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철, 창비
2008년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관을 들고 40분쯤 걸어 올라가야 하는 선산에 엄마를 묻었습니다. 옛날 조상님들이 상여를 메고 무덤에 묻던 것처럼 마을 입구에서 관을 한 바퀴 돌고 산에 올랐습니다. 삼일동안 흘린 눈물이 말랐나 싶었는데 마지막 관을 놓고 빙 도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요. 미리 파 둔 구덩이 아래로 어머니의 관이 떨어지는데 그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따라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산에 묻고 내려와 매년 명절마다 엄마를 찾아가는데 왜 이리 높은 산에 묻었나 후회되었습니다. 멀고 힘들어서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임신해서 배가 부를 때, 어린아이들을 육아하던 시기엔 엄마를 보러 가지 못했지요. 산 아래서 그냥 그리워만 하고 보냈습니다. 그렇게 멀다는 핑계로 엄마를 찾아가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개미들이 쨍아(잠자리)를 장사 지내 준다고 이고 끌고 갑니다. 이미 죽어버린 쨍아는 수없이 많은 개미들에게 실려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그리고 형형색색 빛으로 쪼개져 먹이도 되고 바람도 되고 꽃도 됩니다. 쨍아가 남긴 하나하나가 모여 예쁜 꽃으로 피어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땅 속에 묻히면 백골만 남고 녹아내린 살들이 땅속으로 스며들겠지요. 화장을 해서 재로 뿌려지면 강으로 타고 내려가 물고기의 밥이 되기도 할 겁니다. 작은 항아리에 담겨 납골당으로 간다면 불에 타 녹은 살결들이 바람에 날려 하늘을 날아다니겠지요.
죽고 나면 이별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 엄마도 내 가까이에 와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녹아내린 그 살결들이 땅속 거름이 되고 그곳에서 자란 꽃이 피어나 꽃가루도 바람을 타고 올 테고 씨앗이 날아왔을지도 모릅니다. 내 집 앞마당에 떨어져 올봄에도 피었다 졌을지도 모르지요. 나도 모르게 엄마는 내 옆에 왔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영 이별이 아니라 빛이 되어 공기가 되어 꽃이 되어 스쳐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완전한 이별이란 없습니다.
오늘은 이 빗속에 엄마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촉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