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마스크

우쓰기 미호, 책 읽는 곰

by 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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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입니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따끈하고 바삭한 치킨 한 입이 떠올라서 이 책을 고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맛있는 치킨 이야기가 아닌,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네가 잘하는 것을 찾아봐! 너도 잘하는 게 있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신선하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모두 각자의 마스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치킨 마스크도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뛰어나고 꽃을 잘 돌보는 능력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마스크를 가지고 삽니다.


자식은 부모의 과거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제일 싫어하는 내 모습을 자식에게서 보게 될 때 가끔은 막막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 저는 참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말 한마디 안 하고 친한 친구와 겨우 이야기할 정도의 조용한 아이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소심하던 제가 아이들 앞에 서서 하루 종이 떠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초등교사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첫째 녀석은 어릴 적 저보다 열 배는 더 소심했습니다. 그래서 유치원 내내 원에 가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해서 항상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다가 집에 왔습니다.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사진을 보면 모두 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눈은 먼 산을 보거나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특히나 율동, 춤, 움직이는 것들은 더더욱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 앞에 서서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거든요. 문제는 학기말 학예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은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당시 본교가 예술꽃 학교로 1인 1 악기를 연주하던 때였습니다. 멋진 관악기의 연주를 보여주고 싶었던 학교 측에서는 마을의 예술회관을 빌려 성대한 학예회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참여하게 되어 있었지요. 역시나 학예회 준비 때부터 아이가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주 막연한 기대감으로 조금은 따라 하겠지 싶었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소리가 울리는 멋진 공연장에 학예회 관람을 갔습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데 역시나 아들은 꼼짝을 않고 서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형을 바꿀 때 자리는 옮겨 주더라고요. 그것마저 안 하고 있었으면 무대가 다 엉망이 될 뻔했습니다. 관람석에 앉아있는 엄마는 마음이 쪼그라드는데 야속하게도 다른 분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몇 분은 손가락질을 하며 제 아들을 보라며 즐겁게 웃고 있었습니다. 내 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집에 와서 아들을 재워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아들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다음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생각해 보니 그 무대 위에서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버틴 아들을 잠시나마 부끄러워하고 원망했던 제 자신이 어리석어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힘듦을 헤아리기보다 내 아들이 놀림감이 된 것이 더 속상했던 겁니다.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초등학생이 되더니 조금 변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 무대에선 악기 연주도 잘하고 소심하게 움직여도 동작도 따라 하고 클라리넷 솔로 연주도 하더라고요. 그동안의 서러움이 모두 녹아내렸습니다.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항상 조바심이 납니다. 내 아이만 늦은 게 아닌가, 부족한 게 아닌가 조바심이 나서 기다리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약이란 말을 누구보다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도마뱀 마스크를 가졌습니다. 비어디 드래곤을 좋아하는 아들은 나중에 파충류 사육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어디는 화가 나면 턱수염을 부풀리기도 하고 검게 물을 들이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드러누워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조금씩 돌아보면 자세가 바뀌어 있습니다. 훗날 뭐가 될지 몰라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마스크를 활짝 펼치고 여러 색으로 물들일 날이 오겠지요. 밖으로 보이진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아들의 마스크를 인정했다면 그렇게 울지 않았을 텐데요. 뒤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금요일에 쓰다가 말았던 글이라 시작이 불금입니다만, 오늘은 직장인들 누구나 걸린다는 월요병이 심각한 월요일입니다. 그래도 저의 마흔여섯 번째 생일이라 기쁜 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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