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의 공간, 부도덕의 공간
방직공장에서 음악 선생님 일을 하고 있는 동식은 이제 상류 사회에 발을 갓 들인 사람이다. 이를 증명하듯 2층 저택으로 무리해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여공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제안하기도 한다. 동식은 아내의 몸이 좋지 않아지자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 교습을 받던 경희에게 하녀를 알아봐 달라고 이야기한다. 경희는 방식공장에서 잡일을 하던 여자에게 하녀를 제안한다. 하녀는 그렇게 동식의 집으로 들어온다. 동식의 아내는 지신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친정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동식만이 있는 2층 집, 경희는 ‘2층’에서 동식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동식은 모질게 화를 내며 ‘1층’으로 쫓아 낸다. 그것을 보고 하녀는 동식을 유혹하여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관계를 가진다. 이때 하녀가 동식의 발을 밟고 올라서는데, 나는 이 때 동식과 하녀의 권력관계가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동식의 상류층으로써 점잖은 남성의 이미지는 하녀의 손에 달려 있게 되었다. 관계를 가진 이후 하녀의 행동과 말투는 과감해진다.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동식의 개인공간인 피아노실에 자유롭게 드나든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 동식, 하녀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진다. 하녀가 피아노를 치는 순간에 항상 동식과 아내가 함께 있던 상황이었다는 것과 피아노 소리가 둘의 대화를 항상 방해한다는 점은 하녀의 존재감이 이젠 2층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집안 전체에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녀도 곧이어 본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식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아내는 하녀에게 낙태를 중용한다. 결국 하녀는 자신의 아이를 낙태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아내가 2층에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주었고 하녀가 1층으로 굴러 떨어지는 유이한 장면 중 하나였다. 정상성의 1층이 부도덕의 2층에게 권력을 행사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하녀는 낙태이후 동식의 아들을 살해한다. 이는 정상성의 파괴 즉 1층의 파괴였고 아내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하녀는 동식에게 밤마다 자신과 동침할 것을 ‘명령’한다. 하녀와 동식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딸은 동식에게 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딸은 상류층이 되고자 했던 동식의 자아다. 다리가 불편한 딸에게 동식은 다람쥐(끝없이 쳇바퀴를 타는)를 선물하며 노력하면 걸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동식이 상류층으로 올라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고 상류층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은유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아내와 하녀의 위치는 뒤바뀐다. 아내가 하녀의 밥을 배달하는 모습도 연출된다. 아내는 쥐약을 이용해 하녀를 살해하려 했지만 하녀는 쥐약을 이미 설탕물로 바꿔두었다. 하녀는 그 전날밤 쥐약을 통해 다람쥐(상류층이 되고자 달리는 동식)을 죽였다. 동식은 하녀에게 휘둘리는 자신과 아내 그리고 하녀 사이에서 괴리감을 가진다. 그렇게 하녀와 동식은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쥐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녀만 사용한다. 즉 하녀가 ‘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은유라고 생각한다.
2층집이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1층에서 재봉을 하는 아내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층의 정상성의 공간이 2층의 부도덕을 지탱하였으나, 2층의 부도덕이 1층의 정상성을 파괴했을 때 2층집이라는 상류사회는 무너지게 되었다. 자 이제 부도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부도덕적 방법을 통해 계급이동을 꿈꾼 하녀'는 죄인인가? 바람이라는 '사적 범죄'를 이용한 계급이동은 죄인가? 우리는 양심에 따라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