던 자신을 낮추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발견하고, 그것과 대화하며 해방을 찾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자기애와 자기인정을 주며,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치유적인 도구였다. 나의 글쓰기는 더 이상 나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글쓰기는 나와 공동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글을 나누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공동체는 우울증을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지원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우울증과의 싸움을 나누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힘을 나누어 주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여정을 함께 나아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자기치유의 방법을 함께 모색했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공통된 경험을 공유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를 도와주며 강해지고자 노력했다. 이 공동체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역할을 하며, 글쓰기를 통해 함께 성장하고 이기적인 우울증과 싸웠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글쓰기로 치유받은 나는 이제 세상에 나의 목소리를 전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나아온 여정을 기록한 글들을 모아 책을 출판하였다. 그 책은 우울증을 이겨낸 이야기와 글쓰기의 힘을 알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나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달하며, 우울증과의 싸움에서 희망의 불씨를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우울증을 이기기 위한 글쓰기는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였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하고자 한 나와 같은 이들이 있고, 전 세계에도 있다. 우울증은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고 일상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특징으로 무기력함, 무감응함, 무가치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우울감과 삶에 대한 흥미 및 관심 상실이 핵심 증상이다. 식욕 변화, 수면 문제, 불안 증상, 인지 기능 저하 등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우울증 환자의 삶에 큰 영향을 주며, 상당한 고통을 초래한다. 우울증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상적인 우울한 감정을 겪는 것과 우울증은 다르며, 각 사람마다 경험과 고통의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그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어쩌면 다양한 공동체다.
우울증이 오기 전 과정
우울증이 오기 전 당신은 잘 버텼을 거라고 본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거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본다. 그리고 많이들 물어본다. 너는 왜 글을 써? 내 대답은 항상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거야" 였다. 이런 내 대답이 시원치 않으니 관종이라고 말하거나 사차원이라고 한다. 글쎄. 삶 의미 깊게 파고 들어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을 뿐. 사실 당신들도 궁금했기에 속이 허한게 아닐까?
이제서야 난 내 사춘기를 마음껏 즐긴다.
내 사춘기는 늦은 나이 지금 왔다. 어린시절 사춘기란 사치였다. 꿈은 포기 할 수 없고, 돈은 벌어야하고, 타인이 원하는 모습 따위 버리지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했다. 짐을 덜어내는 법을 몰랐다. 그렇다. 난 청소 미루는 거 빼곤 모든 완벽해지려했다. 그러다 정신이 많이 아프게됐다. 처음엔 너무 아팠다. 늦은 사춘기 탓에 온 큰 병인 줄도 모르고 앓아누워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어쩌면 우울해도 괜찮을지도? 우울증은 내게 시련을 주지만 동시에 성장도 준다. 곧 괜찮아질 날 알게된다. 힘들어도 일어서려는 내 모습을 보면 점점 자신감이 찼다. 그러면서도 나를 보듬었다. 내가 아플 때 어떻게하면 금방 괜찮아지는지도 알게됐다. 밑거름이됐다. 나아질 거란 희망은 아직까진 모르겠지만 성장하고 싶어 외치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현재도 미성숙하지만 조금씩 성장이 중요해졌다. 내 아픔은 곧 내 밑천이 되었다. 내가 아프지않았다면 내가 없음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를 알아가고 반성하는 것, 성장할 때 고통만큼 크게 깨달음 주는 것은 없음을. 더 이상 내 고통이 부정으로 보지않는다. 어린시절 내 자신을 사랑하지만 자존감이 낮았다. 복잡한 나를 여전히 몰랐기에 그랬다. 그럼으로 타인을 더 사랑했다. 그것은 서로에게 독이되는 것을 모르고 가족이든 연인든 친구든 불태웠다. 그런 나였기에 지금 이기적이어도 즐겁다. 현재도 여전히 날 모르겠다. 난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날 모르고 대할 때 괴리감과 나도 모르며 나를 대할 때 괴리감은 똑같았다. 나는 매번 나를 알아가려 노력한다. 나를 알아가야 내 자존감이 성장할테니까. 고통이지만 얻는게 있으니 불만없다. 나를 알고 나를 승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게임같다. 그러면서 알게된것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싫었던 과거 속 나에게 묻고싶다. 적당히 이기적이지 않으면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게 될 거다. 그럼에도 괜찮아? 과거 속 난 "당연하지" 말할거다. 적당히 이기적이지 않은 내가 어떤 깨달음 얻었을지 그때 나는 여전히 나이며 궁금한 게 많은 나이기에, 무척이나 궁금할테니. 호기심이 많은 나야 물론, 고통도 파헤칠거다. 이게 나다. 내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젊음과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혼이 껍질 속 그대로 나와 육체 없이 사는 자유를 느낀다.
2장 : 타인과의 대립
* 우울증인 사람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즉시 병원가라.
또는 무료 복지상담센터가 있다.
일반 병원에서 약 처방만 받는 거 자첸 비싸지 않지만 상담 매번 하기엔 비싸다. 우선 주민센터 전화 해보자, 의사소견서 아님 진단서를 들고(그전에 다녔던 병원) 예를 들어 많은 무료 복지 상담 중에 주민센터에 청년마음 건강 지원사업 대해 물어보자, 주의할 점은 기간마다 지원과 정책 해당 사항이 다를 수 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나 약 처방도 되니 심한 우울증이라면 약은 꼭 먹어라. 심한 우울증은 약이 답이다. 나는 당신이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한 엄마와 외계인이 된 나.
