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어도 정원에 관한 한 편견쟁이였다는 게 밝혀졌는데, 기왕 밝혀진 김에 하나 더 고백하겠다. 내가 그린 정원 그림에는 진딧물뿐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것들이 빠져있었다. 정원의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곤충이라고 해봐야 벌과 나비 정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더, 더, 더 많은 날아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나방, 파리, 모기, 그리고 비문증을 의심하게 만드는 작은 검정 점들. 통성명을 하려고 해도 너무 작고 너무 빠르게 사라져서 존재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신출귀몰한 검정 점들.
잡을 생각은 없었다. 얘네는 진딧물처럼 나무를 죽이고 있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설령 잡을 생각이 있었다고 한들 내가 잡을 수 있었을까? 날개 없는 진딧물은 사람을 질리게 하긴 하지만 느리고 제자리에 있으므로 그나마 잡아볼 수 있었다. 날개? 그건 진짜 대적 불가다.
정원을 걸을 때 뭐가 자꾸 날아다니는 게 성가시긴 했다. 그러나 나는 허술한 가드너이므로 그냥 성가신 채로 가끔 진딧물이나 잡고, 병든 잎사귀나 떼어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알아챘다. ‘어? 요새 날벌레가 줄어든 것 같은데?’ 그걸 알아챈 순간 발목에 뭐가 걸렸다. 어이쿠.
거미를 왜 생각 못했지? 거미야말로 사람 사는 모든 곳에 다 있는 동물인데. 야생초가 흙을, 진딧물이 어린잎을,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찾아온다면, 거미도 자기가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이곳에 안 올 이유가 없었다. 이 정원은 상추를 심었던 텃밭 상자가 야생화 정원이 된 이후로 초청 제도 따위 폐지한 곳이다. 허수아비보다 허술한 가드너가 지키고 있는 이곳에는 아무나 오고 싶을 때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초청 제도가 남아 있었더라도 거미는 VIP 초대장을 받고 들어왔을 것이다. 거미의 외형은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양봉업이나 요식업, 숙박업 종사자 입장에서도 거미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정집에서는 보통 환영받을만한 존재다. 사람들이 해충으로 여기는 벌레들을 줄이는 데 공헌하기 때문이다.
폐가의 허연 거미줄 이미지와 달리 거미가 거주 중인 거미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거미도 자기 집을 청소하면서 다니는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 사용한 거미줄은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 거미줄을 짓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거미가 살고 있을 때는 기가 막히게 투명하다가 얘가 어디론가 떠나고 시간이 지나면 거기 먼지가 붙으면서 비로소 눈에 보인다. 내 발목에 걸린 거미줄에는 거미가 살고 있었단 소리다. 미안하네. 일부러 부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얘네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거미들은 꼭 내가 다니는 길목에 줄을 쳤다. 화분과 화분 사이에 길게 줄을 쳐서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다가는 발목이나 정강이에 줄이 걸리기 일쑤였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 나무 두 그루 사이에 널따랗게 거미줄을 짜서 나무에 물 주러 가다가 얼굴에 정면으로 거미집을 뒤집어쓴 적도 있다. 원예용품과 각종 잡동사니를 쌓아둔 선반도 어김없이 거미줄로 막아 놓아서 물건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가 거미줄만 잔뜩 묻혀오기도 했다. 날벌레를 잡으랬지 나를 잡으랬냐고.
거미줄은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끈적여서 떼기 쉽지 않았다. 떼고 나서도 다 뗀 건지 뒤통수에 붙어서 휘날리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찝찝했다. 입에도 붙은 것 같아서 괜히 한 번 더 에퉤퉤했다. 거미는 나보다 더 짜증 났겠지. 기껏 걸작 함정을 설계해뒀더니 걸리라는 애들은 안 걸리고 웬 거인이 걸려서 다 망가뜨려 놓고 가냐고.
근데 걔도 참 걔고 나도 참 나였다. 거미는 집이 망가졌으면 다른 데 짓든가 하지 하룻밤 만에 같은 자리에 똑같이 복구해놓았다. 그 길은 내가 늘 지나다니는 길이니까 나도 다음 날 아침부터 똑같이 걸려들었고.
