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나몬(계피), 달콤한 껍질에 숨은 권력의 향기

요리의 도

by 나일주

시나몬(Cinnamon)

- 달콤한 껍질에 숨은 권력의 향기


시나몬(Cinnamon)은 따뜻하고 달콤한 향으로 널리 알려진 향신료다. 그러나 이 은은한 향은 단순한 맛의 즐거움을 넘어, 수천 년 동안 종교 의식과 무역로, 제국의 욕망을 지배해 왔다. 시나몬은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고 신과 소통하려 했던 상징이자, 권력과 부의 표식이었다.




신들의 나무에서 온 향

시나몬은 스리랑카와 인도 남부, 동남아의 열대 숲에서 자라는 녹나무과(Cinnamomum 속)의 나무 껍질에서 얻어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보존하고 향을 바치기 위한 신성한 재료로 쓰였으며, 성서에도 “거룩한 향유”의 성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인들에게 시나몬은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비로운 나무였다.


시나몬이 그린 무역의 길

중세 이전, 시나몬은 아라비아 상인들의 비밀스러운 무역망을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 상인들은 시나몬의 산지를 철저히 숨기고, 때로는 “전설 속 새가 둥지에 모아오는 것”이라고 꾸며내며 가격을 높였다. 로마 제국과 중세 유럽에서 시나몬은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귀한 재료였고, 종교 의식과 왕실 연회에서 빠질 수 없는 향신료였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포르투갈은 인도양 항로를 개척해 스리랑카의 시나몬 무역을 독점했다. 이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7세기 무력을 앞세워 스리랑카를 장악하고, 시나몬을 유럽으로 대량 공급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시나몬은 결국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세계 속의 시나몬 ― 품종과 확산의 역사


두 가지 얼굴: 카시아(Cassia)와 실론(Ceylon)

시나몬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카시아 시나몬(Cassia Cinnamon, Cinnamomum cassia)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며, 향과 맛이 강하다. 약간 매운 맛이 돌고, 짙은 갈색을 띤다. 원산지는 중국 남부·미얀마·인도 북동부이며, 오늘날에는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대량으로 생산된다. 비교적 저렴하고 유통량이 많아 우리가 흔히 ‘시나몬’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카시아 계열이다.


카시아 시나몬(Cassia Cinnamon)의 이름은 그 자체가 흥미로운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다. 카시아(Cassia)라는 말은 그리스어 kassia 또는 kasi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다시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qəṣīʿāh(קְצִיעָה, 케치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의미는 “껍질을 벗긴 것(stripped bark)”으로, 나무 껍질을 벗겨 향신료로 쓰는 특징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이름이다. 고대 이집트와 히브리 전통에서는 케치아(Qetsiah)라는 이름으로 향유와 제사에 기록되었고,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Kassia 또는 Casia라 불리며 때로는 실론 시나몬과 구별되지 않고 함께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 무역이 발달하고 스리랑카산 실론 시나몬이 ‘진짜 계피’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한 명칭으로 ‘카시아 시나몬’이라는 이름이 확고히 정착되었다. 결국 카시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케치아에서 시작해 그리스어 kassia, 라틴어 casia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으며, 껍질을 벗겨 쓰는 향나무라는 본질적 속성을 이름 속에 간직한 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론 시나몬(Ceylon Cinnamon, Cinnamomum verum)
흔히 ‘진짜 시나몬(True Cinnamon)’이라 불린다. 스리랑카 고유 품종으로, 껍질이 얇고 여러 겹이 말린 형태이며 부드러운 황갈색을 띤다. 향은 섬세하고 달콤하며, 쿠마린 함량이 낮아 장기 섭취에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고급 시장에서 특히 선호된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토종 품종


인도네시아 시나몬(Indonesian Cinnamon, Cinnamomum burmannii)
수마트라·자바·술라웨시 등지에서 자생한다. 두껍고 강한 향을 지녀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다. 미국 등 대량 소비국에서 많이 쓰인다.


베트남 시나몬(Vietnamese Cinnamon, Cinnamomum loureiroi, 현지명 ‘Quế’)
매운맛과 진한 향이 특징이다. 강력한 풍미 덕분에 베트남 요리와 전통 약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한 향의 시나몬”으로 평가된다.


스리랑카 ― 진짜 시나몬의 고향


오늘날 전 세계 실론 시나몬 생산의 80~90%를 스리랑카가 담당한다. 유럽과 멕시코 등 고급 시장에서 특히 선호되며, 그 부드러운 향 덕분에 ‘진짜 시나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여행자가 만나는 시나몬

오늘날 여행자는 스리랑카 캔디(Kandy)의 시나몬 농장에서 직접 껍질을 벗겨보거나, 인도네시아에서 전통 방식으로 말리는 시나몬을 체험할 수 있다. 또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시나몬가루가 든 글뤼바인(Glühwein, 따뜻한 와인) 향이 겨울 거리를 물들인다. 세계 어디서든, 시나몬은 음식과 문화 속에서 달콤한 기억을 남긴다.



혀끝에 남는 따뜻한 불꽃

시나몬의 향은 불처럼 확 타오르지 않는다. 대신 은근하게 스며들어 혀끝을 감싸고, 오래도록 따뜻한 기운을 남긴다. 이 잔잔한 여운 덕분에 시나몬은 빵·과자·음료·커리 등 수많은 음식에 포근한 깊이를 더한다.



시나몬의 활용과 영양 실론 시나몬(Ceylon): 섬세하고 달콤한 향, 고급 디저트와 음료에 적합

카시아 시나몬(Cassia): 강하고 매운 향, 육류·진한 소스·커리에 적합

활용- 디저트(시나몬 롤·애플파이), 음료(차이·글뤼바인), 고기 요리(중동·인도 커리), 전통 약재

영양-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고, 혈당 조절 및 항염 효과가 알려져 있음

칼로리- 1작은술(약 2.6g) 기준 약 6 kcal


요리의 키포인트

분말보다는 스틱 형태를 우려내면 향이 오래 유지된다. 실론은 디저트와 음료에, 카시아는 고기 요리에 잘 어울린다. 설탕과 만나면 달콤함이 배가되고, 커피·초콜릿과는 깊은 풍미를 낸다.



향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

시나몬의 맛은 달콤하면서도 맵고, 따뜻하면서도 쌉싸래하다. 서로 상반된 맛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 복합적 맛은 인간 삶의 양면성을 떠올리게 한다. 풍요 속 불안, 달콤함 속 쌉싸래한 현실. 시나몬은 우리에게 묻는다.
“풍요로움이란 과연 단순히 달콤함에 있는가, 아니면 그 속의 쓴맛까지 껴안을 때 완성되는가?”



결론 ― 달콤한 껍질의 이면

시나몬은 제국의 항로를 바꾸고,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였으며, 오늘도 우리의 식탁을 따뜻하게 감싼다. 작은 껍질 조각 속에는 달콤함과 쌉싸래함, 풍요와 권력,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응축되어 있다.

시나몬은 말한다.


“진정한 풍미는 단맛과 쓴맛이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cinnamon_woman_oilpainting.jpg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9화크레페, 얇은 종이에 싼 일상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