우울증 환자에게 본인이 원하는 걸 하면 했으면 하는 걸 요구하지마라. 우울증은 고질병이다. 계속 멘탈케어 해야한다. 사람들은 내가 웃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내 기분을 옮기기 싫어서 오랜 우울증을 앓다가 만들어낸 페르소나 하나에 그친다. 난 하하하 웃는 게 아니라 죽을래 라고 속으로 외치며 치즈 할 때 미소처럼 죽으래에 하고 미소 짓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생활에서 터득한 자연의섭리로 얻은 것이다. 그럼에도 속엔 에휴 의미 없다 하지만 타인에게 내 감정을 보여주고 싶진 않다. 머리 속안, 이미 자살 플랜을 다 짜고 있다. 식욕은 없고 배고픈데 밥을 먹으면 조금만 먹고 몸이 마치 살아있을 정도만 먹는 수준, 시간개념이 무너지는 느낌 일어날 기력이 없는 사람한테 일어나라고 재촉하면 기력이 생기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그것을 상대방은 몰랐고, 난 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그것이 첫 단추였다. 난 내 감정을 잘 알고 이해하고 말할 줄 알아야 했으며, 감정호소가 아닌 이론으로 말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우울증이 환자가 그 말할 기력이라도 있을 거 같은가. 전혀 없다. 상황은 더 악화만 될 것이다. 그래서 책을 쓰기로 했다. 기력 빨리게 하는 사람에게 이 책 한 권 던져주라고, 이걸 받은 당신. 반성해야 한다. 이론이라도 알았다면 이 책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소중한 이 사람을 위해 이론이라도 알아볼 생각이라도 했는가? 최소한 백과사전 검색이라도 했다면 인정해 주겠다. 그런데 이 책을 받았다면 이론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만약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우울증 환자 대하기 어렵다는 거 잘 압니다만 진정하시고 책 읽어보며 우울증 환자 대하는 방법 알려드릴 테니 화 가라앉길 바랍니다. 그래도 이론 공부도 양심에 손 얹어 놓고 물어보겠는데 안 했으면 혼 좀 나야 한다. 그리고 우울증 겪었다고 남도 괜찮아질 수 있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괜찮아지지 않는 우울증 환자는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건가? 자책하게 된다. 이겨내서 굉장한 건 알겠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나도 괜찮아 졌으니, 너도 괜찮아질 거라는 말 좀 하지 말아라. 분명히 겪어놓고선 그런 말 들으면 그땐 뭐든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망각이 너무 심해서 그런 말이 상처가 된다는 걸 모르는 건가. 우울증 증상 중 하나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안식으로 느껴지는 것이 주변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해야 할 요소다. 곧 죽을 생각에 행복해지고 약을 모으고 주변을 정리한다면 잘 살펴 주어라. 백퍼 자살하려는 거다. 모두가 자살을 생각해 본다. 상대가 죽고 싶다고 한다면 무서워하지 말고, 덤덤하게 그저 감정을 수용하고 옆에 있어주면 된다. 당신까지 아플 필욘 없다. 미래 위해서 뭘 하라고 말하지 좀 마세요. 할 힘도 없는 사람에게 부모가 원하는 거 말고 "무엇을 하고 싶어? 난 항상 네 편이야" 말해주면 안 되요? 어느 날 내 친구가 우울해 보인다. 너무 걱정된다. 일어날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된다. 친구가 의미심장한 사진을 올린다. 우울증 증상 중 하나다. 우리들의 결말은 같은 걸까. 난 어렸을 때부터, 내 세상은 오로지 엄마였다. 내 미래는 엄마였다. 엄마의 행복이 우선이었고 엄마가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가 아빠한테 맞았을 때 난 그때조차 머릴 굴렸다. 엄만 우릴 매일 보고 싶어한다. 그러니 도망가지 못하는 것이다. 엄마 도망가! 아빠를 붙잡았다. 그러자 아빠가 내 북부를 사정없이 때렸다. 내가 그때 중2였다. 난 계속 맞았고 엄마가 경찰을 불러서야 멈췄다. 경찰은 절뚝이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난 얼굴도 맞아 퉁퉁 부어있었다. 그때 경찰이 한 거라곤 제지밖에 없었다. 우린 도망 나왔고 난 고3이 되자마자 취업을 하고 엄마가 하는 많은 일 중에 쉴 수 있도록 하도록 하고 싶었다. (중학생때도 아는 사람 곁에 틈틈이 알바하며 엄마에게 줬었다.) 그렇게 대학교 졸업하고 졸업하자마자 취업하여 매일 월급을 줬다. 나는 욕구가 없었다. 사고 싶어도 사고 싶지 않다고 내게 세뇌했다. 그래도 적금 하나는 매번 희망을 찿듯이 들어놨었다. 그런데 우린 또 이사를가게 되었고, 내 적금은 또 깨지고, 적금을 하면 또 깨지고 깨졌다. 월급을 주는 것도 엄마는 당연시 여겼다. 언니는 그래도 자주 일은 안 해도 월급 나오면 따박 따박 주는데 넌 내가 뭐라고 말해야 주냐고. 여기서 우울증 증상 초기 증상 미래의 막막함을 느꼈다. 엄마에게 모든 월급을 다 주고 30만원만으로 한달 용돈으로 살았다. 대신 30만원으로 살아가는 대신 저금이랑 핸드폰 요금이나 보험금은 내주기로 약속했으나 엄마는 자주 미루는 게 일상이었다. 