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5. 18.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잘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았고 아이를 셋 낳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 모든 것들. 나이만 먹는다고 과연 알 수 있었을까.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 부모에게.
오늘 집에 가기 전에 그 아이 손을 잡고 이야기하다가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선생님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하다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다가. 그만 내가 감정에 취해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녀석도 같이 울었다.
그 마음의 깊이를 안다.
아직 아홉 살인데 어린아인데. 다 큰 어른 취급을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선생님이 너를 지켜주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났다. 상처를 건드렸다. 미안하다 아가.
너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혼나고 있어도 내가 너를 구해줄 수 없었던 것을.
선생님에게도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 앞에서 네가 울어도 안아줄 수 없었던 것을 용서하렴.
잘 늙고 싶다.
내가 마음이 변하지 않고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좋은 사람으로 늙고 싶다.
예전에 몰랐던 것들을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이 자랑처럼 늘어놓은 글들을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깨닫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자식은 꼭 낳을 것이고 셋은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아이를 낳을 것이다. 자식을 낳기 전과 낳기 후 내가 세상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달랐다. 전자보다 후자의 내가 더 사람답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는 꼭 다시 태어나도 자식은 낳아볼 셈이다.
자식을 낳고 나서 바라보는 우리 반 아이들은 또 다르다. 그래서 가정이 힘들거나 마음이 힘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된다.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부모의 심정도 이해가 가서 상담을 하다가 많이 운다. 내가 먼저 울어버리는 일이 더 많다.
연차가 많은 선생님에게 우리 반 아이가 불려 가서 혼이 나면 내가 더 속상하다. 내 자식이 혼나는 것 마냥 마음이 꽁해지고 선배 선생님에 대한 미운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고 돌아오는 아이를 보면 괜찮다고 힘내라고 어깨를 두르려 준다. 괜히 내 새끼가 어디 가서 혼난 거 같고 내가 같이 혼난 기분이다. 그래서 한 마디도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돌아온다. 선배 선생님의 권위를 위해서 내가 그렇게 마무리하는 게 맞다. 그래도 그럴 때면 내가 연차가 낮아서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물론 지금은 그럴 사람이 없을 만큼 나도 연차가 많은 선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다른 반 아이들을 크게 혼내지는 않는다. 어디선가 후배선생님이 속상하지 않았으면 해서.
인생을 살아보니 자연히 배우고 얻게 되는 것이 참 많더라. 삶의 지혜처럼 보이던 그 많은 책 속 이야기들도 시간이 지나니 자연히 배우게 되고 알게 되더라.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삶에 대한 많은 경험과 통찰과 반성이 더불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마치 나만 깨닫게 된 것처럼 나불거릴 일이 아니더라. 그래서 다들 그런 사람을 보면 꼰데 꼰데 하나보다. 누구나 다 차차 알게 될 것을 섣불리 나서서 잘난 체 하지 말자. 먼 훗날에 내가 왜 그랬지 이불킥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