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회, 사계절
인스타 그램을 처음 시작했을 때 추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짧은 만화를 인스타 툰이라고 하더군요. 이야기의 주제는 위암 4기였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사기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위암 4기임을 모르고 사기병이 뭔가 했습니다. 작품을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위암 4기 치료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 어머니도 위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초기 발병 수술 후 5년을 지내고 재발하셨더랬습니다. 암이 복수에 가득 차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인스타 툰을 보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남 같지 않았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작품이 인스타 툰을 모아둔 '사기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주로 하셨던 일이 그림책 작가였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사게 된 책이 '우주로 간 김땅콩'이었어요. 귀염뽀짝한 땅콩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작가님의 아들이 떠오르더군요. 투병 중 가족들 모르게 만드신 책이라고 하는데 아들이 이렇게 자라주기를 바라고 쓰신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병을 가진 사람은 자신보다 늘 남은 가족을 생각합니다. 제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항상 남아있을, 살아있을 우리를 걱정하셨습니다. 정작 죽음과 이별을 앞둔 당신의 병을 둘러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작가님도 남겨질 아들을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유작으로 '도토리와 콩콩'을 쓰셨는지도 모릅니다. '도토리와 콩콩'의 북 트레일러는 작가님께서 직접 녹음하신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하늘만큼 우주만큼 사랑하는 건오에게'라는 말로 시작하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저는 눈물샘이 터집니다. 그 한 마디에 엄마의 모든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유작이 세상에 나온 며칠 후 작가님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 말이지요. 몇 년 후 건오가 초등학교 입학한 모습을 작가님 어머님께서 피드를 올려주셨어요. 이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엄마의 마음으로 축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주 오래전 한 다큐 프로에서 '4기 암환자의 1년의 기록 앎'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암 환자의 마지막 1년을 기록한 작품이었습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식을 두고 죽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공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자식에게 남기는 메시지들이 방송되었습니다. 그 애잔한 마음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항상 엄마가 옆에서 지켜주겠다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위안으로 삼을 것은 그 말 뿐이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그 방송에 나온 분들은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흔적을 남겨주신 거 같아요. 제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장 후회했던 것이 엄마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거였어요. 사진도 영상도 엄마 목소리도 남겨둔 것이 없어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을 때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너무나 후회스럽더라고요. 그래도 삼십 년을 본 엄마의 얼굴인데 나이가 드니 점점 흐릿해지고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떠나던 작가님도 다큐 속 엄마들도 이렇게나마 자신의 흔적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서 촬영에 임했는지도 모르지요.
그게 너무나 후회되어 저는 매일 육아일기를 씁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라서 남길 이야기도 특별한 일도 없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작은 기록을 남겨봅니다.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면 손으로 가리기 바쁘지만 사정사정해서 사진 한 장 더 남기려고 애를 씁니다. 살이 쪄서 보름달 같은 내 얼굴도 언젠가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겠지 싶어 카메라 한쪽 구석에 끼워 넣어 봅니다. 먼 훗날 아이들이 엄마 보고 싶을 때 보라고 오늘도 열심히 일기를 씁니다.
사는 게 지루하고 재미없을 때,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마지막 글들을 보세요.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 알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의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떠난이가 남긴 가치로운 생명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