전화는 자주 왔고 나는 엄마한테 내라고 보채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낼 거 내고 다 주겠다고 싸웠으나 몇 달은 괜찮다가 다시 옛날처럼 하자고 했다. 과거와 현재까지 난 행복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미래는 괜찮을 거야, 적금 했는데 부셔지니, 엄마의 당연함이 악마로 느껴졌다. 난 엄마를 내 목숨 따위 상관없을 정도로 사랑하는데 처음으로 싫다고 느꼈다. 단지 돈 때문에 엄마가 싫다니? 난 부정했다. 부정했고 엄마 얼굴을 안 보려고 피했다. 엄마는 맨날 애교를 피우며 나오던 둘째가 이젠 방 밖을 나오지 않으니 너는 엄마가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냐고 화를 냈다. 내가 왜 갑자기 저러는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비혼주의자가 된 것은 가장의 무게도 크게 알고 아빠가 가정폭력범이라서 그렇다.) 난 엄마 얼굴을 보기가 싫었다. 그런 나를 난 열심히 부정하고 있을 때 엄마가 건든 것이다. 엄마와 마주치면 매일 싸웠다. -- 난 여기서부터 우울증이 온 거라고 엄마에게 얘기하고 싶었으나 엄마는 과거 일은 과거니 지금부터 적금을 안 깬다. 이런 소리 하고 있다. 그러니 경제공부하라고 한다. 난 우울증이 온 뒤 경제관념이 무너졌다. 어차피 적금하면 뭐해 죽으면 사라질 거. 그래서 엄만 날 걱정해서 한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며 어떤 성장통과 아픔과 우울증을 견뎌내기위해 한 노력은 몰라주고 가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심지어 공부조차 하지 않은 채 경제공부하라다. 무력감, 박탈감, 죄책감, 나는 쓸 모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지시를 한다. 매일 매일. 화가 났다. 그 전에 방에 틀어 박혔을 때 엄마가 붙잡아줬더라면 나 이렇게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하라는 거 다 하려고 노력했다. 우울증 걸려서도 마찬가지다. 산책 가보는 거, 청소, 미용공부, 다시 원래 직업으로 가기, 작가는 미래가 없다며 작가 포기 하는 것. 난 현재가 중요했다. 내가 살아있는 작은 쾌락 하나가 중요했다. 엄마가 그 말은 한 후 난 글을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유일한 나의 쾌락도구가 사라지니 무망감에 휩싸였다. 내 존재의의 사라지니 그저 죽어도 상관없는데 그런데 경제공부? 갑자기? 폭발했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내가 얻은 게 없었다. 지시는 매일 숨이 막히는데 계속 지시 하니 지시가 숨이 막혀 지시를 듣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젠 경제 공부를 하라한다. 그것도 주말에. 거기서 남동생도 부채질을 열심히 한다. 경제공부하라 한다. 나는 아아악!!! 그만해!!!! 화를 냈다. 화를 내지 않으면 엄마는 끝까지 하라고하라고 할테니 말이다. 엄마는 비죽이며 내 말투를 따라하고 남동생 앞에서 어린애냐고 한다. 난 애초에 내가 관심 가지는 게 한정적이다. 관심도 없는 경제공부나 하라고 하니 이 기운은 또 어디서 뽑아야 하나 아찔하다. 엄마는 화를 내지 않으면 내가 싫다고 해도 전혀 거절로 못 알아듣는다고 말해도 전혀 듣지 않는다. 난 내가 무슨 외계어를 하나 고심했다.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려 노력했다. 언제 한 번 “엄마는 왜 내 생각을 묻지 않고 뭐뭐 하라고만해? 이건 어떻냐고 물어봐주면 안 돼!?” 이거 전에도 말하지 않았었냐하니 이젠 “산책 가보는 거 어때?”로 변했다. 무기력해서 주말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십키로 빠져 기력 없는 사람한테 산책하랜다. 화병으로 돌아가기 일보직전이다. 나는 또 폭발했다. “하라에서 어때로 바뀐 거 밖에 없잖아!!! 엄마 내 말 진짜로 이해가 안가?” 엄마는 그와중에 너가 물어보는 식으로 말하라며 그리고 엄마가 물어보는 것도 안되냐고 한다. (엄마의 중요 단어 중 하는 엄마가 뭐뭐하는 것도 안되냐는 거다.) “물어보는게 중점인 게 아니야.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봐달라는 거야! 지금은 엄마가 원하는 걸 했으면 하는 걸 물어보잖아! 엄마 진짜로 이해가 안 가는 거야? 내가 얼만큼 얼마나 설명을 해야 엄마는 알아듣는 거야? 심지어 방문에 심력소모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적어났잖아!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데!! 엄마 공부했다고 했잖아? 한 거 맞아??” 물어보니 사실 안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공부 안 한 거 같아서 했냐고 물어봤을 때 했다고 했었다.....) 그러더니 엄마가 갑자기 침착해져선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그때 친구 얘기와 타인들보다 더 못하다는 소리 이후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깐 나의 말은 뭘 하고 싶은지를 물어봐달라는 거지? 드디어 외계인 소통에서 벗어났다. 엄만 내가 우울증 기복이 커지면 변개(강아지)야 번개를 찾았었다 날 어떻게해야할지 몰랐다는 거다. 언니 일 안 할때 답답함 남동생 용돈은 자기가 한다고 착하디고 말할 때 상처를 받았다. 