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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 얇은 종이에 싼 일상의 축제

요리의 도

by 나일주

크레페, 얇은 종이에 싼 일상의 축제


크레페는 프랑스 길거리에서 가장 먼저 여행자를 유혹하는 향기이다. 얇디얇은 반죽이 철판 위에서 빠르게 펼쳐지고, 설탕·버터·잼·초콜릿이 그 위를 채운다. 단순한 간식처럼 보이지만, 이 얇은 원반에는 프랑스의 역사와 일상, 그리고 축제의 문화가 담겨 있다.




얇은 빵, 켈트인의 전통에서

크레페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역에서 기원했다. 원래는 메밀가루로 만든 소박한 전(餠) 같은 음식이었다. 중세 시대, 켈트인 농민들은 메밀을 재배해 얇은 부침을 만들어 먹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크레페로 이어졌다. 이후 밀가루가 널리 보급되면서, 달콤한 디저트부터 짭짤한 식사용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혁명 이후, 모두의 음식이 되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은 크레페의 운명을 바꾸었다. 귀족의 성대한 연회 음식이 아니라, 누구나 길거리에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얇게 펼쳐 빠르게 구워내고 값싸게 팔 수 있는 크레페는, 혁명 이후 민주적 음식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까지 프랑스 거리에서 크레페 노점이 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얇음 속의 풍요

크레페는 얇고 단순하다. 그러나 그 얇음은 결핍이 아니라 풍요의 은유이다. 얇은 종이 같은 표면에 무엇을 얹느냐에 따라 무한히 변주된다. 초콜릿을 바르면 달콤한 간식이 되고, 햄과 치즈를 넣으면 든든한 식사가 된다. 얇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다양성, 그것이 크레페의 철학이다.


여행자가 만나는 크레페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루브르 근처의 노점, 프랑스 남부의 축제 거리. 여행자는 어디서든 크레페를 만난다. 큰 철판 위에서 반죽이 돌며 펴지고, 얇은 나무 주걱이 그것을 매끄럽게 다듬는 광경은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즉석에서 설탕을 뿌려 말아 주거나, 누텔라·바나나를 얹은 크레페는 세계 여행자들의 공통된 추억이다.


크레페의 맛, 얇음의 미학

크레페는 바삭하지 않고 부드럽다. 얇은 종잇장 같은 질감이 속재료와 어우러지며, 씹는 순간마다 다른 맛을 보여준다. 그 부드러움 덕분에 한 장의 크레페는 ‘캔버스 같은 요리’, 어떤 색으로든 칠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크레페의 조리기술과 영양

재료: 밀가루 100g, 우유 200ml, 달걀 2개, 버터 1큰술, 소금 약간
조리: 모든 재료를 섞어 반죽을 만든 뒤, 팬에 얇게 펴 굽는다. 양면을 익힌 뒤 원하는 속재료를 올려 접거나 말아낸다.
응용: 설탕·버터·초콜릿·과일 등 단맛 재료, 햄·치즈·달걀 등 짭짤한 재료 모두 가능하다.
칼로리: 1장(약 100g) 기준 약 220 kcal




결론 ― 얇음이 주는 깊이

크레페는 얇아서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얇음 덕분에 무한히 변주되고, 누구에게나 맞는 요리가 된다. 혁명 이후 프랑스가 길거리에서 평등하게 나누어 먹은 빵처럼, 크레페는 단순함 속에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품고 있다.


크레페는 말한다. “단순함 속에야말로 가장 큰 자유가 숨어 있다.”


얇은 한 장의 반죽은, 삶을 무겁게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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