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전설

이지은, 웅진 주니어

by 반윤희



제목을 보고 떠오르는 친구가 있으신가요? 호랑이와 꼬리꽃은 우연히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빛줄기로 떨어진 민들레가 호랑이 꼬리에 붙어서 둘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앙숙처럼 지내던 둘은 숲 속 동물들을 도우며 서로가 환상의 짝꿍임을 알게 됩니다. 점점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가던 무렵 민들레가 새하얀 털로 뒤덮이게 되지요. 그물에 걸린 호랑이를 구하기 위해 민들레는 자신의 씨앗들을 날려 동물친구들에게 sos를 보내게 됩니다. 친구들이 달려와 호랑이를 구해주지만 꼬리꽃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저도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참 많지만 저를 잘 이해하고 저를 아는 친구는 딱 S, 이 사람입니다. 대학교 때 만나 이제는 이십 년도 넘은 친구이지요. 매년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길 정도로 가까운 친구입니다. 고맙게도 S는 자기 생일 잊지 말라고 4월 19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날의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마음을 가진 친구입니다.


같이 목욕을 하고 때를 밀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이고 때 봐라' 하고 제 등을 박박 밀어주던 사람이지요. 초밥의 맛이 뭔지 모르고 살았던 저에게 초밥의 진미를 알게 해 준 사람입니다. 운전은 잼뱅이라 동네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는 저를 항상 옆자리에 태우고 멀리멀리 여행시켜 준 사람이고요. 힘들어 쓰러질 것만 같던 여름 한라산을 함께 등반한 사람입니다. 졸업 후 자취방을 빼서 갈 곳 없는 저를 부모님과 같이 사는 자기 집에서 보름 넘게 살게 해 준 사람이고요. 1정 교사 연수 때 갈 곳 없는 저를 자신의 자취방에서 한 달 동안 동고동락 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항상 많은 책을 읽어서 귀만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지식을 거제 주워듣게 해 줬고요. 그림을 잘 그려서 항상 저의 못난 모습을 만화처럼 그려 웃게 해 준 친구랍니다. 제가 헤픈 짝사랑을 할 때 정신 차리라고 옳은 말도 해 주었고요. 옆에서 잔소리하고 구박해도 싫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친구에게 딱, 미안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을 쳤을 때 저는 떨어지고 그 친구는 타 지역에서 1차 합격을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샘이나고 부럽던지요. 심술이 나서 친구의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았습니다. 참 못났습니다. 친구가 2차에 떨어지고 나니 나 때문에 떨어진 것 같아 너무 미안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해서 부정 탔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의 기쁨을 같이 나누지 못하고 샘을 낸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더군요. 이런 못난 저를 웃으며 맞아준 친구입니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같은 해에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차이로 날이 잡혔습니다. 타인의 결혼식에 참여하면 자신의 행복을 상대에게 줘버린다나요. 그런 속설 때문에 친구는 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친구에게 되려 미안했습니다. 보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 장례식장에 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본인 결혼을 앞두고 장례식장에 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제 소식을 듣고 와서 같이 슬퍼해주었습니다. 주저 없이 달려와 준 그 마음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까지 오는 것은 절대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라도 친구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함께 결혼하고 함께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웠지요. 제가 아이를 셋 낳고 기를 동안 친구는 아기 천사와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바랬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친구와 전화할 때 아이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흔한 아이들 사진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돌사진, 돌잔치 초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 하나하나가 친구에게 슬픔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편과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네 선택도 참으로 가치 있다 말해주고 싶습니다.


둘이서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결혼 전 함께 여기저기 여행 다니던 것처럼 둘이서 여행 떠날 계획을 잡고 있어요.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하나도 정해진 건 없지만 딱, 하나 정한 것이 있습니다. 저희 집 막내가 대학 들어가고 나서입니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시간 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날짜를 딱 못 박아 주더라고요. 항상 제 상황을 생각하고 고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막둥이를 얼른얼른 키우고 싶습니다.


꼬리꽃이 씨앗을 날리고 사라진 뒤 할머니 집 마당에 매년 민들레들이 피어납니다. 친구는 가까이 있지 않아도 흔적으로 남아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문득문득 함께한 좋은 기억들이 흔적으로 남아 상대를 떠올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멀리서 서로의 행복을 항상 바라는 사람, 기쁜 일에 마음껏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좋은 친구가 저에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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