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도
고추는 한국인의 식탁을 상징하는 재료지만, 본래 한반도의 산물이 아니다. 기원은 남아메리카, 특히 멕시코와 안데스 지역이다. 수천 년 전부터 재배되던 이 식물은 15세기 말 대항해 시대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갔고, 곧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오늘날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불리는 전 지구적 교류 속에서 고추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동 품목 중 하나였다.
콜럼버스 교환(Columbian Exchange)이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을 계기로 구대륙(유럽·아시아·아프리카)과 신대륙(아메리카) 사이에 이루어진 생물·문화·기술의 광범위한 교류를 말한다.
고추의 매운맛은 사실 미각이 아니라 통증이다. 캡사이신 성분이 통증 수용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는 이 불편한 자극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으로 전환시켰다. 고추는 인간이 가진 독특한 능력—고통을 의미화하고 향유하는 능력—을 증명한다. 매운맛은 단순한 불쾌함이 아니라 각성을 일으키는 체험, 삶을 자극하는 장치가 되었다.
고추가 조선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무렵이다. 전란과 기근으로 불안정하던 사회에서 고추는 보존성과 항균성을 지닌 새로운 식재료로 주목받았다. 김치가 붉게 물든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불과 한 세기 만에 고추는 조선인의 밥상을 지배했고, 오늘날에는 한국인의 정체성 그 자체로 자리매김했다.
고추는 중남미 원산의 작물이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서 고추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약재이자 제례용 향신료였다.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고추는 유럽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낯선 장식용 식물로 여겨졌으나, 곧 그 매운맛이 후추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고추의 확산은 “콜럼버스 교환”의 대표적 사례였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고추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전하면서, 불과 한 세기 만에 세계 각지의 식문화에 스며들었다.
인도: 커리에 매운맛을 더해 인도 음식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 명·청 시대 사천과 호남 지방에 전해져 ‘마라(麻辣)’의 세계를 열었다.
한국: 임진왜란 전후 일본을 거쳐 들어와 김치와 한식 전반을 바꾼 핵심 재료가 되었다.
헝가리: 파프리카로 정착하며 유럽 요리에 새로운 풍미를 더했다.
이처럼 고추는 10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향신료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세계화된 작물이 되었다.
고추(Capsicum 속)에는 수천 가지 품종이 있으며, 달고 순한 파프리카류에서부터 극도로 매운 품종까지 다양하다.
중남미: 할라피뇨, 하바네로, 세라노 등 아즈텍 전통 품종
아시아: 인도의 부트 졸로키아(고스트 페퍼), 중국 사천 고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지역 특산종
유럽: 헝가리 파프리카, 스페인의 피키요·데 에스페렛
오늘날 세계 최대 생산국은 중국, 인도, 멕시코이며, 한국·터키·나이지리아도 중요한 생산지로 꼽힌다.
1912년,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은 고추의 매운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스코빌 척도(Scoville Heat Unit, SHU)다. 특정 고추를 설탕물에 섞어, 혀로 매운맛을 거의 느낄 수 없을 때까지 희석하는 비율로 수치를 매겼다.
숫자가 오를수록 혀는 불타고, 눈은 눈물이 차고,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스코빌 척도는 고통의 단위를 수학으로 환산한 기록이다.
효능: 신진대사 촉진, 스트레스 완화, 엔도르핀 분비로 기분 상승
매운정도:
피망: 0 SHU (전혀 맵지 않다)
청양고추: 약 5만 SHU
태국 고추: 약 10만 SHU
멕시코의 하바네로: 30만 SHU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캐롤라이나 리퍼: 200만 SHU 이상
멕시코의 고추는 종류가 100여 가지가 넘는다. 하바네로, 할라페뇨, 세라노—각각 매운맛뿐 아니라 향과 색, 요리에 주는 뉘앙스가 다르다. 태국 고추는 작지만 강렬하여, 국물에 한두 개만 들어가도 혀끝을 마비시킨다. 중국의 사천 지역 고추는 매운맛뿐 아니라 마비감을 주는 산초(花椒)와 결합해, ‘마라(麻辣)’라는 독특한 체험을 만들어낸다.
고추는 단순히 매운 정도의 차이를 넘어, 지역 문화의 기질을 드러낸다. 사막, 열대우림, 고산지대—환경이 다르면 불꽃도 다른 모양으로 타오른다.
일본 요리는 대체로 간장, 된장, 다시(육수) 같은 감칠맛 중심으로 발전했다. 매운맛은 주변부에 머물렀다. 식문화가 깊은 감칠맛의 조화에 맞춰져 있었기에, 극단적인 매운맛을 즐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매운 것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태국처럼 “매운맛을 즐기는 문화”가 집단적으로 형성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다시 말해 유전적 차이보다는 문화적 훈련의 차이가 크다.
매운맛을 잘 먹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유전적 차이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캡사이신에 반응하는 수용체(통증 수용체 TRPV1)의 민감도가 낮아 매운맛을 덜 느낀다. 이들은 마치 불을 피해 다니지 않는 듯 태연하게 매운 음식을 먹는다.
또한 매운맛 선호에는 성별도 흥미로운 변수가 된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 중 일부는 강렬한 매운맛을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땀을 흘리며,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끝내 그 맛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수퍼우먼”이기 때문이 아니라, 매운맛을 통해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고통을 극복한 쾌감을 강하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혀끝의 불꽃은 결국 위장으로 내려간다. 그렇다면 매운맛은 몸속에 해롭지 않은가. 의학적으로 적당한 매운맛은 소화를 돕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그러나 과도한 매운 음식은 위점막을 자극해 속쓰림, 위염을 악화시킬 수 있다.
결국 매운맛은 용량의 문제다. 소량은 활력이고, 과량은 해로운 독이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매운맛은 인간에게 “한계를 즐기되, 그 한계를 넘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다.
칼로리: 100g 기준 약 40 kcal
비타민 C: 레몬보다 풍부
기능: 신진대사 촉진, 땀 분비 증가, 스트레스 완화 효과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은 단맛과 짠맛이다. 통증은 회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매운맛을 찾아 나서고, 돈을 내고, 심지어 땀 흘리며 즐거움을 느끼는가.
고추는 인간이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생존의 필요를 넘어 감각의 극한을 탐험하며,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린다.
작은 씨앗 하나가 문명의 미각 지형을 뒤흔들었고, 한 민족의 기질을 바꾸었다. 고추는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고통을 즐거움으로 전환하는 인간 능력의 상징이며, 세계사적 교류의 증거다.
“매운맛은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찾아낸 문화적 도전이다.”
Capsicum annuum은 가장 널리 재배되는 종으로 청양고추, 파프리카, 할라피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원산지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이다.
Capsicum frutescens는 태국고추와 타바스코소스의 원료가 되는 고추가 속한다.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이다.
Capsicum chinense는 하바네로, 고스트 페퍼, 캐롤라이나 리퍼처럼 극도로 매운 품종이 속한다. 원산지는 아마존 분지와 카리브 지역이다.
Capsicum baccatum은 주로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 소비되는 고추이다. 원산지는 볼리비아와 페루이다.
Capsicum pubescens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특수한 종으로, 잎에 털이 있고 열매색이 검은 것이 특징이다. 원산지는 볼리비아 고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