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일과 공부를 병행하다가 최근 다른 디자인 분야로 이직을 하며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낯선 곳이지만 잘 살아내리라 마음먹으며 온 동네와는 아직도 서먹하기만 하다.
2년 반전 우울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동생 회사에서 일을 하며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고 나는 예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슬픔은 사람으로 치유된다고 하던가. 나는 그렇게 또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온 동네는 1주일이 지난 지금 여전히 첫 여행지에서 처음 들어서는 길처럼 낯설긴 하지만 집 앞 식자재마트와 치킨집, 닭발집, 세탁소를 들르며 하나의 미션을 깨듯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이번에 다시 혼자 살면서 나는 둥지를 짓는 새처럼 정성스레 집을 꾸미고 있다. 요즘 하루 일과는 회사를 다녀와 쌓여있는 택배를 풀고 집안을 하나하나 손수 바꾸는 일이다. 어제는 의자를 조립했고 오늘은 침대보를 바꾸고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조금씩 채워져 가는 집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작년 고향집 처마에 집을 짓던 제비가 떠올랐다.
어느 날 무심코 창밖을 보니 현관에 제비들이 왔다 갔다 분주하게 집을 짓고 있었다. 제비 배설물로 현관 앞이 지저분해진다며 제비집이 조금씩 지어질 때마다 아버지는 연신 빗자루로 부수기 바빴다. 알을 밴 동물들에게 못할 짓이라며 말린 어머니로 인해 n번째 공들인 제비집은 어느덧 완성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비집엔 입 벌린 작은 새끼 제비 5마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 후로 현관 바닥은 매일같이 제비집에서 떨어진 배설물들로 지저분해졌다. 더러워진 바닥을 청소하시며 어머니는 처음과 달리 불만을 토로하게 되었지만 나는 조막만 한 새끼 제비들을 보며 난생처음으로 새를 좋아하게 되었다.
퇴사 후 군무원 공부를 하고 있었던 나는 도서관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현관에 앉아 제비들을 한참이고 바라보는 게 낙이 되었다.
새끼 제비들은 부모들이 먹이를 물고 찾아오면 본능적으로 입을 벌렸다.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아직 눈을 뜨지도 않은 새끼들이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입을 벌린다. 나는 왜인지 그 모습을 매일같이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입 벌린 새끼 제비들이 나에게 "너도 그렇게 살아라'라고 하는 것 같았다. 퇴사 후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무수한 날들을 살아있는 송장처럼 지냈던 나는 늘 집안의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제비들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몇 개월 동안 커 가는 제비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 느껴보는 큰 기쁨들을 느낄 수 있었고 이에 더해 투명했던 내 모습도 조금씩 선명해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 제비들이 날개를 펴고 제 부모들과 비행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집 옥상 위로 떼를 지어 빙글빙글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모습이라니.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아 쉬기도 하는 모습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났다. 언젠가 그들이 비행하는 모습을 촬영하였을 때, 그 후로 나는 제비 가족들을 더 이상 둥지에서 볼 수가 없었다. 그 작은 날개를 열심히 저어 더 좋은 곳으로 쏜살같이 날아갔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지푸라기로 열심히 집을 짓던 모습과 먹이를 달라 입을 벌리던 모습, 제비의 모든 것이 나와 닮았다. 그래, 주어진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다. 너무 아파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그렇게 잘 먹고 잘 자고 또 해야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동네에서 또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갈 것이고 앞으로의 나는 예전처럼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가끔 제비 가족이 보고 싶고 궁금하고 생각이 난다.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아주아주 잘 살고 있으니 어디서든 정말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삶이란 게 이렇게 제비들을 보며 문득 얻어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삶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