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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얼리 May 23. 2021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

철컥, 혼자입니다.

심각한 기억상실이나 병적일 정도의 부주의가 아닐까. 며칠 째 집을 비우면서 현관문을 열어두고 나왔다. 현관문이 따로 있는 단독주택 대문을 열어놓은 것도 아니다. 집집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피스텔 살면서 나처럼 문을 열어놓고 나오는 사람은, 나도 처음 봤다. 그런데 어제 또! 문이 열려있었다. ‘설마 이번에도 내가 그랬겠어?’ 숨죽이며 들어가 외친다.     


“저기요?”

“…”

“누구 있어요?”

“…”     


아무도 없다. 화장실, 침대 아래, 옷장까지 다 살폈지만 이 공간에서 나를 위협할 만한 존재는 없었다. 훔쳐갈 건 없는 집이라 없어진 물건은 없다. 미치겠다. 친절하게 내가 열어놓고 나간 거다. 얼굴 본 적도 없는 이웃에 사생활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 같아 창피했다. 함께 층을 쓰는 일곱 가구가 복도를 오가며 들여다봤겠지. 이틀 동안 아무도 닫아주지 않는 입을 열고 기다리느라 수고한 현관문을 토닥이기도 했다.


한숨을 크게 쉬며 이번 일을 잊어보려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방안을 빙 둘러보는데, 화장실, 침실, 옷 방문이 모두 저마다 다른 각도로 열려 있다. 화장실 문은 180도로 활짝 열려 구석에 놓아둔 욕실용 세제까지 보인다. 시원찮은 날숨을 내뱉는다. 왜 열어놓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같은 덜렁거림이 아니라 습관이구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모든 문을 열어놓는 습관.     


“닫지 마!”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집에 놀러온 친구가 성심성의껏 문을 닫아주려는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친구의 놀란 눈과 시선이 닿자마자 털썩 쪼그리고 앉았다. 칫솔을 입에 물고 울었다. 치약이 입 안에 가득해 소리 내 울지도 못하면서 타일 바닥에 툭툭 눈물을 떨어뜨렸다. 나도 내가 왜 화를 내고 왜 울고 있는지 몰랐다.   

  

침묵이 두려워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끌어당길 때 찰나의 고요함, ‘철컥’ 소리 다음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견딜 수 없었다. ‘철컥’ 소리마저 싫었다. 직후의 침묵을 의미하니까.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온 방문을 열어놓고 내가 어느 방에서 뭘 하든 방 너머의 소리를 들었다. 내용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여도 상관없다. 그저 혼자 있지 않다는 느낌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TV 소리가 그들을 대신했다. 샤워를 하면 거실에 물이 다 튄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화장실 문을 젖혀놓고 거실에서 나오는 TV 소리를 듣는다. 음악이 아니라 타인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에 굳이 TV를 켜놓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어느덧 습관이 돼 이젠 밖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모든 방을 연결해놓는다. 닫힌 문은 곧 고립이다.     


수시로 편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상대방이 통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하는 “그래”나 “알겠어”는 내게 ‘철컥’ 소리와 같다. 어떻게든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낸다. 직업 특성상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누군가에게 묻고 답을 듣는 일을 반복한다. 종종 집에 오면 들을 힘, 말할 힘이 모두 없는데도 어김없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면, 수화기 너머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어쨌든 나는 혼자가 아니다.     


고립이 싫은 이유를 떠올리려 해도 찾기가 힘들다. 글의 구성상 이제 ‘왜 이렇게 연결에 집착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사실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 그 자체로 충분히 두려워할 만하지 않나. 하지만 외부 자극을 주거나 물리적으로 함께 있다 생각해도 외로움이 없어지는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잠깐 미룰 뿐이다. 조만간 그는 몸뚱이를 불려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직면하기로 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혼자 있어도 충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7016번 버스를 타 제일 앞좌석에 앉았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고, 차들은 앞 유리를 닦으며 바삐 지나갔다. 창문 사이로 비가 톡 떨어져 손등 위에 앉았다. ‘귀엽네.’ 웃음이 났다. 나도 이렇게 사소한 것에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철컥’ 소리 한번쯤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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