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날 이후로 냄새와 입맛을 잃었다.
그동안 만난 의사만 해도
한의사, 신경과, 위장내과까지 여럿이었다.
당시엔 10분만 앉아 있어도 기절할 만큼 피곤했고,
20년 넘게 살아온 집인데도 길을 헷갈려 헤맸다.
신발주머니나 우산 하나 잃어버린 적 없는 내가
핸드폰을 수시로 놓고 다녔고,
부엌에 나왔다가 왜 나왔는지도 잊곤 했다.
나는 통역사다. 그런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사를 만나도
코로나 후유증에 대해 뾰족한 해답은 없었다.
불안 증상은 더 심해졌고,
심리상담까지 받아야 했다.
그 두 달 동안,
나는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봤다.
처음엔 이런 내가 황당했고,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웠다.
원래도 ‘종합병원’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자잘한 병이 많았지만,
이번엔 한 달 내내 아팠고,
진짜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결국 위까지 아파져
생애 첫 내시경을 찍었고,
만성 위염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기보단,
음식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위염에 안 좋은 음식이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빵, 면, 토마토소스, 케첩, 오렌지, 유제품, 커피,
매운 음식, 튀김…
치킨과 곱창, 짜장면을 사랑하던 내가
그 모든 걸 끊었다.
“어차피 맛도 모르는데,
이참에 건강하게 먹자.”
커피는 내 사랑이었지만
그것도 내려놓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 망가진 몸이,
몇 달 뒤 머리로 서고,
몇 년 뒤 달리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