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먹고 갈래요?

간쑤성(甘肃省) 톈수이(天水)에서

by 이천우

중국 여러 도시 이름 중 거의 유일하게 내가 한자로 정확하게 쓸 수 있는 도시. 하늘 천, 물 수, 천수, 톈수이.


시안에서 고속철을 타고 1시간 40분. 이 도시에 온건 무지하게 잘 생긴 오빠가 나오는 중국 드라마 한 편 때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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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촉나라와 위나라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 풍기농서(风起陇西)의 농서. 바로 지금의 톈수이다.


삼국시대 위촉병과(魏蜀兵戈)의 격전지, 텐수이. 가운데 제갈량이 보인다, 텐수이 고성


중화문명의 시조 복희묘(伏羲庙)도 톈수이에 있다. 이름만 보고 여신이겠거니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남신이었다. 한족에게 불과 팔괘를 전해준 듯했다.

중국의 단군 할아버지 복희

그리고 가장 '무시무시한' 관광지. 맥적산석굴(麦积山石窟).

아무렴 '지옥체험도'가 병마용보다는 낫겠거니 하고 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검표 후 전기차를 타고 올라와서도 땡볕 아래 어마어마하게 긴 줄을 기다렸다.

보릿단을 쌓아놓은 듯 우뚝 솟은 맥적산 수직절벽에 1600여년간 여러 왕조에 걸쳐 조성된 220여개의 석굴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꼼짝달싹 할 수 없이 길고 빽빽한 그 줄은 석굴을 보러 140m 높이의 절벽 위로 올라가고 내려갈 때도 계속되었는데 절벽에 '간신히' 붙어있는 외줄 통로가 엄청난 인파의 유동과 바람에 따라 때때로 진동하며 흔들렸다. 난간 밖으로 감히 얼굴도 돌릴 수도 없을 만큼 무서웠다. 일방통행 외길이라 이제와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구경만 해도 이렇게 후덜덜하는데 그 시절, 어떻게 이 절벽에 석굴을 만들었을까.



석굴이나 불상의 오묘함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온몸이 빳빳하게 굳은 채 여기서 떨어지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도 그저 무사히 내려온 것에 감사하며 새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맥적산석굴 대표 유물들, 특히 44호 석굴의 불상은 동양의 모나리자라는데 챙겨볼 정신이 없었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톈수이 관광붐의 효자둥이가 있으니 바로 톈수이 마라탕이다. 우리나라 떡볶이에 버금가는 중국 젊은이들의 최애음식, 마라탕. 알싸한 마라 맛이나 땅콩소스 맛이 강한 일반 마라탕과 달리 톈수이 마라탕은 우리 김장김치 양념 같은 감칠맛 나는 고춧가루 양념이 핵심이다. 보통은 고기류를 넣지 않고 두부나 어묵, 버섯과 야채들만 넣어 가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톈수이에 머무는 4일 내내 매일 마라탕을 먹었다. 한 번은 가장 유명한 시내 마라탕 집에 갔는데 폭염 속 쉬기 어려울 만큼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포기하고 바로 옆집에서 먹었다. 역시, 짝퉁은 진퉁을 따라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곳저곳 맛있다는 곳을 도장 깨기 하듯 찾아다니며 먹었는데 결국 젤 맛있는 집은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근처 주택가 한산한 마라탕집이었다. 호텔 직원이 덧붙인 말. "근데 우리 톈수이 사람들은 마라탕 잘 안 먹어요. 맛있는지 모르겠어요."


각자가 재료를 선택해서 가져가면 회족 아줌마가 재료를 익힌 후 고춧가루 양념에 쓱쓱 버무려준다.
마라탕 맛집은 결국 너네 집 앞
맥적산석굴 근처, 정토사(净土寺), 입장료 무료


황토산으로 둘러싸인, 하늘도 물도 절도 멋진 도시 톈수이에서 김장김치 양념맛 마라탕을 실컷 먹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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