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중

이태준, 보림

by 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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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린 꼬마가 전차가 설 때마다 고개를 내밀고 엄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차가 한 대씩 도착할 때마다 저도 같이 고개를 뺍니다. 저는 일자목이라 병원에서 귀와 어깨가 나란히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말이죠. 아이가 엄마를 기다릴 때마다 같이 고개를 빼꼼 내밀게 됩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제 목이 또 앞으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해 질 녘까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전차가 한 대 한 대 지나갈 때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괜히 눈물이 납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조바심이 날지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기다린 엄마는 제 나이 서른하나 일 때입니다. 서른이 넘도록 시집도 못 간 딸을 데리고 사시던 우리 엄마가 부산에 있는 병원에 다녀오던 날이었습니다. 차에서 집까지 논두렁을 3분 정도 걸어 들어오는 곳에 제가 사는 집이 있었습니다. 담벼락에는 오늘 같은 날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위암으로 전절제를 하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정기검진을 하고 돌아오던 엄마는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밀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 오는 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담벼락에 기대어 한 참을 기다리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배가 도착할 시간도 지났고 벌써 집으로 돌아왔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어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노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 논두렁을 돌아서는 엄마가 보였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러 나가야 하는데 엄마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부터 터져버렸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마구 닦아보아도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야속했습니다. 너무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엄마를 보면서 결과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엄마를 꼭 한 번 안아드릴 걸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이제 살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왔을 엄마에게 따뜻한 힘이 되었어야 했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요.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엄마도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도 무서웠을 텐데요. 두렵고 겁이 났을 텐데요. 끝까지 같이 가 주겠다고 걱정 말라고 꼭 안아주었더라면 그래도 조금은 덜 무섭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왜 이제야 드는 걸까요.


꼬마가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행여나 혼자가 될까 봐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 어린 뒷모습이 가련해서 눈물이 떨어지려 할 때쯤 작가님은 비장의 무기를 숨겨두셨습니다. 면지의 어느 한 구석에 조그맣게 걸어가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순간 안심이 되어 깊은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이렇게 가슴 조리고 볼 그림책인가요. 엄마 마중이 이렇게나 맘 졸일 일인가요.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편안한 심장소리로 자리 잡습니다.


저는 아직도 엄마를 기다립니다. 이제는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제가 만나러 갈 날을 기다립니다. 저를 마중 나온 엄마가 멀리서 반겨주시겠지요. 그리고 엄마 품에 들어가 우리의 마지막 날 따뜻하게 안아드리지 못하고 보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제 자식들 돌보느라 늦었다고 말하면 이해해 주시겠지요? 늦었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리운 우리 엄마 마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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