나한테는 뭐라고 많이 하고 있는 상태에서 동생은 칭찬한다. 그때 일을 엄마에게 지금 물어보니 네가 돈 벌고 있었으니 그때랑 동생 때랑 다르지 않냐고 말했다. 물론 옛날과는 형편이 많이 나아지긴 했다. 그렇지만 현재 나는? 여전히 나 혼자 형편이 똑같았지만 조금 달라짐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서야 난 내 사춘기를 마음껏 즐긴다. 내 사춘기는 늦은 나이 지금 왔다. 어린시절 사춘기란 사치였다. 꿈은 포기 할 수 없고, 돈은 벌어야 하고, 타인이 원하는 모습 따위 버리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했다. 짐을 덜어내는 법을 몰랐다. 그렇다. 난 청소 미루는 거 빼곤 모든 완벽해지려 했다. 그러다 정신이 많이 아프게됐다. 처음엔 너무 아팠다. 늦은 사춘기 탓에 온 큰 병인 줄도 모르고 앓아누워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어쩌면 우울해도 괜찮을지도? 우울증은 내게 시련을 주지만 동시에 성장도 준다. 곧 괜찮아질 날 알게된다. 힘들어도 일어서려는 내 모습을 보면 점점 자신감이 찼다. 그러면서도 나를 보듬었다. 내가 아플 때 어떻게하면 금방 괜찮아지는지도 알게됐다. 밑거름되었다. 나아질 거란 희망은 아직까진 모르겠지만 성장하고 싶어 외치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현재도 미성숙하지만 조금씩 성장이 중요해졌다. 내 아픔은 곧 내 밑천이 되었다. 내가 아프지않았다면 내가 없음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를 알아가고 반성하는 것, 성장할 때 고통만큼 크게 깨달음 주는 것은 없음을. 더 이상 내 고통이 부정으로 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 자신을 사랑하지만, 자존감이 낮았다. 복잡한 나를 여전히 몰랐기에 그랬다. 그럼으로 타인을 더 사랑했다. 그것은 서로에게 독이 되는 것을 모르고 가족이든 연인든 친구든 불태웠다. 그런 나였기에 지금 이기적이어도 즐겁다. 현재도 여전히 날 모르겠다. 난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날 모르고 대할 때 괴리감과 나도 모르며 나를 대할 때 괴리감은 똑같았다. 나는 매번 나를 알아가려 노력한다. 나를 알아가야 내 자존감이 성장할 테니까. 고통이지만 얻는 게 있으니, 불만 없다. 나를 알고 나를 승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게임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싫었던 과거 속 나에게 묻고 싶다. 적당히 이기적이지 않으면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게 될 거다. 그럼에도 괜찮아? 과거 속 난 "당연하지" 말할 거다. 적당히 이기적이지 않은 내가 어떤 깨달음 얻었을지 그때 나는 여전히 나이며 궁금한 게 많은 나이기에, 무척이나 궁금할 테니. 호기심이 많은 나야 물론, 고통도 파헤칠 거다. 이게 나다. 어른아이라고 아는가? 어렸을때 부터 어른이되어버린 아이는 그것이 나중에 이자가 큰 사채가 되어 어른아이가 되어 마음은 아이인 어른이 된다. 우울증은 그렇게 찾아온다. 그 부채를 갚아야 한다. 아이가 조용하디고 눈치 본다고 아이가 어른스럽다고 좋아하지 말아라. 그만큼 어른이 아이에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모방하라고 강요한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성장하고 성장통을 겪어야 비로써, 아이이며 어른일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우울증인 사람에게 마음을 굳게 먹으라 얘기 하는데 마음은 뇌가 있다. 뇌가 아픈 거다. 우울증은 뇌가 아픈 거다. 뭐 좀 하라고, 시키거나 명령하거나, 나아지려고 산책 같은 걸 해보라고 얘기 하는 것은, 다리가 부러져서 다리 붙으려면 아픈 사람한테 산책 나가서 뛰라는 소리와 같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우울증은 예민하다. 신경질 적이다. 그리고 부정적이다. 말 하나 하나 조심해야 한다.
우울증 환잔 우울증 이론과 감정을 모두 다 이해한 사람이 안아 주기만 하면, 잠시 우울감과 자살 생각이 멈춘다. 그래서 이론이 중요하다. 자살은 죽음이 아니라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문제 의식이다.
자살을 생각 할 수도 있는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을 하고 싶어? 자살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어? 물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생각을 들어주는 것이 좋다. 자살이란 단어를 무서워 하지 말고, 물어봐서 우울증 환자, 자살 하는 것을 예방 할 수 있다.
자해는 왜 하는 것인가. 나 좀 알아줘 나 너무 아파요, 그 뜻 일수도 있지만 무감응증에 빠져 입맛도 없고 쾌락도 없고 고통도 없는데, 조금만한 고통이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한다.
자해는 일종의 신호다.
그 환자가 많이 아프다는 신호를 무시하지 마라.
너무 아프니까 같이 병원에 가서 가족 상담이라도 받는 노력이라도 해라. 아니면 이론이라도 알려고, 그리고 우울증 환자 심리가 어떤지 알려고 노력이이라도 해라.
그 사람이 소중하다면 말이다.