몇 번 그러고 나니까 거미줄을 피해 다니는 요령이 생겼다. 일단 원래 다니던 길로 다니면 안 된다. 짧은 직선 코스는 이미 거미가 점령했다. 별 넓지도 않은 옥상을 꼬불꼬불 돌아서 지나다니다 보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돌아서 가는 것도 그냥 막 둘러 가는 게 아니다. 해리 포터네 학교의 움직이는 계단처럼 거미집이 있는 위치도 바뀌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잘 보면 거미줄이 보인다. 거미줄 위치를 일단 확인하고 적외선감지기를 통과하는 스파이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야 한다. 며칠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렇게 쭉 통과해서 정원의 끝 쪽에 도착하면 블루베리 나무와 선반 사이에 이 정원에서 제일 크고 멋진 거미집 둘이 등장한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거미집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넋이 빠진다. 정말 아름답다. 새벽 시간대에만 볼 수 있는 걸작이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던 거미줄에 햇살이 내려앉으면 아주 가느다랗게 그 형태가 보인다. 습한 새벽 공기에 거미줄에는 이슬이 맺혀서 빛나고, 그 가운데 자리 잡은 거미는 노랗고 까맣고 빨갛고 다리도 기다란 게 화려하다. 나는 디자인에는 문외한이지만 분명 여기 영감을 받은 작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미집에 계속 걸리고 다니기만 하다가 이제는 거미집도 봤고, 설계자도 만났으니 이름이 궁금해졌다. 크니까 왕거미?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름이 안 어울린다. 왕거미는 왠지 퉁퉁하고 묵직하고 검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름을 붙인다면 저 알록달록한 색깔에 홀려서 지었을 것이다. 비슷한 느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호랑나비였다. 노란빛에 검은 테가 강렬하고, 빨간 포인트 컬러가 들어간 게 꼭 호랑나비 같으니까.
크고 화려한 거미 후보를 둘 찾아냈다. 하나는 호랑거미였고, 하나는 무당거미였다. 무속인의 화려한 의상을 생각하면 무당거미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자료를 읽어보니 아무래도 우리 집에 사는 거미는 무당거미인 것 같았다. 호랑거미는 풀숲에서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 거미는 형태가 영락없는 무당거미였다. 호랑거미와 달리 머리와 배가 따로 구분되어 보이고, 배 아래쪽의 빨간 무늬도 있었다. 그리고 호랑거미는 앞의 다리 두 쌍, 뒤의 다리 두 쌍을 겹치고 서서 X자로 보인다는데, 우리 집 거미들은 다리 여덟 개를 다 제각각으로 펼치고 섰다.
이름을 알고 나니 내적 친밀도가 올라갔다. 상대방은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괜히 그 근처에 가서 “무당거미!” 하면서 얼쩡거렸다. 하도 가니까 이제는 예전보다 거미줄도 더 잘 보게 되었다. 나무 사이나 선반 사이에 그냥 동그랗게 치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더라. 각도가 다른 여러 장의 거미줄이 한 세트였다. 다차원의 소유주라니 너무 멋지잖아!
지면에 수직인 거미줄은 주로 집 주인이 상주하는 메인 공간이자 먹이를 사냥하는 함정이고 식사 공간이기도 한 것 같다. 여기에는 온갖 날벌레들이 다 걸려있다. 어떤 날은 거미가 이들 중 하나를 입에 물고 돌돌돌돌 굴리면서 실로 감싸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거미줄이 흔들리면 사냥감인 줄 알고 올까 궁금해서 입으로 훅 바람을 불어봤는데, 오기는커녕 거미줄을 타고 달려서 나뭇잎이 우거진 가지 쪽으로 숨어버렸다.
방의 용도가 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직인 거미줄보다 약간 누워있는 거미줄은 아무래도 쓰레기통인 것 같다. 실로 감싸서 빨대를 꽂아 쪽 먹고는 남은 껍데기는 그 거미줄에 모아두나 보다. 그쪽 거미줄만은 유독 하얀 뭉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거미줄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보였다.
거미도, 거미줄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거미 덕분에 진딧물을 잡으러 가거나 병든 나뭇잎을 떼어주러 가는 길이 싫지만은 않았다. 날벌레가 내 시야를 방해하는 일도 줄어들었고, 올라간 김에 거미도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정원 일을 하는 동안 거미도 저쪽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작업 동료를 얻은 기분도 들었다. 내 작업 동료는 말이 없지만, 그래도 누가 옆에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좀 힘이 나는 때가 있다.
거미는 오랫동안 재밌는 구경거리를 잔뜩 던져주고,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게 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정원은 늘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등장해서 스트레스를 주고, 그러다 익숙해지고, 정이 들 때쯤이면 갑자기 또 없어져서 사람 싱숭생숭하게 한다. 하지만 좋은 반전도 있다. 싱숭생숭한 날을 보내다 보면, 거미가 내 입바람을 피해 도망갔던 블루베리 나무 바로 그 자리에서 블루베리 잎 두 장에 쌓인 거미의 알집을 발견하는 날도 온다.