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아, 킨더랜드
습작으로 '엄마, 백일의 이야기'라는 책을 써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제 젊은 날의 이야기를 썼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을 것 같아서요.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나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을 것 같거든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할 젊은 시절을 이 아이들도 보내게 되겠지요. 엄마가 어릴 땐 말이야,라고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내 아이들이 내 나이쯤 되면 우리 엄마가 이랬구나 공감하면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끄적거리는 습작이지만 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이 늙어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떠나셨고 친정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시니까요. 그래서 함께 나이 들어가다가 어느 날 세상과 이별할 때가 되면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시부모님 두 분께서는 그러지 못하셨어요.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기니까 일을 하며 부모님을 돌보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부르는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은 정신이 맑으시기에 그곳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힘드실 것도 압니다. 제가 집에서 모시겠다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비겁해 보였습니다. 그런 자식들의 짐이 될까 스스로 들어가 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 자식은 부모의 모든 것을 받고 살아가지만 결국 성인이 되어서는 그 고마움의 절반도 갚지 못하고 삽니다. 그게 자식이고 부모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 버러 진 자신을 키워준 파랑 오리를 이제는 악어가 돌보고 삽니다. 기억을 점점 잃고 노쇠해져 가는 파랑오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는 악어가 대견합니다. 시부모님은 나와 피를 나누지 않은 타인이지만 남편이라는 한 개인을 통해 나와 연결된 사이입니다. 법적인 서류 한 장으로 나의 또 다른 부모가 되신 분들입니다. 걷지를 못하고 일어서질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상황에 법적인 자식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밖에서라도 부모님이 필요하실 때 달려가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또한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길고도 잔혹합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이 두렵고 긴장되기도 합니다. 어제 그나마 움직이던 다리가 오늘 덜 움직인다면 마음이 덜컹합니다. 어머님 본인도 마찬가지고 바라보는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여 지나간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면 심장이 더 내려앉습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나도 언젠가는 내 아이들과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머니 얼굴에 나중의 내가 있습니다. 미래의 거울을 당겨보는 기분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자는 길에 갔으면 좋겠다는 말 뜻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부모의 손발이 된다는 것이 때로는 귀찮고 힘들기도 합니다. 고생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머니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평생을 살아온 결과가 나를 귀찮아하는 자식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귀찮음도 짜증도 싹 사라집니다. 마음속 연민이 솟아오르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파란 오리와 악어가 떠다니는 저 파란 호수처럼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아마도 다가올 이별이 조금은 더 가벼워지겠지요.
후회 없는 이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