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 창비

by 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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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은 집 밖으로 나가면 찌는 듯한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히지만 집에만 있자니 뭔가 아쉽습니다. 어디든 가까이라도 휴가를 떠나야 만족스러운 여름을 보낸 것 같거든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도 작은 소라껍데기를 타고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십니다. 신비한 소라 껍데기가 진짜인가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할 때쯤 할머니의 그을린 피부와 조개껍데기 버튼, 날아오는 바다냄새를 글로 읽으며 할머니께서 휴가를 다녀오셨구나 생각합니다. 한 덩이의 수박을 들고 갈매기와 맛있게 수박을 나눠먹고 돌아오는 할머니 모습에서 평온함과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도 휴가가 그리우시겠지요.


찌는듯한 여름은 꼼짝도 하기 싫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집니다. 작년 우리 가족은 보훈처에서 지원하는 가족 보훈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보훈시설을 여행코스에 담아서 여행을 하면 사용한 만큼의 숙박비, 차량비, 식비를 일정금액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식구가 다섯이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예삿일이 아닌데 보훈시설을 다녀오면 여행비를 지원해 준다니 얼마나 솔깃한 제안입니까. 운이 좋게 저희 가족은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어 뜨거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보훈 시설이 있습니다. 가장 크게는 현충원에서 독립기념관 등이 있고요. 작게는 우리 지역에 있는 포로수용소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기념관들이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보훈시설을 겸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찾다 보니 광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5.18 민주항쟁으로 인해 다양한 보훈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으니까요. 알뜰하게도 우리는 보훈시설 한 곳과 여행장소 하나를 짝을 지어 2박 3일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으로 나섰습니다.


처음 도착지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이었습니다. 문화해설사님께서 기념관의 의미와 학생운동, 관련 영상까지 보여주시며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휴가를 보내자고 시작된 여행이 처음부터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왔습니다. 아, 이 여행이 이렇게 놀면서 보낼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학생운동을 하며 돌아가신 분들의 추모비 앞에서 참배를 하고 나니 그 마음이 더 경건해졌습니다. 이어서 방문한 5.18 민주묘지도 더욱 그랬습니다. 이 두 장소를 거치면서부터 우리의 시간은 뭔가 알차지고 보람차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책으로만 보았고 직접 경험하지도 확인하지도 못한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자료를 살펴보면서부터 남은 이틀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둘째 날 전라남도청, 유네스코 기록물 전시관을 다 둘러보면서 그날의 광주는 어땠었는지 더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전일빌딩 245의 총알 자국과 시청 앞 광장에서는 그날의 뜨거운 함성소리가 드리는 듯했습니다. 역사를 눈으로 체험하는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휴가는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닌 진정한 배움의 장이 되었습니다. 다른 관광장소, 놀이장소를 찾지 않아도 하루가 꽉 차버리는 일정이 마치 수학여행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던 수학여행이 아닌 스스로 찾아 나서는 수학여행이 된 것이지요. 마지막 날 광주를 내려오며 들린 순천 호남호국기념관에서는 먹먹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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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린 아들에게 너라면 전쟁에 나갈 수 있었겠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으니 전쟁에 나간 학도병과 같은 나이였습니다. 너보다 어린, 너보다 몇 살 많은 또래들이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운 전쟁이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절대 못 갈 것 같다고 말했고 저 역시 절대 너를 보낼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내가 그 소년의 어머니가 된 것 마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그 편지를 다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은 어린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무엇을 위해 그 아이는 그 차가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요.


저는 마흔여섯의 아줌마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밖을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다는 발리도 하와이도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릅니다. 모두가 멋지다 좋다고 말하는 외국땅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제 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휴가가 있다면 저는 보훈여행을 다녀온 이때가 가장 좋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가 없었더라면 생에 한 번도 계획해 보지 못했을 휴가였습니다. 언젠가 만들어진 영화 제목처럼 '화려한 휴가'가 저에게도 이곳 광주가 되었습니다.


올 해도 여름 방학이 어김없이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놀러 갈까 벌써 기대합니다. 그 여행 속에 부모는 항상 뭔가를 숨겨놓고 싶어 하지요. 휴식 안에 보이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싶은 목적을 담게 됩니다. 내 나라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해 주고 싶어서요. 그래서 지금의 이 평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바닥에 깔고 만들어진 것인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 너무 힘들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아주 살짝 잘 끼워 넣어 보겠습니다. 즐겁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그런 휴가를 올 해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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