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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얼리 May 19. 2021

 "남의 살이 가장 맛있지 않냐"

안녕하세요. 비건입니다.

조개전골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먹고 집에 왔다. 책상 위에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놓여 있다. 검정 토끼가 큰 귀를 흔들며 '무사히 왔네' 인사하는 듯했다.


피터 싱어 『동물해방』


  

“조개는 먹어?”

‘당연히 안 먹죠, 비건인데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네. 그래도 회식 때는 비건 음식 찾으려면 힘드니까….”

라고 대답했다. 머리보다 입이 빠르다. 나는 사회화가 완벽하게 된 동물이다. 요새 음식 이야기하면 말끝을 흐리는 게 습관이 됐다. 특히 이날은 ‘고기파’인 선배가 나를 배려한 거라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널 위한 만찬이야’ 전하고 싶은 듯 자신의 배려에 한껏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다. 처음 비건인 걸 말했을 때도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나는 실천 못하지만 너는 배려해주겠다" 말했다.


‘고기를 안 좋아합니다’라고 하면 두 가지 반응이 온다.

“왜?”

혹은

“아니, 왜?”     

전자는 궁금증이고, 후자는 ‘고기가 그렇게 맛있는데’라는 전제가 깔린 궁금증이다.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그들은 한 번 더 묻는다.

"그럼 베지테리언이야?" 혹은 "채식주의자야?"

완벽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대충 "그렇다"고 대답한다. 비건(Vegan)은 동물성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우유나 해산물도 안 먹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넘어 동물을 착취하는 팜유*나 아보카도*도 먹지 않고, 동물을 죽여 만든 가죽이나 털 달린 제품도 사지 않는다. 나아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새 제품보다는 중고 제품을 이용하는 등 환경 친화적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도 반응이 두 갈래다.

“너 방금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지 않았어?"

혹은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못하겠는데.”


전자는 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받는 질문이다. 모두가 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릴 때,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을 때 나도 그 중 한 명이 된다. 이 점은 정말 부끄럽다. 외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직업 특성상 빨리 먹어야 할 때가 많은데, 5분컷을 해야 할 때 비건으로 먹기 위해서는 식당을 찾는 데만 5분이 걸려 편의점 간편식(비건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으로 때운다. 같이 먹는 사람과 한 발씩 배려(?)하느라 고기가 안 올라간 피자(소의 젖 속 단백질로 만든 '치즈'로 만든다)나 면류(국물은 거의 동물 뼈를 우린 육수. 고기 고명은 빼야 한다)로 합리화할 때도 잦다.


그렇기에 후자가 성립될 수 없다. 다들 '비건'이라고 하면 출발지점을 너무 높게 잡는다. 마치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고 모든 것에 동정심이 넘치며, 환경에 대해 다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같은 비건도 있다. '비건지향'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지향'이라고 하면 "지향이니까 이 정도는 하지 뭐"라고 스스로 쉽게 합리화할까봐 보통 비건이라고 소개한다. 한 사람이라도, 한 끼라도 동물성을 줄여나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합리화 빈도도 줄여나가고 있다.


다음 대화는 "언제, 어떻게 비건을 시작했어?"로 이어진다. 하도 많은 질문을 들어서 머릿속에 요약이 돼있다. <주변에 비건이 많아 원래 관심이 있었는데 6개월 전, '비건 직장인의 고충'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준비하다, 공장식 축산을 고발하는 영상을 보고 '비건 실천하자' 결심하게 됐다> 특별할 것 없는 계기다. 누군가는 무릎 위에 반려고양이를 앉히고 치킨을 먹다 "내가 얘(고양이)는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얘(닭)는 먹고 있지?"라 생각해 시작하고, 또 다른 사람은 동물성 식품이 자신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고 시작한다.


우유, 치즈, 계란도 안 먹으면 대체 뭘 먹고 사냐는 질문도 많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채소'만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채소뿐 아니라 통곡류, 콩류, 견과류, 해조류, 과일류 등을 골고루 먹는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도 "나는 고기를 못 끊어"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재미 없는 식단이다. 하지만 비건을 실천하다보면 식물성 재료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덕분에 먹는 재미가 더 생긴다. 논비건 친구를 비건 식당에 초대했을 때 "와, 이런 데가 많으면 나도 비건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그보다 뿌듯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선택지가 없어 자주 강제 육식을 한다.


