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도
후무스(Hummus,Houmous, حُمُّص)는 한번 맛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음식이다. 곡식도 아니고, 고기도 아닌,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소박한 크림. 그러나 이 소박한 음식은 수천 년 동안 지중해와 중동의 밥상에서 생존과 공동체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후무스의 기원은 중동 전역에 퍼져 있어, 어느 한 나라의 전유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병아리콩과 참깨, 올리브유, 레몬즙, 마늘을 섞어 만든 형태는 고대 이집트와 레반트 지역 기록에 이미 등장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전역으로 퍼져 각 지방의 변주가 생겼고, 오늘날 이스라엘·레바논·시리아·팔레스타인 모두가 자기네 음식이라 주장한다.
후무스의 질감은 곱고 부드럽지만, 색은 흙빛이다. 곡식처럼 밥이 되지 못하고, 고기처럼 힘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후무스는 독특하다. 부드러운 크림 속에는 겸손과 절제가 담겨 있다. 흙빛의 음식이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과 지방을 고루 제공하며 가난과 풍요의 경계를 넘나든다.
후무스는 개인의 접시보다는 공동의 그릇에서 빵을 찍어 먹는 방식으로 즐겨진다. 모로코의 호브즈, 레반트의 피타, 터키의 라바쉬 같은 빵이 함께 곁들여진다. 하나의 그릇을 가운데 두고 여러 사람이 함께 찍어 먹는 순간,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공동체를 확인하는 의례가 된다.
중동과 지중해를 여행하는 이라면 후무스를 피하기가 오히려 어렵다. 레바논의 골목 식당, 예루살렘의 시장, 터키의 메제(meze) 상차림, 모로코의 카페 어디에서든 쉽게 만난다. 아침 식사 뷔페에도, 길거리 작은 식당의 기본 반찬으로도 등장해, 여행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접한다.
후무스의 첫맛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병아리콩의 은근한 담백함 위에 참깨 페이스트 타히니가 견과류 같은 깊이를 더한다. 레몬즙의 산미가 느끼함을 잡아주고, 마늘과 올리브유가 풍미를 감싼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히 손이 가는 맛이다. 빵 한 조각과 함께라면 한 끼가 완성된다.
20세기 후반 이민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후무스는 서구권에서도 ‘건강식’으로 자리 잡았다. 병아리콩의 단백질, 올리브유의 불포화지방, 레몬과 마늘의 항산화 성분은 후무스를 단순한 민속 요리에서 현대인의 웰빙 푸드로 탈바꿈시켰다. 오늘날 뉴욕, 파리, 런던의 마켓에서도 쉽게 후무스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살수 있다.
재료: 병아리콩(불린 것) 200g, 타히니(참깨 페이스트) 3큰술, 올리브유 2큰술, 레몬즙 1큰술, 마늘 1쪽, 소금 약간
조리: 병아리콩을 삶아 곱게 으깬 뒤, 타히니·올리브유·레몬즙·마늘을 넣고 블렌더에 간다. 원하는 농도에 맞추어 올리브유를 더할 수 있다.
응용: 피타나 호브즈 같은 빵에 찍어 먹거나, 채소 스틱·고기 요리에 곁들여도 좋다.
칼로리: 100g 기준 약 170 kcal
후무스는 소박하고 조용한 음식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겸손·공동체·지속성이라는 세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병아리콩 몇 줌이 수천 년 동안 문명을 지탱해왔듯, 삶의 본질은 화려한 요리에 있지 않고, 흙빛 크림처럼 은근한 지속성에 있다.
후무스는 말한다.
“풍요란 가짓수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그릇 속에서 태어난다.”
후무스는 흙빛이지만, 그 속에 인류의 빛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