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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Nov 23. 2023

긴긴 하루

2019. 08. 13.

오늘 나의 검사


오전에 피 뽑고 소변검사, 24시간 소변팩 받아 소변 모으기, 정신의학과 상담 심리검사지 550문항 풀기, 사회복지사 두 분과 상담, 6시간 금식 후 신장 시티촬영.


내일의 검사


핵융합 검사  아침에 물 1.5리터를 마시고 피를 10분 30분 3시간 4시간 간격으로 4회 뽑기, 심리상담, 수요일은 장을 비우고 조영술, 신장 조영촬영 물 500미리 마시고 3분 5분 7분 15분 간격으로 촬영.


금요일은 신장 초음파.




오늘 나는 팔에 약을 주입하고 10분 30분 3시간 4시간 뒤에 총 4번의 피를 뽑는 검사를 했다. 검사 전 물을 1.5리터 먹고 가야 했고 어제도 2시간 전 물 2통을 먹고 검사하는 걸 하다 보니 24시간 소변모우는 통이 3리터인데 하루 동안 이 3리터를 거의 다 채워서 갔다는. 약 넣은 팔의 반대쪽에서만 채혈을 해야 해서 한쪽에서만 무려 주삿바늘 4번을 넣었다 뺐다 하다 보니 나중엔 혈관이 아프더라. 양쪽 팔에 구멍 나겠다. 어제 사회복지사 2분 오늘 정신검사 면담 한분이 거의 같은 질문만 하시는데 AI처럼 같은 대답만 하다 보니 이제는 이게 과연 나의 진심이 맞는지? 나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드는. 기계적인 대답이 마치 진심이 날아간 듯한 느낌이다. 


오늘 찬이아비는 위대장 내시경을 했다. 3시 진료라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쫄쫄 굶고 3시에 내려가 대기가 길었는지 6시 못 돼서 돌아왔다. 그것도 내가 정신과 면담 간 사이. 나도 검사받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고 찬이아비도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도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이 시기를 잘 넘겨서 우리 함께 웃고 행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식당에서 처음 혼밥을 하면서 매번 혼자 검진 와서 이 자리에서 식사를 하셨을 우리 아버지와 아빠가 수술할 때 와서 간호하던 우리 언니와 매번 정기검진에 밤차 새벽차 타고 와 혼자 밥을 먹었을 민찬아비의 얼굴이 떠 오르고 지금 그 자리에 이제는 내가 앉아있구나 생각하니. 옛날 우리 엄마는 그 여린 몸으로 어찌 이런 긴 시간을 다 이겨내셨을까. 전이가 돼서 이제 시간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를 듣고 부두가에서 엉엉 우셨다던 그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는 살 수 있는 병이고 이 시기만 거치면 이겨낼 수 있는 병이라서 감사한.

내가 십여 년 전 약속했던 것처럼 나의 하나를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한.

그런 시간이다.


아버지의 고생을 언니의 고생을 엄마의 희생을 대가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철없이 내 행복에만 빠져 살았던가 지나간 내 삶과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리석은 인간은 꼭 큰일이 닥칠 때에야 말로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지. 민찬아비는 밥 먹고 돌아오니 자고 있고 지금도 잔다. 저녁도 금식이라 하루를 통으로 굶겠구나.


병원이 신장내과라 투석하시는 분들, 신장 나쁘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지나가다 마주치면 다들 검은 피부에 기력이 없으시다. 그게 내 남편의 미래가 되면 내가 더 속상해서, 삶이 힘든 것은 볼 수가 없기에 지금 이 시간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시골 대학병원에서 추적검사를 해 오던 우리는 신장이식을 결정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EBS 명의를 돌려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신장내과의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이왕 수술하는 거 제일 잘한다는 선생님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상식이 부족했던 것이 수술은 외과 선생님이, 공여자는 비뇨기과 선생님이 하는데 무작정 신장내과의만 찾았다.) 그래서 대한신장내과 협회장이신 양철우 교수님을 찾아 서울 성모병원으로 갔다. 뭔가 명의를 만나면 무사히 수술이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이식을 시작했다. 


성모병원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곳이다. 우리가 수술하기 전 친정아버지께서 비강암 수술을 먼저 하셨던 곳이다. 이미 그곳에서 병원 생활을 해 본 터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이식 전 검사를 하러 일주일 입원하면서 남편도 나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검사 스케줄이 일주일치 표로 나오는데 빽빽하게 쓰인 일정들이 마치 수험생을 위한 요약정리표 같은 느낌. 간호사실 콜을 받고 이동하기 바빴다. 남편도 나도 힘든 일주일이었지만 이것이 최선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었다. 


이전에 나와 같이 고생했을 아버지, 병간호를 맡아줬던 우리 언니. 병원은 다르지만 이렇게 고된 과정을 거치셨을 돌아가신 우리 엄마. 모두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한없는 미안함과 감사함이 솟아올랐다. 수면 내시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모든 것이 서러워졌던 날이었다. 아마도 혼자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시간이 벌써 지나 4년이 지났다. 가끔은 우리가 신장이식 환자와 공여자임을 잊고 살 정도로 일상의 삶을 되찾았다. 신장은 기능이 무한하지 않아 언젠가는 내 신장도 남편의 몸에서 기능을 다할 날이 오겠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신장이 하나 없는 내가 기능을 잃게 되더라도 좌절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로 인한 행복을 너무 많이 누렸고 앞으로 더 누릴 것이기에 다가올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렵지 않다.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은 오늘 저녁 아이들 반찬은 뭘로 할 것인가, 왜 장은 봐도 봐도 먹을 게 없는가, 뭘 먹여야 아이들이 행복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까 이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이 문제를 잘 풀어봐야겠다. 그런데 항상 답이 없다. 세상에서 저녁밥하기가 제일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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