언니와 남동생과의 대립
언니의 비수가 첫번째 시작으로 사람과 있으면 괜찮았던 공황이 사람이 있어져도 공황이 찾아왔다. 난 그게 무서웠다. 남에게 피해주지않고 괜찮은 방법 중 하나였는데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대못을 박을까봐 무서웠으며 미웠다. 그런데 엄마의 툭 던진 돌맹이가 연못의 물결처럼 내 상처 후벼파 퍼져나가게 만들었다. 대못을 박을까봐 무서웠던게 이젠 내 공황장애가 어떤건지 똑똑히 느껴주게 하고 싶어졌다. 내가 죽으면 느꼈을 그 고통일거다. 그걸 똑똑하게 느껴주고 싶어 복수심에 활활타올랐다. 공황장애만 와라 와라 와라 와라. 내가 항상 바라보던 옥상에 뛰어가 뛰어내릴테니 그래서 내가 느꼈던 공황을 똑똑하게 느껴주게 만들테니. 와라와라. 눈물만 흐른채 주저앉아 멍하니 옥상을 바라봤다. 그러다 아버지가 오셨고 아버지랑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왔고 같이 산책을 했다. 엄마는 내게 미안했는지 집에 와서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뽀뽀도 해주고 반찬을 해주며 사과는 안했지만 그게 느껴져서 그 복수심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눈녹듯이 말이다. 집에 옷을 가지러 갈 일이 있어 언니가 없었으면 했다. 근데 언니가 있었다. 나는 다행히도 언니에게 분노라는 감정대신 무감정을 느꼈다. 그 후 나는 사람이 있으면 공황장애를 겪지 않았다. 사람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아 심해지고 사람의 애정으로 나아진다. 나는 그럼 사람이었던것이다. 미안하다는 조그만함 표시라도 낸다면 기분이 사르르 풀리는 사람. 그동안 우리 가족들은 내게 그걸 안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쌓이고 쌓여서 내게 정신질환이 찾아왔겠지, 내 정신질환이 과거 때문에도 현재 때문이라는 복합적인 이유겠지만, 그 중 하나겠지. 나는 참 단순하다. 그후 복수를 접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겪을 아픔을 받게 할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때는 상처였지만, 내게 조그만 한 제스처가 다가온다면 난 스르르 풀리던 사람. 그러나 쉽게 상처 받는 사람이 나다. 모든 게 가시 처럼 보인다. 다가가면 찔릴 거 같다. 숨이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가슴이 미친듯 아파 누군가를 잃은 거처럼 아프다. 육체적 고통이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해를 하면 처음엔 정신이 또렷해지다가 고통이 무감각해진다. 미친듯이 자해를 하면 무감각해진 게 서서히 올라온다. 그때 숨이 쉬어진다. 기운이 없다. 또 그 상태가 될 거 같아서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어도, 기대고 싶어도, 가시라서 가시의 체온 조차 맘 한 켠 한구석에서 미친듯이 찔린다. 내 주변은 가시투성이다. 그러면서도 장미다. 나는 조울증이 있어서 기쁠 땐 하늘과 풍경을, 우울할 땐 옥상을 본다. 어디서 뛰어 내려야, 덜 아프고 즉사할까 생각한다. 그래서 두려움에 항상 떤다. 또 지독하게도 괴로운 공황이 오면 주변사람에게 대못을 박을테니까. 그래서 그 두려움에 벗어날 방법이 하나라도 생기면 기쁘고, 사라지면 극도로 우울해진다. 또 공황이 와서 괴로워 미친듯 뛰어가 그곳을 가서 모든 가시에게 대못을 박아버릴까봐 무섭다. 식칼을 들어 내 허벅지를 미친듯이 찌를까 또 무섭다. 모든게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다. 공황이 올 때 사람이 있으면 괜찮았는데 어떠한 충격으로 이젠 그러지 않게 되어서 더 무서워졌다. 그 좋은 방법이 사라졌다. 약도 소용이 없어졌다. 산책도 소용이 없어졌다. 운동도 소용이 없어졌다. 얘기도 소용이 없어졌다. 체온도 소용 없어졌다. 글쓰기도 소용이 없어졌다. 책 읽기도 소용이 없어졌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는데 이젠 대못밖에 없어서 두렵다. 매일 아침에 생각한다. 내가 안 두려워질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끝내 지친다. 주변사람들은 나보고 노력하라고한다. 난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그래? 아무 것도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평상시와는 달리 내 입에서 나답지않은 낯선 말투가 들린다. 귓가에 맴돌고 나서야 나는 내 상태가 평소와는 또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래요. 저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매번 생각하고 남 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서 항상 혼자서 생각하고 결론이 나면 행동해요. 가시 같은 말을 뱉지 않는 내가 되는 노력도 필요하겠다고 금방 또 느꼈어요. 사람의 도리가 반성하고 그다음 행동이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재촉하지 말아요. 항상 무섭단 말이에요. 지금은 아파서 이해 해주는 사람이 나도 필요해요. 난 충분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 모르겠다. 그냥 덧없어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가치관과 욕구를 파악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와 욕구를 설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요구나 기대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신건강 문제는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직업적인 측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절한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의 업무 부담을 줄이거나,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아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친척과의 대립
나의 부친은 가정폭력범이다. 그래서 부친을 아빠라고 하지 않고 이름을 말한다. 그런데 큰삼촌은 그게 싫었나 보다. 그래도 아빤데 아빠라고 불러야지 왜 이름을 부르냐고 한다. 나는 그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그냥 000인데요 라고 말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인간을 내가 아빠라고 불러야 한다니 너무 끔찍했다. 공황이 찾아왔고, 그런 내 모습을 처음 본 친척은 당황했다. 할머니는 울었다. 나는 화장실 문을 잠가 면도칼로 내 팔을 마구마구 긁었다. 정신적 아픔보다 육체적 고통이 나았다. 나에게 관심을 줘. 나에게 상처를 주지 마. 나 많이 아파. 소리치는 거와도 같았다. 어렸을 적 작은삼촌이 우리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다고 우리를 엄청 싫어 했다. 잠깐 할머니네집에 살 때 그게 너무 힘들었다. 어렸을 때 큰삼춘은 내 사촌을 더 위했다. 우리 남매는 관심 밖이었다. 친가는 더 했다. 친할머니는 나를 “작은고모닮은X“라며 욕하며 남녀 차별을 했다. 남동생을 그리도 아꼈으면서 그 작은 어린아이에게 못 할 말을 계속했고 나는 눈칫밥을 먹고 자랐다. 작은아빠는 베개로 나를 때렸다. 그리고 엄청, 싫어했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친가와는 연을 끊었다.
