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선, 한울림 어린이
친정어머니는 딸만 셋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없어서 눈치도 많이 보고 가끔은 그게 콤플렉스가 되어 시댁에 다녀온 어느 날은 화와 짜증이 늘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둘째 딸은 머리카락도 짧게 자르고 바지만 입혀 멀리서 바라보면 아들처럼 보이게 키우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둘째가 바로 접니다. 얼마 전 아들의 학부모 교육에서 색채심리를 했는데 제가 고른 색을 보시더니 강사님께서 '내 안에 남자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심리 속에 남성성이 강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연년생으로 바로 가진 언니에게 왜 아들이 생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임신을 했냐고 타박하셨더랬습니다. 아마 당신의 딸도 당신을 닮아 딸만 낳아 시댁에서 눈치 볼까 걱정하셨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둘째가 아들이다 했을 때 한숨 놓으셨습니다. 조금만 늦게 떠나셨다면 당신이 아들처럼 키우신 둘째 딸이 처음부터 아들을 낳는 걸 보시고 좋아하셨을 텐데 말이지요.
자녀를 한, 두 명 낳거나 인구절벽이 되어가는 지금 아들과 딸의 구분은 점점 의미 없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되든 소중한 자식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개중에는
딸을 낳으면 비행기 태워준다.
라는 말로 딸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여성도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아들을 낳고 2년씩 터울로 딸을 둘 더 낳았습니다. 신기하게 딸 하나는 저를, 또 하나는 아빠를 판박이로 닮았습니다. 딸은 무뚝뚝한 아들보다 애교도 많고 웃음도 많았습니다. 항상 예쁜 얼굴로 엄마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엄마보다 이제 키가 커진 딸은 설거지도 해주고 엄마가 힘든 마음도 알아줍니다. 엄마가 힘들고 속상할 말은 스스로 조절해서 말할 줄도 알고 말없이 와서 안아주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엄마는 백 살까지 살라고 내 옆에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감동입니다.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진 자식은 나의 마음을 더 많이 공감해 주고 알아주더군요. 그래서 딸이 좋다고 말하나 봅니다.
아빠에게도 딸은 필요합니다. 남성호르몬이 넘쳐나 늙어가는 아내의 빈자리를 웃음 많고 사랑 많은 딸들이 채웁니다. 나이 들어가는 남편도 그런 딸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젊었던 시절을 다시 보는 듯합니다. 내 아내가 이렇게 자랐겠구나 아이를 통해 보기도 하지요. 곱고 사랑스러워서 시집보내기도 싫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놈에게도 주기 싫은 그 마음은 엄마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래도 훗날 버진로드를 밟고 들어갈 예쁜 딸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아들보다 조금은 더 사랑을 주어서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게 됩니다. 그래야 딸이 좋은 남자를 데려올 것 같습니다.
아들과 딸의 구별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남자와 여자의 기질이 다른 거지요. 그래서 딸 가진 사람들이 조금 더 누리는 다양한 삶의 즐거움이겠지요. 그래도 엄마의 질문에 생각도 안 해보고 몰라, 몰라를 남발하는 아들보다 종알종알 대답해 주는 딸이 더 좋긴 합니다. 엄마 생일에 종이쪽지 편지 한 장 안 써주는 아들보다 용돈을 모아 꼬깃꼬깃 넣어주는 딸이 더 좋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도 결론은 딸은 좋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