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6. 08.
이번 수련회에서 제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신 분!!
우리 옆반 선생님, 이번 여름 교감 연수 들어가신다. 선생님을 이 학교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인연을 맺은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고 소중한 인연인데 나는 요즘 우리 선생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끓는 냄비처럼 화르륵한 내 급한 성격에 비하면 선생님은 항상 뜨겁지 않게 은은히 끓고 있는 냄비 같다. 항상 아이들 기준에서 함께 생각을 맞춰주시고 기다려 주신다. 그냥 한 번에 휙~ 잡으면 편하다는 내 생각이라면 선생님은 기다렸다 스스로 하게끔 만드시는 분이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은 배우는 사람이다. 그동안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내 모습에 후회나 부끄러움은 없다. 하지만 중견교사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오래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분은 큰 길잡이가 되어주시는 것 같다.
수련회 내내 선생님은 선생님 반 자폐아동과 손을 잡고 다니셨다. 배도 같이 타고 오히려 더 신이 난 골목대장처럼 아이들 속에서 함께 자고 먹고 이야기하고 숨 쉬고 교류하셨다. 아마 아이의 어머니도 이런 선생님을 아니까 수련회에 보내신 것 같다.(간혹 특수아동 어머니들께서는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시기도 한다.) 선생님을 교사용 숙소에서 뵌 건 어젯밤 아이들 다 자고 난 30분 뒤. 선생님께서 계속 밖에 계시니까 방에 있는 시간이 너무 불편했다. 기분 좋은 불편함. 배움의 시간이 되는 불편함. 아마 선생님이 안 계셔도 나 역시 아이들 체크는 다 하고 다녔겠지만 우리 반 아이들을 보러 다니는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나의 무의식을 채워가는 장면이 되었다. 나라면 그만큼 못 했을 것이다.
장애아동을 둔 엄마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육아서를 보면 신이 보통의 엄마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자폐아동을 보내셨고 그분들은 그런 아이를 무한한 사랑의 크기로 키워낸다고들 한다. (겪어보지 않은 자들의 허울 좋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선생님을 뵈면서 교사도 그 사람이 담을 수 있는 그릇만큼의 아이들을 그 반으로 보내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는 보통의 아이들, 크게 문제가 되거나 힘들지 않은 아이들을 맞이하여 내 열정 안에서 열심히 가르쳐왔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잘 가르치는, 가르칠 수 있는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선생님 반 아이들이 나의 아이들이었다면 나는 저만큼 과연 아이들을 품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반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 그래서 더 선생님이 커 보인다는 생각. 아이처럼 웃는 선생님반 특수아동을 보면서 그동안 이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수련회 이틀 동안 참 예쁜 미소를 지녔었구나 비로소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가꿔준 사람이 이 분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봤다.
학교에 와서 급식 먹고 아이들 하교시키고 바로 유치원에 갔는데 민서가 때마침 얼굴을 쏙~내밀길래 이리 와 아가!! 하고 안아주고 뽀뽀하고, 인형놀이 하며 놀고 있는 서영이를 불러 또 한 번 안아주고 뽀뽀하고!! 1박 2일 동안 우리 강아지들 어찌나 보고 싶던지. 이 녀석들 안고 냄새를 맡아야 마음이 놓이는 엄마. 보고 싶었어! 우리 민찬이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만. 많이 많이 사랑한다! 우리 똥강아지들!!! 오늘 우리 즐겁게 사이좋게 놀자!! 조퇴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냥 있다가 가야겠다.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품어줬다면 한다.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아이들 저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옛날에는 우리 반 아이들도 다 잘하게 만드려고 엄청나게 애를 쓰고 노력을 했는데 물론 그것이 도움이 되는 친구도 있었겠지만 한시적으로 나를 만난 일 년 이 지난 뒤에도 그 삶이 유지가 되었을까 싶다. 정말 안 되는 아이들을 힘들게 따라가게 만들려고 애쓰는 과정이 과연 옳았던 일일까 싶다. 아이를 셋 키우면서 각자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고 내가 강요한다고 해서 아이가 꼭 잘되는 것도 아니더라. 가진 그릇만큼만 채워도 아이에게는 힘들 수 있는 것을 내가 항상 완벽하기만 바라며 키운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인정하고 아이의 존재 자체로 존중해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때는 나도 초보엄마였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미안하고 아쉬움이 크다.
며칠 전 전학생이 왔다. 이전 학교에서 다투고 싸우고 무기력하고 학습도 되지 않은 그런 상태의 아이다. 부모님도 아이에게 집중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작은 일 하나에도 피해의식이 크고 나쁜 말도 서슴없이 한다. 일 년이 끝나가는 가을 끝자락에 잘 키워놓은 아이들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이 친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 안에 평화가 깨어지고 안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뭔가 초조함도 몰려왔다. 이 아이는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 같았다. 일주일 동안 신경전이 펼쳐졌다. 깨어진 내 평화에 대한 원망이 올라올 때쯤 동시에 이 아이에 대한 연민이 올라왔다. 과연 이전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다시 처음부터 가르치자는 생각이 들었다. 5살이다 생각하고 다시 알려주자 싶었다. 그게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편하게 월급 받았구나, 이 정도 아이로 스트레스를 받다니! 그동안 너무 내가 쉽게 살았나 싶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 그 사람의 그릇과 마음을 인정하는 것. 그런 다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 자식을 키우거나 학생을 가르치는데 내가 해야 할 몫인 것 같다. 다음 생에 엄마가 되더라도 이번 생에 남은 엄마의 시간은 내 아이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