직장에서 타인과 나
우울증 걸리고 몇 년째 지나고 나니 직장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감정이 침체했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다. 약 기운에, 지각을 하게 되고 일은 열심히 하지만 지각하게 되어 매번 내가 싫었다. 또 불의는 못 참는 성격이라 후배한테 막대하는 교사가 있으면 원장님과 얘기를 놔눴다. 그래서 후배들이 내게 많이 기댔는지 모른다. 상사와는 싸우거나 다음날 일어나면 아무렇지 않게 대했고, 그냥 서로 잘 지냈다. 인사를 하면 안 받아주든 말든 그냥 했다. 그들은 내 관심 밖이었고 상처받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근무하는 것에 자꾸 작은 거라도 트집을 매번 하루 다섯 번 기본이니, 스트레스는 무겁게 작용했다. 우울증 환자는 잔소리와 트집에 취약하다. 또 억세게 말하는 것에 취약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싸웠다. 매번 싸우다가 낼 되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하는 것도 지쳤다. 예전에 다니던 가족 같은 분위기 어린이집이 너무 그리웠다. 엄마의 강요도 있었지만,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무기력한 사람한테 미용학원 다녀라. 미용을 배워라. 미용실 차려주겠다 우리 형편에 맞지 않는 소리를 했다. 미용학원 다니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으나 없었다. 알바 하며, 내일배움카드로 학원 다녔지만, 미용 일은 너무 맞지 않았다. 특히 헤어라 더더욱 맞지 않았다. 진작에 맞지도 않는 옷을 벗어던지니 속이 편안했다. 엄마의 강요와 억압은 계속 되었다. 뜬금없이 무기력한 사람에게 경제를 배우라 한다. 우울증환자는 스스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스스로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가 내면을 다스려서 무기력함에 벗어나야지 주변에서 뭐하라 지시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과 비슷하며 너 죽으라는 소리다. 게다가 내가 얼마나 그때 학원다니며 경제적이게 힘들었는데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며칠쯤 지시한다. 나는 너무 지쳤다. 몇 년째 일을 했음에도 월급을 엄마에게 다 주니 모아둔 돈은 없고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참았다. 이제 새아빠가 생겨 내가 가장이 되지 않게 되자 나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쇼핑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기분을 옮기기 싫어 매일 울고 울기도 귀찮고 무기력하고 공황이 와도 티 내지 않는 나날 쇼핑으로 잠깐의 쾌락으로 그 화풀이를 했다. 이것이 부채가 되어 내 스트레스를 더 안겨 주었다. 지금은 다행히도 나아졌지만 이젠 억압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뒤늦게 안다. 그럼에도 쇼핑을 많이 한다 싶으면 얘가 우울증을 여기서 푸는 구니 수긍해주면서 그래도 조금씩 줄여보자라는 말이라도 보호자가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3장 :
너희 참 실례되는 새끼들이구나?
* 가정폭력 신고 상담 및 지원
여성긴급전화 국번없이 1366
다누리콜센터(이주여성) 1577-1366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644-7077
대한법률구조공단 국번없이 132
* 이유가 없는데 우울하면 약을 먹어라. 호로몬 때문이다.
허나 이유가 있어서 우울하다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취미가 뭐였는지 생각해보고 천천히 시도해보라 살아가 의미가 생길 것이다.
자살 예방 센터 : 1399
정신건강상담전화 : 1577 – 0199
한국 생명의 전화 : 1588 – 9191
청소년 전화 1388
힘들 때 상담이 필요할 때 이론을 아는 사람들이다. 얘기 할 사람이 없을 때 전화하거나 자살 하고 싶을 때 전화해라. 많은 도움이 된다. 왜냐면 우리는 죽고 싶은게 아니라,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실례가 되는 당신 대화법 파괴부터 하자.
우울증 환자는 가끔 조금만한, 걸로 토라진다.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당신. 그것은 당신이 환자가 아닌 사람과 환자인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대화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는 반쯤 혼자서 고독과 싸워야 할 때가 있지만 사람도 자주 만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싸우게 되고 싸우면 모두가 피곤한 법이다. 이럴 때 대화법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우울증 환자 토닥토닥 방법 자세히 알려주도록 하겠다. 이 대화법은 우울증 환자만이 아니라 당신 대화 어투 또한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첫 문단처럼 조금만한 걸로 토라진 우울증환자. 감정부터 수용해주어야한다. 자 모두 외워라.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운했겠구나.” 심화버전 “서운했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오해한 거야. 나는 (여기서부터 본인 주장)” 화난사람 있으면, “00이 내가 이렇게해서 화가났구나.” 심화버전으로 “나도 네 입장이면 화가났을 거 같애.” “내가 아직 00이 몰라서 그런데 어떤 부분이 화가 났는지 말해줄 수 있어?” 하나의 썰을 풀겠다. 위가 아픈 상황이고 나는 일을 가야 하는 상황이고 엄마는 청소하느라 바빴을 때였다. “아프다고 얘기하면서 엄마 부르며 약 어딨냐고 물어봤는데 왜 안 알려줘!” 엄마에게 성질 부려본 적 있는 저자. 엄마는 바구니 만지며 여기 없으면 없을걸 하고 가버렸다. 그게 너무 상처였다. 바구니만 슥 만지고 아프다고 엄마 약 어딨냐고 계속 물어보는 나. 엄마는 그저 바빴고 약 정리 한 사람은 엄마고 또 다른 대처 방안을 몰랐던 거다. 그리고 약 없으면 어떻게 할 방안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 입장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냈고 엄마는 그럼 어떻게 하라고? 약을 사왔어야 했어? 너가 오해한거잖아 그럼 된거아냐? 라고 물어보게 되는 형식이었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서운하다고 우는 거잖아. 그럼 “에고 서운했겠다. 엄만 약 정리를 했기 때문에 이 바구니에 없으면 없는 거라 그랬어.” 감정코치라고 아는가? "저 화났어요." "화났구나." 말을 따라 한 것 만으로도 문제 본인에게 감정코치가 된다. 왜냐하면 공감이 되어 있으니까.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게 돤다.