보통 '비건 생활, 피곤하겠다' 예상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는 맞다. 다만 피곤한 이유가 먹고 싶은 고기를 못 먹어서도 아니고, 필요한 걸 살 때 동물성이 들어가있나 성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기꺼이 할 만하고 어렵지도 않다. 동물성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고, 동물성 함유 여부는 요새 어플리케이션이나 포털 검색 한 번만으로도 알기 쉽기 때문이다. 피곤함은 오히려 타인으로부터 온다.


비건에 대해 누군가 묻길래 공들여, 상대방이 도덕적 비난을 받는 것처럼 느끼지 않도록 설명했지만 "피곤하게 산다"고 반응하면 맥이 빠진다. 평소 내 걱정을 하지도 않으면서 선 넘는 우려를 표한다. 사실 '비건은 힘들어'라는 생각은 논비건의 추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뉴 선택 제한에 스트레스를 표하는 사람도 있다. "아… 찾기 힘든데. 그냥 고기 먹으면 안 돼?" '그냥 고기'가 널린 식당밖에 없어 동네 한 바퀴를 빙 돌기도 한다. 이럴 때 나를 흘겨보지 말고, 비건 메뉴 하나 없는 식당을 탓해주면 좋을 텐데.


여기까진 양반.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다 비건 종류부터 주변 비건 맛집에 대해 줄줄이 말씀드렸더니, "야, 근데 남의 살이 제일 맛있지 않냐?"며 킬킬대는 사람도 있었다. 온갖 잔혹한 답변이 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는 분명, 어떤 사람이 옆 사람을 보며 '맛있겠다'고 물어뜯었다는 사건을 접하면 "세상이 말세"라며 바로 기사를 쓰라고 시켰을 거다. 그 외 일부러 고기 한 점을 집어 눈 앞에 대고 흔들며 "이게 맛 없어 보여? 안 먹고 싶어?" 조롱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장난이었겠지만 나는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좌파' 프레임에 갇혀보기도 했다. 비건이라고 소개하면 갑자기 말을 조심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이나 환경에 관한 말뿐만이 아닌, 모든 말을 삼간다. 그러다 갑자기 "비건 앞이라 조심하게 되네"라며 "비건은 좌파 아닌가?"하 껄껄 웃어보인다. 결국 그 사람은 좌파와 친해지기 어렵다는 말을 면전에 내뱉은 뒤, 10시니까 정리해야 한다는 식당 종업원의 말에 "저기요, 10분도 못 기다려?" 반말로 성질을 내고 집으로 갔다. '좌파'와 술을 마신 게 기분이 상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 걸까.


비건이라고 해도 '채식주의자'로 이해되곤 하는데, '~주의자'라는 표현 때문인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소수 취급을 받기도 한다. 비건 관련 기사에 종종 "강요하지 말라"는 댓글이 보이는데, 사실 비건 중에 비건 실천을 강요하는 사람은 드물다(내 주변엔 없다). 오히려 '고기를 안 먹어서 되겠냐'며 육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지. 다행히 눈치를 많이 보는 나도 이제는 비건이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소비 트렌드로 비건이 떠오르며 친숙해졌기 때문일까. 편견 어린 반응들 못지 않게 배려받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번 다행이다.


글로 "나는 비건이다" 선언하기는 또 처음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늘었으니 더욱 실천에 박차를 가하겠다. 내가 글을 쓴 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 '베지테리언 누들 스프'를 먹는다. 메뉴를 고르자 "너무 좋아. 오랜만이다" 말하는, 실천을 함께 하는 소중한 친구와. 귀가하면 검정 토끼가 신나게 반겨주겠지.





*팜유(Palm Oil) : 기름야자의 열매를 짜내 만드는 100% 식물성 기름. 식품과 화장품, 세제 등 일상 생활에 쓰이는 거의 모든 제품에 활용된다. 최근에는 가공된 팜유에 트랜스지방이 들어있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건강에 해로운 기름으로 알려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팜유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을 태우는데, 이때문에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오랑우탄이 화상을 입고 있다.


*아보카도(Avocado) : 숲 속의 버터라 불리는 영양가 높은 과일. 재배조건이 까다로워 멕시코 중동부 고산지대, 미국 일부 지역과 뉴질랜드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이를 생산, 유통하고 섭취하는 과정에서 바나나보다 두 배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아보카도 열매 하나를 키우는 데 320L 물이 소요되기도 한다. 토마토는 5L만 필요하다. 재배 지역 주민들은 물 부족에 시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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