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_그저 비누

by 야간비행


폼클렌징이 떨어져서 비누를 꺼냈어.

2년 전 헤어진 남자 친구가 준 건데

그간 바라만 보고 쓰질 않았지.


누군가 그 친구에게 고마운 일이 있어

여자 친구에게 주라며 12월 내 생일에

터키석처럼 생긴 비누를 준 거야.

보석처럼 예쁘기도 했지만

건네 준 마음이 고마워 쓰질 못했어.


헤어진 지 2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걸 버리질 못했.

그저 비누니까 쓰면 그만이라 생각했어.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매일을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그 비누를 한 번씩 쳐다보았지.

화장실에 두면 그만이라 생각했어.

그러면 비누는 그저 비누가 될 뿐이라고.


며칠 전 폼클렌징이 떨어져

드디어 그 비누를 쓰게 되었어.

이틀이 지났을까

우연히 거울을 보다

내 얼굴 전체에 두드러기가 난 걸 알았어.

울퉁불퉁해진 내 얼굴을 보며 생각했지.

그 비누는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아니면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맞지 않는 물건은 버리면 그만인데

가끔은 그럴 때가 있라.

2년 전 그날은 그러질 못하겠는 거야.


늘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어쩔 수 없이 그때 머무게 돼.

밤새도록 마음이 쳐나 눈으로 밤을 새우지.

별 것 아닌 이 비누 같은 물건들 때문에...

이전 09화오늘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