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원, 느림보
오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백세가 다 되어가는 노모를 리어카를 개조한 자전거에 모시고 도시 구경을 갑니다. 걷고 또 걸어서 도착한 도시는 비정합니다. 할아버지를 효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복잡한 도시에서 길을 막는 답답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높은 빌딩에 초대받아 전망대를 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 보지 못한 할머니는 절대 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결국 늙은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63층을 올라갑니다. 그곳에서도 어머니는 우리 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백 살이 된 할머니에게 가장 좋은 곳은 도시도 빌딩도 아닌 당신의 집이었습니다. 여행이 끝난 뒤 육 개월이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생에 가장 큰 효도를 한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매일 어머니 무덤에 가서 이야기를 하지요. 우리의 그 멋있었던 여행을 되새기며 말입니다. 첫 면지에 나왔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빨래는 마지막 면지에서 할아버지 빨래로만 끝이 납니다.
언젠가 형제 정신과 의사가 효에 대해 재정립을 하였습니다. 그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양 갈래로 나뉘어 열띤 댓글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자식이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류와 두 의사의 말대로 이제는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류였습니다. 저도 후자에 속합니다. 나이 든 부모를 내 삶을 포기하고서라도 정성 들여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지금의 사회는 효를 강요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매우 힘들고 고달파서 그들의 삶을 살기에도 바쁘고 더 이상 예전처럼 내 삶을 갈아 넣어 부모를 모시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요양원을 가든 실버타운을 가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선에서 노후를 맞이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어르신들과 자식들 사이가 딱 과도기인 것 같습니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인이 된 세대와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식 세대 간에 이견이 생기는 시기가 지금인 것 같거든요. 저도 시부모님이 두 분 다 요양원에 계십니다. 아버님은 경추 이상으로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가정에서 모실 방법이 없어 요양원에 가셨습니다. 어머님은 파킨슨이 심해지셔서 거동을 할 수가 없어 요양원에 가셨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자식들이 돌아가며 부모를 모셨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부모님을 뒷바라지했겠지요. 그런데 지금 저희 가족의 상황은 맞벌이에 자식들을 키우는 처지라 두 손 놓고 부모님에게만 매달려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관의 도움을 빌려 부모님을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들 모두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만 가끔은 서운해하시는 날도 있습니다. 끝까지 기관을 거부하시는 모습을 보며 수없이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미 요양원에 가 계시는 아버님께 어머님께서도 곧 요양원을 가시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니
"할멈도 곧 천대를 받겠구나!"
라고 하시더군요. 이미 요양원에 계시는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본인의 처지도 그렇다 여기시고 계신 듯합니다. 그 말씀에 또 한 번 죄책감이 밀려듭니다.
이 책의 후기들을 보면 눈물짓거나 감동스럽다는 글이 많습니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는 반응도 많습니다. 하지만 감동을 받는 사람은 제 나이대로 끝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런 정서와 감정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생각은 요즘 사람이지만 마음은 옛날 사람이기에 저 역시 불효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더 크거든요.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신 나쁜 며느리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죄를 덜 듯 주말마다 간식거리를 사다가 요양원에 넣어드리고 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 드려도 부모님께 요양원은 갑갑한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음을 역시 알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모셔도 부모님의 돌봄은 끝이 없습니다. 오늘도 연가를 쓰고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진료를 갔습니다. 어쩌면 매일 힘든 날을 보내지 않고 있기에 이렇게 하루를 더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이 병원에서 돌아오실 때쯤, 얼른 집에 가서 삼계탕을 끓이려고요. 오늘이 복날이라네요. 삼계탕을 먹어야 여름을 이겨내기 쉽다고 생각하는 어른께 닭 한 마리 푹 고아서 대접해 드리려고 합니다. 좁히기 힘든 세대 간의 의견차이지만 자식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어쩌면 오늘이 그리워질 날이 머지않아 오겠지요. 그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조금 더 최선을 다해봅니다. 먼 훗날 보고 싶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