사람은 교과서다. 본받아야 할 점과 멀어져야 할 점은 구분하는 눈만 기른다면 사람을 구경과 탐구 하는 건 한 지식을 얻은 느낌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듯 사람도 좋다. 마치 책 한권을 생동감 있게 본 느낌이다. 그 책 마다 문체가 다르듯 모든 사람이 다 달라서 재밌다. 단지 오타는 뺄 뿐. 인간은 협동하기 위해 진화된 동물이다. 내가 왜 진화했는지 알고 살자. 협동도 지능이다. 감정을 읽는 건 지능이다. 무례한 자는 배척해도 무방하다. 직전 경험은 인간이라면 다 있는 인지적 본능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부정적인 태도와 언어는 아이들 다 가고 나서 해도 된다고 본다.
사랑하라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인류는 거대한 맘모스를 협동으로 사냥했다. 먼저 앞장 서서 싸운 이유는 사랑이었다.
뇌가 인식하게해서 우린 지금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있는거다. 그러나 어느 날 사랑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먼 미래가 올 거다. 그러니 사랑하라.
난 보육교사 였었다. 우리 어른들도 확실하지 않는 것은 불안하다. 애들도 마찬가지다. 보육할 때 확실하게 애들에게 안 될 것과 그래도 될 것을 구분하자, 내겐 첫째 위험한 행동, 둘째 때리는 행동이다. 다른 건 무슨 이유로 이런 행동을 할까? 생각하고 깊게 보고 아 이래서 그랬구나 매번 깨달음을 얻는다. 마치 한권의 책을 읽는거와 같다. 위험한 행동과 때리지만 않으면 선생님은 뭐하고 하지 않고, 상호작용 통한다. 예를 들어 "아~ 00이 00하고 싶었구나~" 또는 옹알이와 말을 항상 따라 말해준다. 무슨 행동을 하면 우리 00이 뭐뭐 하고 있네~ 칭찬도 계속한다. 상호작용을 계속한다. 그러다 보니 아닌건 상호작용이 없고, 단호하여 확실하게 아닌건 아니라고 아이는 배운다. 아이는 조금씩 위험한 행동과 때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교사는 아이 의도를 파악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리를 써야 하는 존재다. 아이는 이유없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미리 알아야 한다. 때리는 행동이라도 아이 의도가 그저 만지려고 하다가 생긴 거라면 소근소근 "살살~ 살살~" 말하며 모방하게끔 살살 만져준다. 그런 유도리도 교사에겐 필요하다. 애들한테도 쓰잘때기 없는 잔소리하면 더 말 안듣는 듯이 교사도 그렇다. 교사에게 요구 할 소리를 골라서 넘어갈 건 넘어가고 아닌건 아니다라고 얘기해 보면 서로가 원만한 원 생활이 가능하다고 본다. 교사 기분이 좋아야 머리회전이 빠르게 아이에게 기분이 조금이라도 가지 않는다는 걸 원장도 명심해야 한다. 많이 고마워하고 많이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하고 들으면 의미있는 삶이 된다. 직장이 권태롭지 않도록 습관을 들이자, 내안에서 의미를 찾으면 일은 재밌고 시간은 빨리 가고 일의 효능이 올라간다.
이것은 아이를 통한 우울한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제안이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실제로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측면이다. 그들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을 표현하면 그들이 자신 말을 듣고 정당하다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민감하게 각 상황에 접근하고 가정이나 일반화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에 대한 각 사람의 경험은 고유하며, 그들의 특정 관심사와 어려움을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 하다. 감정 코치가 되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고 자신의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동 및 보육에 대한 귀하의 요점과 관련하여 아동이 이해되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안전하고 지원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울증 환자와 비슷하게 중요하다. 그들의 의도를 관찰하고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교사는 어린이의 행동을 안내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장려할 수 있다. 원하는 행동에 대한 격려와 칭찬은 긍정적인 습관을 강화하고 위험하거나 해로운 행동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에서 의미와 성취감을 찾는 것은 실제로 보다 즐겁고 효과적인 업무 환경에 기여할 수 있습다. 동료의 노력을 인정하고 감사를 표현하면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반적인 업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나의 제안은 다양한 맥락에서 공감, 이해 및 명확한 의사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울증도 이러한다. 이러한 원칙은 관계를 강화하고 웰빙을 촉진하며 보다 조화롭고 지원적인 환경에 기여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론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라.
우울증에 대한 모든 사람의 경험은 독특하며 환자의 개별 요구에 맞게 지원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이 친구나 가족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은 그저 사명감이다. 다음은 우울증이 있는 환자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이다.
1. 자신을 교육해라: 우울증, 증상 및 치료 옵션에 대해 먼저 배운다. 이렇게 하면 환자가 겪고 있는 일과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공감하기: 환자의 입장이 되어 환자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 그들의 감정을 확인하고 우울증이 실제적이고 어려운 경험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어라.
3. 좋은 경청자가 되어라: 환자가 판단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허용하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과 걱정을 마음을 열고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하고 비판단적인 공간을 만들어라.
지원 제공: 환자에게 당신이 그들을 위해 있고 지원을 제공할 의향이 있음을 알려라. 그들이 치료나 상담과 같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편안하다고 느끼면 동행하겠다고 제안해라.
4. 추측하지 않기: 우울증에 대한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라. 친구가 겪고 있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하지 마시고 대신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그들을 지원해라.
5. 인내심을 가져라: 우울증에서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모든 사람의 여정은 다르다. 친구에게 인내심을 갖고 친구의 진행 상황이 선형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하라. 치유 과정 전반에 걸쳐 지원과 격려를 제공하라.
