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도
육두구(Nutmeg)는 고소하면서 달콤한 향으로 사랑받지만, 그 씨앗은 한때 제국들이 피로 쟁취하려 했던 보물이었다. 영어 이름인 '넛메그(nutmeg)'는 '사향 냄새가 나는 호두'라는 뜻에서 왔으며 이를 한자로 표시한 이름이 육두구(肉荳蔲)이다. 작은 씨앗 속에 담긴 향은 음식의 풍미를 넘어, 세계를 뒤흔든 식민지 쟁탈전의 상징이었다.
육두구는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의 반다 군도에서 자라는 육두구나무 열매의 씨앗이다. 열매를 갈라내면 씨앗(육두구)과 그 씨앗을 감싸는 붉은 가종피(메이스, mace)가 드러난다. 현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약재·향료·보존재로 사용했으며, 독특한 향과 효능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중세 아랍 상인들이 육두구를 유럽에 전했고, 그 값은 금과 맞먹을 정도였다. 유럽인들에게 육두구는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병을 물리치고 부를 상징하는 마법 같은 씨앗이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이 인도양 무역을 개척하며 육두구를 유럽으로 들여왔지만, 곧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반다 제도의 무역을 장악했다. 네덜란드는 독점을 지키기 위해 현지 주민들을 학살하고, 섬마다 육두구나무를 철저히 관리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육두구 무역을 두고 충돌했다. 1667년 브레다 조약에서 네덜란드는 육두구의 산지인 반다 제도를 확보하는 대신, 영국에 북미의 작은 섬 ‘맨해튼’을 넘겼다. 한 줌의 씨앗이 뉴욕의 역사를 바꾼 셈이다.
육두구의 맛은 달콤함과 쌉싸래함, 은은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이 다층적 풍미는 마치 욕망의 양면을 닮아 있다. 치유와 향유, 부와 폭력, 따뜻함과 탐욕. 육두구는 묻는다.
“작은 씨앗 하나에 인간은 왜 이토록 집착하는가?”
오늘날 여행자는 인도네시아 반다 제도의 육두구 농장에서 붉은 가종피와 갈색 씨앗을 직접 볼 수 있다. 잔지바르와 그레나다 같은 열대 섬에서도 육두구는 주요 수출품이며, 현지에서는 향신료 투어를 통해 씨앗을 직접 갈아보는 체험이 제공된다.
유럽에서는 겨울철 디저트와 음료에서 육두구 향이 빠지지 않는다. 에그노그와 베샤멜 소스, 감자 요리 위에 뿌려지는 고소한 가루는 여행자의 입맛을 따뜻하게 감싼다.
육두구의 향은 처음엔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곧 깊고 따뜻한 기운으로 혀끝을 감싼다. 은밀하고도 포근한 이 향은 음식 전체에 따스한 뉘앙스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고기·소스·디저트 어디에도 어울리는, 다재다능한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재료: 육두구 씨앗(분말), 메이스(씨앗을 감싼 붉은 껍질)
활용: 베샤멜 소스, 감자·수프·소시지, 케이크·쿠키·에그노그
영양: 항산화 작용, 소화 촉진, 항염 효과. 다만 과량 섭취 시 환각과 독성을 일으킬 수 있음
칼로리: 1작은술(약 2g) 기준 12 kcal
육두구는 반드시 소량만 갈아 넣는다. 과하면 쓴맛과 독성이 강해진다.
크림 소스와 유제품에 넣으면 은근한 고소함을 배가한다.
메이스는 색과 향이 부드러워 디저트에 더 잘 어울린다.
육두구는 한때 세계지도를 바꾸고 제국의 탐욕을 불러온 씨앗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서는 따뜻한 향을 남기지만, 그 배경에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깔려 있다.
육두구는 말한다.
“달콤한 향 뒤에 감춰진 그림자를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