6. 자기 관리 장려: 친구에게 충분한 수면, 잘 먹기, 운동, 좋아하는 활동 참여와 같은 자기 관리 활동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동료애와 동기 부여를 제공하기 위해 이러한 활동에 함께 참여하겠다고 제안하라.
7. 조언을 하거나 요구하지 않기: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청하지 않은 조언을 하거나 친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요구하지 마라. 대신 경청하고 지지하는 존재가 되는 데 집중하라.
8.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격려: 친구의 우울증이 심각하거나 지속적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격려하라. 그들이 자원을 찾거나, 약속을 잡거나, 치료 세션에 동행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라.
9. 환자보다 자신이 우선이다.: 우울증이 있는 환자를 지원하는 것은 힘들고 감정적으로 고갈될 수 있다. 자신의 컨디션을 우선시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친구, 가족 또는 지원 그룹의 지원을 구해라.
10. 환자 우울증을 자신에게 오지 않도록 해라: 우울증은 어쩌면 전염이 될 수 있다. 이론을 터득하고, 우울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같이 힘들고 같이 우울증에 걸리면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우울증에 걸릴 거 같다면 본인을 우선시해라.
11. 무엇보다 당신이 중요하다.: 이론으로 대화 방법이나 공감하는 방법을 터득해라. 무엇보다 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감정이 나에게 와선 안 된다. 우선, 우울증은 심리적인 문제이므로 해당, 상황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중요하다. 당신이 환자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각 개인 마다 다양한 형태와 증상을 보일 수 있으므로, 각 개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우울증이란 이론 이해하고 나에게 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2. 환자와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감정과 경험에 대해 개방적으로 듣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같이 우울해지는 것은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
13. 환자의 복원력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건강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강요하지 말고, 그들의 페이스에 맞게 천천히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14.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환자가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보이거나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정신 건강 전문가나 상담사에게 연락하여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15. 당신 스스로도 지치지 않도록 자신의 건강과 복원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환자를 돕기 위해 지칠 경우,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피로를 경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어른아이,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나
어렸을 때 부터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는 그것이 나중에 이자가 큰 사채가 되어 어른아이가 되어 마음은 아이인 어른이 된다. 우울증은 그렇게 찾아온다. 그 부채를 갚아야 한다. 아이가 조용하디고 눈치 본디거 아이가 어른스럽다고 좋아하지 말라. 그만큼 어른이 아이에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모방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성장하고 성장통을 겪어야 비로써 아이이며 어른일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글이란 내가 살고 있는 존재의의다 그것을 부정 받았을 때 나는 죽음을 선택했다. 글을 쓰게 되면 내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내가 어떤 감정인지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글로 인해 내 유년기를 버틸 수 있었다. “잘한 거야.” 어쩌면 인간이란 생물에게 도움되는 일을 한 거야. 나 못됐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막히니까 쇼핑으로 나오는 것. 내가 뭘 갖고 싶은지 모르니까 잠깐의 쾌락으로 내가 있으려 하는 것.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찾아야 한다. 타인이 요구하고 남들이 보는 목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 글 쓰다 죽어버리는 것, 목표가 보이는 난 상쾌해졌다. 이 목표로 결정한 이유 삶은 고통이고 생각은 나의 고통이지만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나의 쾌락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니깐
우울증 환자에게 본인이 원하면 했으면 하는 걸 요구하지 마라. 우울증 환자에겐 기력이 없다. 일단 무얼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라 엄청난 성취감을 겪고 우울증 환자 본인에게 맞는 보상을 스스로에게 주어라, 우울증은 고질병이다 계속 멘탈케어 해야한다. 보상과 성취감은 우울증환자에게 중요하다. 엄청난 성취감을 겪고 환자에게 보상을 주자 근데 생각 보다, 그게 어렵다.
어린 시절에서 성인기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된 투쟁과 도전과 그것이 어떻게 우울증에 기여 할 수 있는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우울증 환자 중 몇 안된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의 상실은 탐색하기 어려웠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위안과 자기 성찰의 원천이었다. 글쓰기가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고 어쩌면 인류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기여 할 수도 있다는 점은, 자신에게 칭찬할 만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불확실하고 개인적인 성취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흔한 경험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욕망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열망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우울증 환자,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열정과 목표를 발견하는 것은 여정이 될 수 있지만 투자할 가치가 있다. 우울증은 실제로 지속적인 정신 치료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다. 아무리 작은 성과라도 축하하고 자신에게 보상하는 것은 우울증을 다루는 개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울할 때 성취감을 경험하고 자신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사회가 이렇고, 우울증 환자는 이미 무기력하다. 이러한 경우 우울증의 복잡성을 탐색하는 데 지침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 건강 전문가의 지원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대처 전략을 개발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며 인생에서 만족과 기쁨의 원천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여정을 통해 당신을 지원할 수 있는 자원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쟤는 남들을 위해 불편해하는 걸 좋아해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심리학이나 의학 문헌에서 널리 인식되거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구 자체에 따라 개인이 지나치게 승인을 구하고, 갈등을 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인식되거나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우선시하는 행동 패턴을 가리킬 수 있다. 이 패턴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필요와 경계를 희생하면서 호감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은 자기주장과 진정한 감정과 의견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나 검증의 필요성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착한 아이 증후군'은 관계의 불균형, 개인의 욕구 억제, 자립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행동 패턴과 관련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되면 정신 건강 전문가의 지원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고, 더 건전한 의사소통 및 경계 설정 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보다 균형 있고 진정한 방법을 촉진하도록 도울 수 있도록 주변에서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남들에게 항상 '그럴 수도 있지' 마인드가 열려있다. 내 트라우마만 건들지만 않으면 말이다.
이런 마인드는 어느 날 내게 큰 짐으로 돌아오지만,
인간관계가 넓어진다. 그러나 우울증이 있던 나는 남몰래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